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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Jan 27. 2021

그날이 도적같이 이를줄…

이모는 보험료를 많이 내고 있었다. 가입내용이 성에 차는 것은 아니었지만 굳이 잘 유지하고 있는데 이모를 이해시키는 과정을 피하고 싶어 가입보험에 대해 얘기하려다 상품 하나만 추천해주고 그만두었다. 그런데 3년 뒤 이모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 자궁암 2기래.”



“그래도 다행이다. CI보험도 있고, 실손도 있고, 내가 그때 추천해준 것도 가입해서 수술비도 꽤 될 텐데 이 김에 푹 쉬어.”



“형편이 어려워서 그거 다 깨고 실손이랑 네가 추천해 준 거만 남겨놨다가 1년 전 불안해서 우체국에 암보험 작은 거 하나 들었는데.”



내 기억대로라면 이모는 8000만원 정도의 진단금 및 수술비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진단금은 1년 전 가입한 2000만원이 전부였고, 그나마도 고지의무 위반 문제가 걸려있었다. 다행히, 내가 그 문제는 해결해주었지만 본인의 소득이 생계수단인 이모는 투병기간 동안은 물론이고 이후 오랫동안 생활비로 인한 부채를 갚아야 했다.



엄마는 내가 직접 모든 보험을 설계해 드렸다. 납입완료가 임박한 보험도 여러 개였던 엄마는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당장 장기 치료에 들어간다 해도 엄마가 그동안 붓고 있던 적금이며 곗돈 그리고 생활비는 걱정되지 않았다.



진단금, 수술비, 입원비까지 실손보험금 외 얼추 5000만원은 될 것이었다. 그러나 암진단 받기 딱 한 달 전에 다 해약하고 6개월 된 실손 계약만 하나 남았다는 황당한 소식. 실손이 있으니 된다는 설계사의 말에 납입기간 얼마 남지 않은 보험들을 다 해약했다고 한다. 딸의 말 보다 더 솔깃하게 했던 그 설계사가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60대 노인에게 그런 용기를 불어넣다니. 손해사정사인 나의 주변에서 5년 동안 2번이나 일어난 실화다.



보험은 오래 만난 사람이 아니라 사고가 났을 때 옆에 있는 사람을 지킨다. 보험이라는 상품은 구매가 확정이 되었다고 해서 고객에게 그 기능을 확인시켜줄 수 없다. 그걸 몇 번 사용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그렇게 불확실한 상품에 비용을 지불하는 자신을 갑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보험의 본질은 그렇지 않다.



보험을 두고는 절대로 밀당을 해서는 안 된다. 보험을 구매하고 나면 끝까지 매달리고 관심을 보여야만 한다. 1월에 1번씩 고정비용을 들이고 기억하고, 보험사나 설계사가 나를 궁금해하지 않아도 이사를 하거나 급여계좌가 바뀌어도 개인정보를 즉시 업데이트해야 한다.



보험은 보고 있는 중에만 나에게 그 혜택을 돌려준다. 이별(해지)했을 때뿐 아니라 잠시의 냉전기간(실효기간)에도 보험은 그간의 정을 생각하지 않고 등을 돌린다. 사고가 난 그 순간에 함께였는지 여부만이 중요하다.



많은 분들이 나에게 전화해서 묻는다. 깜박하고 통장에 돈을 못 넣어서, 급여통장이 바뀌어서, 이사하고 주소 변경하는 걸 깜박해서, 그런 거지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다고. 하필 그 기간에 사고가 날 줄 몰랐다고.



보험은 원래 '그날이 도적같이 올 줄' 알고 가입하는 상품이다. 그래서 아프지도 않았고 아무도 당신에게 언제 사고가 날지 알려주지 않았지만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는가? 그래놓고 이렇게 갑자기 사고가 났기 때문에 의도치 않은 해지나 실효가 억울하다는 변명은 안타깝지만 설득력이 없다. 오랜 기간 '혹시나' 해서 지불했던 비용의 가치를 물거품으로 만든 것은 '설마' 하는 안일함이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자신이 가장 잘 알면서도 안타깝다는 공감의 눈빛이라도 받아내야 직성이 풀리겠다는 그 뻔하고 뻔한 레퍼토리는 유행가 가사처럼 때와 장소, 주인공만 바뀐 채로 계속 될 것이라는 것을 그 누가 부인하겠는가?



매월 유지 마감 때마다 자신의 소득 때문에 마음을 졸이는가? 보험료 납입을 성실하게 해야 하는 이유가 설계사의 소득 때문이 아니다. 유지가 되지 않으면 고객의 삶을 훔쳐가는 사고가 생겨도 보험이 지켜줄 수 없기 때문이다. 보험이라는 경비대는 강하지만, 실효가 된 단 하루만에도 완전히 떠난다는 것을 고객에게 잘 이해시켜야 한다. 도적이 갑자기 올 것이라서 가입 해 놓고 도적이 갑자기 들었다고 땅을 쳐봐야 이미 만난 도적떼는 내 집을 털어간 후가 아닌가.



보험을 팔 때 고객에게 약속하지 않았는가? 위험으로부터 고객님의 삶을 지켜주겠다고. 그게 보험이라고. 보험이라는 경비대를 일하게 하라. 그러려면 월급을 줘야 한다. 단 한 달만 급여를 밀리면 당신의 고객은 회사에 남을까? 그러나, 보험은 2달은 기다려준다. 고객의 계약 유지 관리를 하는 것은 나의 수당을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둑이 고객의 삶을 빼앗아 갈 틈을 막아주는 일이다.



보험의 영업이 활성화되는 동안 소비자들에게 보험 혜택의 기회도 늘어난 반면 그 가치의 본질 또한 영업사원과 소비자라는 관계 사이에서 변질되었다. 보험이라는 상품 본연의 본질을 설계사는 물론 소비자까지 이해할 때 보험으로 인한 혜택의 기회와 유용함도 늘어날 것이라 생각한다.



“그날이 도적같이 이를 줄 너희는 모르느냐. 늘 깨어 있으라 잠들지 말아라.”



고객과 함께 인생의 도적을 상대로 싸우는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이수현 손해사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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