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의 아사나, 하나의 씨앗

by 요인영



친구가 물었다. "이미 강사자격증이 있는데, 또 필요해?" 대답이 선뜻 나오지 않는다.

'괜히 말을 꺼냈나?' 살짝 후회가 되었다.

납득을 위해 설득의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경험상 진정성 있게 설득해야 수용한다.

"필요해, 너무나 필요해. 이렇게 끊임없이 배우고 수련할 마음이 아니라면 차라리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지 말았어야 할 만큼 계속 배워야 해."라고 호기롭게 외쳤다.

어떤 사람에게? 끊임없이 배우고 수련하는 강사에게.


재능이 출중하다면 짧은 시간 안에 익혀 수업을 끌어갈 수 있겠지만

터질듯한 압력에 상모처럼 도는 압력추도 열었다 닫았다 하는 내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어떤 이들은 강사를 하며 끊임없이 수업을 듣는 것을 다단계 같다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난 좋은 뜻으로 품앗이라 하겠다.


지난 일요일에 첫 번째 교육이 있었다. 기본을 강조한 8시간 강행군의 시작.

정렬을 몸에 하나하나 새겨 넣는 과정이었다. 반복 또 반복.

무수히 반복하다 보면 지쳐도 몸은 자동적으로 그 동작을 수행하게 된다.


24년 100시간의 요가 TTC(Teacher Training Course)를 마치고,

막상 배운 내용 안에서 시퀀스를 구성하려 하자 벽에 부딪혔다.


기본이 없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배운 것 안에 정답이 있지만 단단한 껍질 안에 싸여있어 맨손으론 도저히 깰 수 없는 것.

열심히 도구를 찾는다. 도구를 손에 쥔 후에도 안의 내용물이 깨질세라 조심스럽게 접근하니

한없이 더디기만 하다.


한 개의 아사나는 한 알의 씨앗과 같다.

씨앗은 다양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아사나를 땅에 심고, 물을 주고, 빛과 바람을 기다린다.

그리하여 싹이 나게 하는 것은

오롯이 기본에 대한 깊은 이해인 것이다.





내 발이 땅에 닿았을 때 온전히 바닥을 지지하는 감각.

그것을 정렬로 표현하면 이러하다.

발바닥에 네 개의 점이 있어 그 점을 기반으로 발을 딛는다.

엄지발가락의 뿌리가 단단히 접지되면

발가락들은 새싹처럼 하늘로 고개를 쳐든다.

발 뒤꿈치를 바깥쪽으로 여는 힘으로

새끼발가락까지 바닥에 닿았다면

비로소 발에 세 개의 문이 열린다.


한쪽 발에만 스물여섯 개의 뼈가 있다.

몸 전체의 뼈는 이백 하고도 여섯 개.

그중 발에 쉰두 개가 있다.

우리의 발은 체중을 분산시키고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진화과정에서 뼈를 조각조각 부쉈다.

부서진 뼈들은 다 각각의 기능이 있을 것인데,

충분히 걷거나 뛰지 않는 사람들은 그 기능을 잃어간다.

발가락을 자유로이 움직이고 발의 아치가 살아있으며

발등을 구부리는 것이 가능한 발.

그러나 제대로 서 있는 것조차 힘든 일이 된 것이다.

파다 반다는 상실된 기능을 되살려주는 미세한 움직임이며

몸을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위한 시작버튼이다.

발을 바닥에 제대로 딛게 되면 딸깍 스위치를 올린 것처럼

온몸의 근육이 활성화된다.


8시간의 수업은 반복되는 모든 아사나에 파다 반다를 적용하여 수련하였다.

이 정도로 반복하면 죽은 발가락도 살려 낼 수 있을 듯하다.

시퀀스는 기본에 충실할 때 풍성해지고 깊어진다는 것을 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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