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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il Oct 12. 2023

만족할 수 없음으로 만족하기

글을 위한 필사 <틀너머의 이야기, 한수희>


무언가에 전력을 다해본 사람은 그 나름의 철학이라는 것을 갖게 된다. 전에 인스타그램에서 한 여자의 다이어트 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이미 20킬로그램 가까이 살을 뺀 여자는 이렇게 썼다. "어떻게 뺀 살인데, 주말 동안 미친 듯이 먹고 나니 다시 몇 킬로그램이 늘었어요. 하지만 괜찮아요. 다시 빼면 되니까요. 한 번 실패했다고 끝난 게 아니에요." 나도 다이어트라면 아주 관심이 많지만 다이어트에 목숨 거는 사람들에게는 뜨악한 마음이 들곤 했는데, 이 여자의 실패에 대한 관점은 좋았다. 한 번 실패했다고 망한 게 아니다. 모 아니면 도가 아니다. 다시 시작하면 되는 거다. 전력을 다해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다 보면 자신만의 철학이 생기고, 철학이 생기면 실패에도 쉽게 겁먹거나 무너지지 않는다. 느긋해진다. 시간의 흐름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현재의 자신을 자기 안에 숨은 자아라는 작은 덩어리가 아니라, 마치 저 위에서 드론 카메라로 내려다보는 것처럼 큰 흐름 속의 일부로 볼 수 있게 된다.


한수희 <틀너머의 이야기_ 정원사의 시간>







좋아하는 바지가 있었다. 시크한 블랙진, 세일도 없이 정가 9만 원대에 구입한 그 바지는 안타깝게도 내 것이 되자마자 3만 원어치가 약속한 듯 잘려나갔다. 더는 옷가게에서 발견한 비율 좋은 바지는 아니었지만, 내게는 마침맞아 안성맞춤이었으니, 삼만 원쯤 없었던 일로 할 수 있었지만 복병은 자르면 그만인 바지 길이가 아니라 ‘지방’에 있었다. 입으면 입을수록 허벅지 안쪽이 꼴도 보기 싫게 해졌을 때, 저들끼리 부대껴 블랙에서 진먹색으로 솔기만 빈티지화 되어갈 무렵 인생 첫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입에 물리도록 닭가슴살을 먹었고 운동선수처럼 단백질 셰이크를 마셨다. 이러다 죽겠구나 싶게 아침저녁으로 운동도 했다. 병목현상 같은 정체기를 무사 통과한 이후에는 거짓말 조금 보태면 이러다 날아가겠다 싶을 만큼 몸이 가벼워졌다. 그 무렵의 나는 나의 복근에 취해 거울 앞에서 배를 까고 요리조리 돌려보며 감상에 젖곤 했었다.


그렇지만 무엇을 하든 양가감정은 생기기 마련이라 수척해진 얼굴. 행복하지 않은 식생활에 서서히 지치기도 했다. 더군다나 그토록 빼고 싶었던 체지방이 근육으로 환원되어 돌아온 곳 역시 상당량의 허벅지였으니 내가 원하는 곳만 효율적으로 뺄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여실히 깨달으며 완벽해지기보단 미완성인 채로 행복해지기로 마음먹었다.


육식이, 면식이, 빵식이, 내 인생을 거쳐간 많은 食食이들과 씩씩하게 나아간다. 하기 싫은 운동이지만 습관처럼 한다. 체중계 앞에서 일희일비하기보단 조금 더 먹은 날은 조금 더 움직이면 된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일정 부분의 포기도 내려놓는 것도 용기가 아닌가. 한 걸음 떨어져서, 그 보다 두 세 걸음 뒤에서 우리는 자신으로부터 멀어지는 연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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