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보험이다.18
다시 20살이 될 수 있다면
내가 다시 20살이 될 수 있다면 나는 손해사정사 자격증을 일찍 준비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지금쯤 훨씬 더 많은 것을 이뤄내지 않았을까? 내가 다시 20살이 될 수 있다면 지방 유지였던 당시 남자친구의 집안 때문에 그 애의 엄마 눈치를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어차피 따로 늙어가고 있는 그 녀석과 나의 20대가 더 빛나는 기억으로 남았을 텐데.
당신은 다시 20살이 된다면 어떤 선택을 새로이 하고 싶은가? 필자는 보험사고 이후 사고일로부터 얼마 전에 해약한 보험을 아쉬워하는 사람을 자주 만난다. 상품을 개발한 보험계리사가 해고당했다는 설이 있는 삼성생명의 ‘여성시대’와 ‘신바람’을 해약한 걸 10년째 후회하는 사람을 만난 적도 있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하고 시간이 지난 후 그 선택의 의미와 가치를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선택. 사람들은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 어떤 형태로든 값을 치른다. 보험에 가입하여 보험료를 납입하게 되면 보장을 받는 대신 외식을 줄여야 한다. 한 남자랑 결혼하기를 선택하면 다른 남자와 결혼할 수도 있는 기회를 포기해야 한다.
보험설계사는 고객으로 하여금 수많은 선택을 하게 하는 직업이다. 선택은 다른 의미로 포기를 내포한다. 사람들은 그때 아무개 설계사를 만나서 어떤 보험을 가입한 것이 신의 한수였다고 얘기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탁월한 선택을 자랑스러워하고 자신의 복됨에 안도한다. 반면 어떤 보험을 해약하여 보험금을 놓쳤다고 생각되면 말리지 않았거나 해약을 권유한 설계사를 원망한다. 현재가 좋으면 선택이 보이고 안 좋으면 포기가 보인다.
어쩌면 좋은 선택은 ‘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되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손해사정사인 동시에 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2018년에 일이 굉장히 잘되었는데 다음해부터 매출이 하락한 것도 아닌데 회사가 너무 힘들었다. 도저히 회사 이사를 할 여유자금이 없었는데 강행했다. 그 과정에서 믿고 있던 직원이 상당 기간 횡령을 해왔기 때문에 회사 자금이 바닥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만약, 그때 이사로 인한 경제적 손실 등을 이유로 이사를 하지 않았더라면 회사가 온전히 일어설 수 없을 때까지 몰랐을 수도 있었다. 필자는 당시에 밑도 끝도 없이 무조건 이사를 해야만 뭐가 해결될 것만 같던 나의 무모한 욕구를 모른 척하지 않았던 나의 선택을 ‘경영인의 본능적인 촉’으로 기억한다. 그가 근무하는 동안 나한테 보여줬던 촘촘한 엑셀 장부는 모두 거짓이었고 10원 한자리까지 딱딱 맞아떨어지던 법인통장내역은 허상이었다.
당시 횡령하고 도망간 직원을 경찰에 신고하고 잡으러 다녀야 했지만 나는 “나보다 돈 더 잘 버는 대표님이 이해해야 한다”는 그 나쁜 년의 전화를 마지막으로 그와 자금회수에 대한 모든 미련을 버렸다. 내 활동이 매출이고, 내 활동이 영업인 코딱지만한 회사에서 횡령의 입증과 그 뻔뻔한 태도에 대한 분노의 에너지를 썼더라면 당장 법인카드 값도 메꾸기 힘들었던 회사는 1년을 채 버티지 못했을 것이었다. 필자는 자신을 위해 ‘분노를 위한 멈춤’ 대신 ‘가치를 재생산’ 하는 길을 선택했지만, 그 길은 몇 달간 술 없이 잠들지 못하는 나 자신과의 지난한 싸움이었다.
좋은 선택은 계속 바뀐다. 당신이 너무나도 사랑해서 선택한 당신의 배우자가 때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하고 날카로운 칼이 되어 당신을 공격하기도 하고 별생각 없이 익혔던 작은 재주가 당신을 먹여 살리기도 한다. 엄마가 암으로 사망했는데 암보험 하나 없었던 엄마를 원망했던 딸은 암보험을 선택하느라 다른 질병은 모두 포기한다. 매우 비합리적인 선택이지만 어차피 사건, 사고의 확률 앞에 우리의 모든 선택은 ‘좋은 선택’이 되기에는 언제나 불완전하고 해결이 아니다. 우리 모두 미래를 위해 보험을 가입하지만 사실은 현재의 내가 편하고자 결정하고 선택하는 것이다. 지금의 내가 암이나 치매에 걸린 미래의 내가 걱정되기 때문에. 후회할 미래의 나를 지금의 내가 걱정하기 때문이다. 올겨울 식량을 준비하는 다람쥐보다 훨씬 더 먼 미래의 나를 걱정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의 탁월한 능력이다.
보험 가입이 미래의 내가 아닌 현재의 나를 위한 선택이라는 것이 자칫 허무함을 느끼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야? 어차피 미래의 나는 상관없다는 거야?” 하는 반감이 올라올 수도 있다. 나는 미래를 위한 선택을 하는 데 있어서 현재의 나에 온전히 집중한 선택을 했으면 한다. 내가 보험료를 얼마나 납입할 수 있는지,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그저 오지도 않은 미래의 치매에 걸린 내가 걱정이 돼서 오늘의 건강검진 결과에서 경고한 이상 수치는 안중에도 없지 않은가? 그리고 늙은 내가 걱정이 돼서 미래의 내 옆에 있을 사람의 존재가치를 현재 무시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인간의 탁월함이 만들어 낸 선택의 상품인 ‘보험’의 이익이 실현되는 순간을 만들어 내고 선택의 후회와 아쉬움을 생생하게 듣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큰 사고가 나면 그 사고와 관련된 보험을 더 가입하지 않은 것을 가장 후회한다. 결국, 우리는 그냥 지금을 잘 살면 된다. 오늘 사고가 날지 몰라서 어제 설계사를 돌려보낸 걸 자책하지 말자. 어쩌면 나 말고 내 가족한테 보험이 필요해서 일어난 사고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현재는 언제나 ‘선택’이라는 카드가 준비되어 있다.
그냥, 지금 당신이 좋았으면 좋겠다. 지금 당신의 ‘좋음’을 충실히 온전히 알아차리고 누리고 느끼자. 보험 가입도 미래의 불행한 내가 아닌 지금의 나의 안정을 충만히 느끼는 순간이어야 한다. 현재의 당신이 ‘포기’ 말고 ‘선택’을 누렸으면 한다. 당신은 현재 좋다. 매우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