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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조 Jul 01. 2024

알사탕 제조법


사람이 보험이다.17

알사탕 제조법



요즘 동화에 빠졌습니다. 인터넷서점에서 사고 싶은 책을 주문하다가 우연히 상단에 뜬 동화책 신간 광고 링크를 클릭했습니다. 동화책은 지인의 자녀가 어린 경우에 아주 가끔 선물하기 위해서만 구매할 뿐이라 저한테 그 광고 피드가 떴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제가 그걸 클릭했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알 수 없는 매력에 이끌린 건지 마법에 걸린 건지 저도 모르게 즉시 구매를 하였습니다. 그 다음날 잘 풀리지 않아 오랫동안 고생하며 쓴 사망 건의 손해사정서를 완료해 놓고 그간 미뤘던 다른 일들을 처리하면서 지쳐있을 때 동화책이 배송되었습니다.


백희나 작가의 신간 ‘알사탕 제조법’. 이 책의 내용은 알사탕을 제조하는 레시피로, 알사탕을 제조하는 데 설탕이나 향신료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아주 고난이도의 요가 동작 여러 개와 반짝이는 별빛이 주재료로 정성을 들인 후 자고 일어나면 ‘간절한 마음의 소리를 듣게 되는 알사탕’이 만들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알사탕 제조에 실패한 어린이는 67세가 되었을 때 다시 시도해 보기 바란다. 단, 이 책에 실린 요가 동작을 매일매일 수련해야 한다”가 이 책의 마지막 내용입니다.


이 손바닥만 한 책을 읽는 순간 모든 고통이 사라지고 그저 행복한 느낌만이 몽글몽글 올라와서 순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내가 언제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아무 이유 없이 막연한 이 행복감을 느껴 본 적이 있었던가 생각해 봤는데 기억이 허락하는 한은 없었습니다. 저는 이 책이 무엇보다도 나한테 감동하라고, 재미를 느끼라고, 순수해지라고 강요하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그저 막연히 행복해졌습니다.


‘알사탕 제조법’을 만난 이후로 사탕을 먹지도 않았는데 맨날 ‘아프다, 다쳤다’하는 나의 일상에 막연한 달콤함이 쏙 들어왔습니다. 며칠간 틈만 나면 희한하고 요상한 요가 동작들과 별빛들이 떠올라 길을 걷다가도 문득, 씨익 웃게 됩니다.


오늘 아침 숨도 쉬기 힘든 만원 전철 속에서, 역에서 내려 사무실까지 걷는 동안 알사탕을 느끼다가 문득 깨달았습니다. 이 동화가 왜 내 가슴 속을 몽글몽글하게 만들었는지. 내 칼럼 한 편 분량도 안되는 이 짧은 글 안에 인생의 모든 이해와 위안이 있었습니다.


고난이도의 요가 동작은 인생을 살면서 어렵지만 해내야 하는 일들입니다. 어렵지만 부모 노릇을 해내야 하고 어렵지만 화가 나는 일을 참아야 하고, 어렵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겪어내야 하고, 어렵지만 암에 걸린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고, 어렵지만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고, 어렵지만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우리는 매일매일 난생 처음 본 적 없는 고난이도의 요가 동작을 해내듯이 새로운 사건사고를 겪어내고 살아냅니다. 그러다 보면 밤하늘을 보느라 잠깐 멈춰보면 별빛이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그 순간을 알사탕처럼 만지고 맛볼 수 있는 현물로 가지고 싶어하지만 자주 실패하지요. 우리는 그걸 자주 아니 어쩌면 별이 뜨는 밤마다 꿈꾸고 실패하지만 다시 초연하게 요가 동작으로 삶을 수련해 나가면서 나이를 먹어갑니다. 그러면서 어느 날 알사탕 레시피에 필요한 가장 빛나는 별빛과 즐거운 독서와 별빛을 머금은 물방울을 만들어내는 요령이 숙련되고 그 타이밍을 알아차리는 나이가 되어 갈 것입니다. 그렇게 인생을 잘 채워나가다 보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사람이 되어가는 거라는 걸로 이해되었습니다.


백희나 작가는 아마도 67세 정도가 되면 만나는 누군가의 ‘간절한 마음의 소리를 듣게’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백희나 작가도 그 나이가 되려면 14년이 남아있습니다. 저는 67세가 되려면 14년보다 더 남았으니 14년 후에 작가에게 알사탕을 드디어 제조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정말 열심히 요가로 수련하다가 보면 그렇게 소중한 알사탕을 얻을 수 있는지 말입니다.


이 동화에서 우리가 가장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은 마지막 페이지에서 만날 수 있는 알록달록 알사탕이 아닙니다. 나무 자세, 두루미 자세, 왕비둘기 자세, 개똥벌레 자세 등 이름을 들어도 그 동작이 상상이 되지 않는 요가 자세들입니다. 팔을 들어올리고 뒤로 허리를 꺾어서… 그림으로 묘사되어 있는 그 동작은 따라 하려면 엉덩방아를 찧거나 넘어질 거 같은 묘기에 가까운 자세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가요? 오늘 각자 어느 요가 동작으로 현실을 맞이하고 있는가요? 오늘 만나기로 했던 사람이 약속을 취소했나요? 아침부터 배우자가 짜증을 냈나요? 아이가 내 맘을 몰라줬나요? 누군가 오늘 다짜고짜 화를 냈나요? 자동차사고가 났나요? 잘 해결해 나가는 요가 동작을 해내고 계신 거지요?


그렇게 요가 동작으로 하루를 충실히 채워내고 나면, 별이 빛나는 하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반짝반짝 별빛이 가장 빛나는 순간을 기다려보세요. 그리고 그 별빛으로 오늘밤도 알사탕을 만날 꿈을 꾸며 잠들어요. 혹시 내일 아침에 알사탕이 없더라도 다시 요가 동작을 해내면서 다시 기다리기로 해요. 우리에게 ‘간절한 마음의 소리를 듣게 되는 알사탕’의 비법이 수련되도록 말입니다. 고객의 마음이 항상 궁금한 우리에게 그 알사탕이 정말 필요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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