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il Oct 10. 2023

귀한 사랑만큼 잔정이 필요한 때

글을 위한 필사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박완서>


딸네가 가까이 살아서 외손자를 자주 보게 된다. 매일 봐도 즐거운 것은 매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두 돌이 막 지난 녀석은 요즘 말을 배우느라 한창이다. 일전에는 녀석이 "선물 선물, 민들레 민들레" 하면서 들어오더니 나에게 민들레 한 송이를 주었다. 녀석의 '민들레'란 발음이 독특해서 저절로 웃음이 났다. (...) 흔히 외손자를 귀여워하느니 방아깨비를 귀여워하란 말들을 한다. 아무리 귀여 해봤댔자 남知人이란 소리도 되겠고, 혹은 사랑에 비해 돌아올 보답이 없음을 말함이기도 하리라. 그럼 보답이란 뭘까? 살았을 적의 봉양이나 방문일까 죽은 후의 봉제서일까. 나는 이런 보답의 기대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외손자 사랑이 좋다. 손자야, 너는 이 할미가 너에게 쏟은 정성과 사랑을 갚아야 할 은공으로 새겨둘 필요가 없다. 어느 화창한 봄날 어떤 늙은 여자와 함께 단추만 한 민들레꽃 내음을 맡은 일을 기억하고 있을 필요도 없다. 그건 아주 하찮은 일이다. 나는 손자에게 쏟는 나의 사랑과 정성이 갚아야 될 은공으로 기억되기보다는 아름다운 정서로 남아 있길 바랄 뿐이다. 나 또한 사랑했을 뿐 손톱만큼도 책임을 느끼지 않았으므로.


박완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_민들레꽃을 선물 받은 날>







조카들은 이번 추석에도 어김없이 '하지 말란' 것만 하는 통에 야단을 맞곤 했는데,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아이들의 할머니 나의 엄마가 조카들을 향해 나지막이 말했다. "은비, 도현아 할머니는 있잖아. 너네들이 예뻐서 봐주는 게 아니야. 내 딸의 자식들이라 예뻐하는 거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언니와 나는 저 고백은 뭐지? 하며 크게 웃는 동안 엄마는 시종일관 지그시 아이들을 쳐다보았고 , 조카들은 "네-에"하고는 할머니의 눈을 피해 딴짓을 또 열심히 하고 있었다.


우리 조카들도 한 때는 방긋방긋 웃고, 꼬물꼬물 했던 적이 있었을 텐데 그때 조카들을 많이 봐줬더라면 아이들의 미운 모습도 반쯤 감은 눈으로 모른 척 넘길 수 있지 않았을까? 나는 조카들에 대한 잔정을 쌓지 못해 엄한 이모가 되고 말았지만 박완서 작가님의 손자 사랑과 손자의 민들레 선물 대목을 읽고서 마음에 빗장이 풀리고 말았다. 보답을 바라지 않고 하는 사랑이란 얼마나 귀한 가. 너무나 귀하여 내 생 어디쯤에서 그런 사랑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왕에, 이상하고 자유로워지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