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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조 Oct 11. 2022

보험사, 신뢰바닥 의료 자문에 집착하는 이유..

"보험사만 이득인 짬짬이 때문"

손해사정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있었던 일이다. 당뇨 환자의 포도상구균 감염으로 인한 봉와직염 발병 및 이로인한 하지 절단에 대해 재해장해진단금을 청구했다. 보험사는 절단이 봉와직염(蜂窩織 炎)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혈당이 높은 환자의 당뇨족으로 인한 절단이라면서 재해장해진단금 지급사유가 없다고 했다. 환자의 높은 혈당 수치 때문이다. 환자가 치료를 받는 동안 거친 대학병원 포함한 3명의 주치의가 당뇨족이 아니라는 소견서를 발행해줬지만 소용이 없었다. 



팽팽한 접전 끝에 의료자문중개업체만 보험사가 채택하고 질의사항 및 제출서류와 의료자문중개업체 접촉까지 모두 우리측(피보험자측)에서 하는 조건으로 의료자문을 받아보기로 했다. 의료자문의 질의사항과 제출할 자료를 준비해 의료자문중개업체에 등록하려고 보니 이미 등록된 업체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모두 보험사거나 보험사에서 일을 받는 조사업체들 뿐이었다. 다행히 기타업체라는 항목이 있어 자료와 질의 등록을 마쳤고, 의료자문중개업체와 연락을 취할 수 있었다.



우리 회사는 보험회사 측 일을 하는 곳이 아니라고 하자 그는 이 사안의 보험사와 담당자 이름을 물어오면서 ‘보험사로부터 허락을 받았냐’고 물었다. 객관적인 판단을 위해 자문을 의뢰하는 것인데 보험사와 담당자 이름이 왜 필요하며, 보험사로부터 허락을 받아야 일을 진행한다는 건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이어 보험사에 전화해서 이런 객관적이지 못한 일처리에 강한 항의를 했다. 보험사는 중개업체에서 그런식으로 일처리를 하는지 전혀 몰랐고, 사전에 보험사에서 뭘 한게 아니라고 믿어달라고 했다. 



막상 실무자들은 의료자문중개업체들이 과도하게 보험사측 눈치를 보고 소비자에게 불리하게만 자문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보험금심사에 방해가 된다는 후문을 들은 적도 있다. 보험사는 그동안 자신들이 당연히 받아왔던 대우를 당연하게 생각했을 거였고 보험사측이 아닌 손해사정사에게 그렇게 불공정한 입장을 취할 거라는 것을 상상도 못했을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어쨌든 해당 건은 입증에 성공해 보험금을 받았지만, 가장 큰 자본을 가진 보험사를 위주로 보험업계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준 사건이었다. 


그때가 벌써 10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언론에서 의료자문의 객관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계속 돼 왔고 보험금 청구시 의료자문으로 인한 부당한 보험금부지급 사례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공유되면서 이제는 보험사가 주장하는 ‘의료자문의 필요성’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험사는 여전히 주치의 소견이나 진단 또는 피보험자측의 진단의는 신뢰할 수 없다는 밑도 끝도 없는 이유로 보험사측에서 제안하는 의사 중 한명에게 자문을 받아야만 보험금을 지급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나는 오늘 의료자문과 관련해 10여 년 전과 비슷한 충격을 받았다. 피보험자의 장해진단과 관련 손해사정서를 받고 현장에 내보낸 조사자가 의료자문 동의는 받지 않을거라고 얘기했고, 나도 그렇게 믿고 전달을 해놓은 상태였다. 조사자는 피보험자를 만나서 본인이 보험사로부터 조사를 위임받았다는 사실과 그로 인해 피보험자의 정보등을 열람하게 되는 등의 현장조사에 대한 안내 및 해당 서류를 교부하도록 돼 있다. 피보험자가 확인을 해달라며 사진으로 보내 온 내용은 눈을 의심케 했다.



‘의료심사’라는 항목이 추가돼 있었다. 얼핏 보면 당연한 말 같지만, 보험약관에도 보험업법에도 없는 문구였다. 그리고 추가로 의료심사 동의서라는 양식에 서명을 받아갔다. 그 의료심사 동의서를 보니 기존의 의료자문동의서에서 ‘자문’이라는 글자를 ‘심사’로 바꾼 엄연한 의료자문동의서였다. 의료심사기관이라고 하며 나열해 놓은 병원 및 자문기관 제출서류 등. 심지어 피보험자가 의료자문동의는 해줄 수 없다고 하니 그 앞에서 의료자문은 받지 않겠다며 종이 2장을 찢어보여줬다고 한다.



거대한 자본의 권력자, 보험업계의 중심인 보험사. 그 힘을 가지고 ‘의료자문’의 부작용을 해결하는 방안의 수준이 기껏 말장난이란 말인가. 이건 뭐, 계란 알레르기 있는 사람에게 이것은 달걀이니 괜찮다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보험사여, 그대가 권력과 자본을 가진만큼 정정당당하고 바른 기준을 선도해 줄 수는 없는 것인가. 정녕 이렇게 정보불균형한 피보험자들 상대로 유치한 방법 밖에는 없는가. 오랜기간 보험업계에 몸 담은 사람으로서 화가 나다 못해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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