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보험이다.16
피해자 탈출
많은 사람들이 “그땐 그랬지”라고 기억하는 IMF 시절, 나는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했다. 내 나이 만으로 22세, 너무나 가고 싶던 국어국문학과를 휴학하고 나는 생업에 뛰어들어야 했다. 졸업장이 없던 나는 번듯한 직장에 취직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고, 그야말로 어린 나에게 무섭지 않은 곳에서 일을 시켜만 준다고 하면 닥치는 대로 다했다. 빨리 돈을 모아서 다시 학교로 돌아가겠다고 밤에는 인형 눈깔을 붙이겠다고 재료를 잔뜩 집에 가져다 놓고 기한을 못 맞춰서 재료값만 물어준 적도 있었다. 그렇게 뭔가 지독하게 열심히 했는데 모든 게 쉽지 않았다.
전단지 배포하는 일은 급여를 떼였고, 컴퓨터회사에 들어갔는데 그 회사가 취업자 전형 입학 사기를 컨설팅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퇴사 후 관련 내용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고 당시 사회적으로 물의가 됐던 다단계로 카드값 체납으로 무서운 빚독촉을 받았었고 혼자 사는 골방에 좀도둑이 들어서 일하는 데 꼭 필요한 생필품을 몽땅 도둑맞아서 출근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
없는 월급에 푼돈으로 하나씩 샀던 헤어드라이기, 면접 보러 다닐 때 입어야 하는 정장, 구두, 선물 받은 화장품. 내 급여를 떼먹은 나쁜 사장, 나도 모르는 새에 범죄에 연루되게 만든 나쁜 그 대머리 사장, 내 신용카드로 물건을 사서 돈 벌라고 했던 나쁜 그 언니, 벼룩의 간을 잘근잘근 씹어먹은 그 나쁜 좀도둑.
20대 나의 세상에는 나쁜 놈들이 가득했다. 나를 돕는 내 편이 없어서 나쁜 놈들이 나를 괴롭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쁜 놈을 걸러내려고 무던히 노력했지만 무한 재생되는 히어로 영화의 빌런들처럼 내 삶의 곳곳에서 크고 작은 나쁜 놈은 속출했고 나는 공포스럽지만 더 당하지 않기 위해 아무것도 겁나지 않는 척하는 공갈빵 같은 어리고 못난 여자애였다.
그 어리고 못난 여자애 나이의 두 곱절보다 많은 나이가 된 나는 매일 나쁜 놈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전화를 받는다. 어떤 나쁜 놈이 차선 위반을 해서 나를 다치게 해놓고 과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보험사가 당연히 줘야 할 돈을 주지 않는다. 우리 아이가 학원에서 안전하게 보호받지 못해서 다쳤다. 보도블록 공사를 제대로 안 해놔서 내가 다쳤다. 온통 자신이 겪은 나쁜 놈들이 얼마나 나쁘고 자신이 얼마나 억울하고 기가 막힌지를 말하면 그 억울함이 얼마나 금전으로 환산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게 내 직업이다.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수많은 전화들. 나는 피해자의 전화를 하루에 수십 통을 받는다.
그 외에도, 내가 보험금 청구를 도와서 받은 보험금이 몇 1000만원인 데도 고맙다 말 한마디 없는 고객에 대한 서운함이나 무례함을 토로하거나, 조직 운영의 비합리성으로 인해 본인이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 등 타인으로 인해 정서적, 물리적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많다.
나는 사고에 있어서 민사적 책임의 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분해야 한다. 그리고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배상해야 할 손해가 얼마인지를 산정한다. 피해자와 가해자는 서로 전혀 모르는 타인이기도 하고 몇 십년지기 친구이기도 하고, 반찬을 나누던 옆집 이웃이기도 하고, 직장동료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들은 나에게 피해자 또는 가해자가 된다. 내 머리 속에는 그러한 잣대가 존재한다.
그런데 그 잣대의 눈금을 나누고, 나누고, 나누고 또 나누다 보니 어느 누구도 온전히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급여를 떼먹은 사장은 자기 자식 대학 등록금이 더 급했기 때문이었을 수 있고, 그 대머리 사장은 말단직원인 나까지 조사받아야 하는 줄 몰랐을 수 있고, 그 다단계를 알려준 언니는 정말 내가 부자되길 바랬었을 것이다. 내 골방을 털어간 좀도둑은 자물쇠가 약한 내 골방을 터는 것만이 가능한 초범에 내 정장을 훔쳐입고 면접을 보러가야 하는 사정이었을 수 있다. 그들이 그 상황으로 몰리기 전에 다른 나쁜 놈을 만났겠지. 나는 누군가의 나쁜 놈이었던 적이 없었던가? 가해자였던 적이 없었던가?
그들도 나도 자신의 삶의 순간, 순간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노력했던 것뿐이었다. 그들은 나쁜 놈이 아니었고 나는 당한 게 아니었다. 그들은 가해자도 아니었고 나는 피해자가 아니었다. 나의 삶을 20대의 삶을 피해자의 삶으로 규정하지 않기로 했다. 나를 피해자라고 느꼈던 그 많은 두려운 순간과 분노와 공포로부터 자유로워지기로 했다.
나에게 자신에게 일어난 안 좋은 일을 이야기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나는 진정 얘기해주고 싶다. 민법상의 피해자와 가해자는 편가르기가 아니라 일을 해결하기 위한 구분이라고. 오늘 나에게 정서적, 물리적 상처를 준 사람을 가해자라고 규정지어 나를 피해자로 만들지 말라고. 그가 당시 자신의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하느라 나를 아프게 한 건 사실이고 잘못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있어 나를 당한 ‘피해자’로 규정하지 않았으면 한다. 피해자는 수동적이고 약하고 억울한 역할이다. 그냥 나도, 상대도 자기 삶을 살아내면서 해결해야 할 문제의 동일선상에서 만났을 뿐이다. 억울하지 않은 정도의 배상을 받고 처발받지 않을 정도의 배상을 하되 마음에 피해자로서의 억울함으로 자신을 옭아매지 말자. 그게 자신을 나쁜 놈 혹은 나쁜 일로부터 가장 잘 보호하는 방법이다. 이 온 우주 안에 유일무이한 나를 누구에게도 당하지 않는 사람으로 규정하자. 모든 일상에서 승리하는 당신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