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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조 Jul 01. 2024

니즈와 언컴포트

사람이 보험이다.15

니즈와 언컴포트



필통을 새로 샀다. 사용하던 가죽필통을 찾지 못해 현재 사용하고 있는 색동패브릭 필통을 상담 때 꺼낼 때마다 왠지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항상 사건, 사고를 겪는 분인데 알록달록한 필통에서 펜을 꺼내는 상황이 뭔가 맞지 않는 듯했다. 물론, 나를 만나는 어느 누구도 내 필통의 색깔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내가 불편했다. 그래서 비가 내리는 오늘 우산을 쓰고 전철을 한 번 갈아타야 하는 곳을 가서 필통을 샀다. 그리고 2개 중에 어느 것을 살지 고민하다가 2개를 다 샀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한 경우 나머지 하나에 대한 아쉬움이나 후회 때문에 다시 움직이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보다 지금 필통 하나 값을 더 치르는 것이 훨씬 더 저렴한 기회비용이 발생하는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휴일인 오늘도 사무실에 나와 있어야 할 정도로 일이 많으면서 당장 없는 것도 아닌 필통을 바꾸겠다고 시간을 내었다. 나는 새 필통이 정말 필요했을까? 대형서점의 커다란 문구 코너를 몇 바퀴 돌면서 나 스스로 여러 번 질문을 했다. 빨리 사무실에 가서 해야 할 일들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면서도 마음에 쏙 드는 필통을 고르려고 열심을 내는 내 자신을 보면서 나는 진심으로 내 마음이 궁금했다.


“너 정말 새 필통이 필요하니?”


“아니.”


나는 새 필통이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 지금 사용하는 필통이 색동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가볍고 가방에 쏙 들어가고 내가 필요로 하는 필기구가 적당히 딱 담긴다. 나는 새 필통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었다. 나는 지금 쓰는 필통이 불편했다.


불. 편. 함.


나는 이 세 글자를 이번 칼럼에서 논하고자 한다. 나는 새 필통이 필요해서 사지 않았다. 나는 불편함 때문에 새 필통을 샀다. ‘필요’가 아닌 ‘불편’이 나를 전철을 타는 불편과 시간과 돈을 써서 새 필통을 구매하게 하였다. 더구나, 다시 그 일을 할 위험까지 제거하고자 정말 꼭 필요하지도 않은 필통을 2개나 구매했다. 필요가 아닌 불편이 나로 하여금 돈과 시간을 쓰게 만들었다.


우리는 고객의 니즈(needs)라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한다. 니즈 환기, 니즈 파악 등 니즈는 보험뿐 아니라 모든 영업의 기본이다. 니즈를 ‘필요’라고 해석하는 것이 과연 맞을까? 우리가 일반적으로 ‘니즈’라고 부르는 것의 실체는 언컴포트(uncomfort) ‘불편’이 아닐까? 이제, 필자의 필통이 아닌 우리가 판매하는 보험으로 니즈와 언컴포트를 대입해 보자.


홍길동 설계사가 성춘향 고객에게 암보험을 판매했다고 하면 성춘향은 암보험이 필요해서 가입한 것일까? 물론, 홍길동이 성춘향의 암보험에 대한 니즈 환기를 잘했고, 홍길동이 제안하는 상품이 성춘향의 니즈에 부합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시점에서 다시 이 니즈를 재해부해봐야 한다. 성춘향이 암보험에 가입한 이유가 ‘암보험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였을까? 아니다. 보험가입자의 대부분은 ‘없을 때 보험사고가 발생한다면?’이라는 불편함 때문에 보험료를 지불하는 것이다. 만약, 종신보험 없이 내가 사망한다면? 실손보험 없이 치료비가 많이 발생하는 질병에 걸리게 된다면? 자동차보험 없이 내가 교통사고를 내게 된다면? 모든 보험의 소비는 ‘필요’가 아니라 ‘불편’ 때문에 ‘불안’ 때문에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운운하는 니즈는 결국 필요가 아니라 불편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니즈라는 단어의 뜻 ‘필요’에 갇혀서 우리가 판매하는 상품이 갖고 있는 ‘불편’의 가치를 지나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가 만나는 고객들의 가입내역을 조회한 후 대부분의 경우 고객에게 이렇게 말한다. “제가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려드리고 불필요한 거는 정리해드릴게요.”


고객의 보험가입내역을 보고 고객이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보험을 찾아내고, 그 대신 훨씬 필요한 보장에 대하여 비용을 지불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뜻일 것이다. 나는 그 전에 보험가입내역을 보고 고객이 가지고 있는 ‘불편함’을 읽어내는 것이 선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불편함’을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제안하는 것. 그것이 보험가입내역을 분석한 설계사의 피드백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무언가에 돈을 쓰는 이유가 ‘필요’인가 ‘불편함’인가? 보험에 가입하는 이유가 ‘니즈’인가 ‘언컴포트’인가? 누군가는 “이게 뭣이 중헌디?”라고 물을 수도 있다. 우리가 움직여야 할 대상이 집중하는 포인트가 ‘니즈’인가 ‘언컴포트’인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사람은, 인간은 필요한 걸 참는 것보다 불편한 것을 참는 것을 더 힘들어한다.


오늘 점심에 먹는 메뉴가 먹고 싶은 김치볶음밥이 아닌 것보다 굶어야 하는 것이 더 힘든 것과 같다. 원하는 김치볶음밥은 아니지만 된장국밥은 먹을 수 있는 사람에게 김치볶음밥을 파는 것과 굶어야 하는 사람에게 김치볶음밥을 파는 것은 전혀 다른 세일즈 과정을 필요로 한다.


매일 나를 찾는 ‘불편’한 사람들을 위하여 오늘도 나는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 오늘도 글을 쓰며 나를 들여다본다. 당신도, 만나는 고객들에 앞서 본인 안의 ‘불편’과 ‘필요’를 알아차리기 바란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가 만나는 고객이 김치볶음밥을 필요로 하는 사람인지 김치볶음밥이 없으면 굶어야 하는 사람인지를 구분해야 한다. ‘니즈(needs)와 언컴포트(uncomforts)’ 나는 오늘 이 둘을 구분해 내면서 손해사정사라는 사람을 찾아오는 사람들도 모두 ‘불편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아무리 보험금을 못 받았어도 그 사실이 참을만한 사람들은 손해사정사를 찾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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