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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조 Oct 05. 2022

보험사 의료자문에 동의하면수익자 '백전백패(百戰百敗)'

네이버나 다음 등 포털 검색창에 ‘의료자문’으로 검색을 했더니 온갖 부정적인 기사 및 포스팅이 줄을 잇는다. 보험사에서 요구하는 의료자문에는 절대로 동의를 해주면 안된다는 둥, 동의를 해줬더니 보험금을 안 줬다는 내용들이다. 소비자 측 입장에 서서 일을 하고있는 손해사정사로서 의료자문에 대해 좋은 시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의료자문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의료자문은 의학적인 내용에 대해 분쟁이 있는 경우 판단을 위해 의사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을 말한다. 비슷한 단어로는 법률자문이 있는데, 이는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해 법률상 책임 등에 대한 판단에 고려한다.



반면, 의료자문은 보험에서만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민사 등 여러가지 법적분쟁이나 살인사건 같은 형사에서도 법의학자 등의 자문을 받기도 한다. 일반적으로는 의료자문이 가장 많이 활용되고 법적 분쟁이나 형사의 경우보다는 보험을 통해 접하게 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보험금을 청구하면 수익자는 청구서 및 보험사고를 입증하는 서류를 제출한다. 이때 보험약관에서 보험금 지급사유로 규정하는 암이나 뇌출혈 등을 증명하는 진단서 또는 장해의 정도를 평가한 장해진단서 등을 제출한다.



의료자문을 구하는 경우는  보험사에서 수익자가 제출한 암진단이나 장해 등을 입증하는 서류가 약관에 규정한 내용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거나 진단 또는 평가의사에 따라서 그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할 때다. 



의료자문 관련 생명보험약관에는 아래와 같이 규정돼 있다. 


상기 내용에 따르면 수익자 또는 보험사가 의료자문을 요구할 수 있다. 보험사가 의료자문을 요구하는 이유는 주치의의 평가는 객관적이지 못하니 제3자 즉 환자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의사에게 다시 물어봐 객관적인 의견을 근거로 보험금 지급사유의 적정성을 판단해보자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의료자문이 논란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현실에는 제3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약관에 의하면 보험수익자와 회사가 함께 제3자를 정하도록 돼 있다. 수익자가 제3자의 자격인 종합병원 소속 전문의 중 본인의 보험사고와 부합하는 전공한 의사가 내 보험에 대하여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의사인지 판단할 수 있을까? 그럼 알 수 없으니 개인적인 인맥을 수익자가 동원한다고 해도 가능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있다고 해도 보험사가 그 의사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에 동의할 리 만무하다. 



혹여 의사를 안다 손 치더라도 의료자문 자체를 거부하는 의사가 훨씬 더 많을 뿐더러, ‘치료를 위한 의학적 소견’과 ‘보험약관 규정의 부합 여부에 대한 의학적 소견’은 많이 다르다.



자연스레 보험사에 제출할 소견을 많이 작성해 보거나 보험사자문의 경험이 없는 의사들은 질문의 의도조차 이해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환자의 주치의를 자주 만나는데 보험약관에 부합한지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질의서를 드리면 ‘이걸 왜?’라고 되묻는 경우가 많다. 


보험의 판단에 필요한 질의는 법의학적인 측면도 있고, 치료와는 전혀 무관한 내용을 묻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환자의 암 등의 질병 상태를 판단하는데 왜 필요한 건지 이해가 안되기 때문이다.



손해사정사가 동행을 하면 질문이 입증하려는 내용과 약관의 어떤 내용 때문에 그 내용이 필요한지 설명을 하고 그에 대한 소견을 답으로 받지만, 의료자문은 서면으로 질의하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 때문에 조건에 부합하는 지인 의사가 있다 하더라도 의료자문을 의뢰하기 어렵다. 


 


수익자와 달리 보험사는 약관에서 규정한 제3자의 조건을 갖춘 ‘종합병원 소속 전문의를 전공과별로 병원 별로, 어떤 논점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까지 꿰고 있다. 보험사가 원하는 답을 얻으려면 어느 병원의 어느 의사에게 자문을 의뢰하면 되는지 알고 있다.



보험사가 제3자라고 주장하는 그들은 보험사에게 제3자가 아니다. 수익자는 평생 다시 겪고 싶지도 않은 큰 병이나 큰 사고를 겪을 때나 만나 볼 수 있는 제3자들은 보험사로부터 연간 수십에서 수백건의 자문의뢰를 받는 사람들이다. 



자문 한건 당 20만원~50만원 정도의 비용이 지불되니까 연간 최저 10건이면 200만원, 100건이면 2000만원의 자문료가 보험사와 제3자 사이에 오간다. 보험사에서는 제3자에게 그리고 횟수와 비용의 절대적 비대칭으로 인해 자의든 타의든 제3자들은 보험사의 거래처가 돼 간다.



보험사가 의료자문을 가자는 건 심사담당자가 의도와 상관없이 보험사 홈그라운드에서 보험사가 만들고 보험사가 착용하던 운동화를 신고 보험사가 설치한 장애물을 놓고 장애물달리기를 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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