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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Mar 23. 2021

싫어할수록 나는 네가 더 좋아


상점에 진열된 모든 상품은 매출에 반영된다. 그러나 모든 상품이 영업이익에 기여하는 것은 아니다. 판매하는데 품도 많이 안들면서 이익률도 좋은 상품도 있지만 마진율이 너무 낮아 팔수록 손해인 상품도 있다. 또 구색을 위해 혹은 미끼 상품으로 진열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상점을 운영하다보면 팔렸을 때 쾌재를 부르는 상품도 있고 손님이 아무리 돈을 내도 팔기 싫은 상품도 있다. 상점 주인이 가장 팔기 싫은 상품은 팔수록 손해보는 상품이 아닐까 한다.



보험도 상품이다. 일반 상품과는 다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보험상품에도 보험사가 팔기 싫은 상품이 분명히 있다. 오늘은 보험사가 팔기 싫어하는 상품은 어떤 것이 있는지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보험계약자에게는?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남기겠다. 참고로 이 내용의 판단기준은 어떤 통계자료나 조사결과가 아니라 인수기준의 변화나 보험사의 상품정책 등 현 업계에 15년차 된 사람으로서 나름의 판단 결과이므로 나의 의견에 동의를 할지 말지 역시 독자의 몫으로 남기겠다.



이수현 손해사정사가 보기에 보험사가 팔기 싫어하는 보험은 아래와 같다.



1. 단연 1위는 실손보험이다. 설계사들은 고객과 상담할 때 어떻게 실손보험이 없을 수 있느냐며 실손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마치 무면허로 운전을 하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러나 보험사에서는 그렇게 열심히 실손보험을 파는 설계사들 때문에 냉가슴을 앓는다. 실손보험은 장기보험상품군 중 유지율이 가장 높은 상품이다. 의료기술이 빠르게 발전해감에 따라 치료비는 점점 고가화된다. 10년전에 가입한 실손보험의 보험료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치료비 상승률이 가파르다. 예를 들어 10년전 A질병에 들어가는 치료비가 1000만원이었다면 현재는 발전된 치료법에 고가화된 치료기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2000만원이 들어가게 된다. 이렇게 의료비의 상승은 끝을 모르는데 보험료는 아무리 손해율에 맞춰서 갱신한다고 해도 25%로 제한돼 있어 의료비 상승에 따른 지급 보험금을 상쇄하지 못한다. 이런 실손보험은 보험사에는 팔릴수록 고민을 안긴다. 그래서, 요즘 ‘착한 실손으로 보험료 절감하세요’라고 캠페인을 하는 경우가 있다. 누구에게 착한 실손보험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2. 다음은 납입면제되는 상품이다. 말 그대로 일정 조건을 맞추면 보험료 납입이 면제가 된다. 보험료는 납입을 멈추지만 보험사고가 발생하면 보험금 지급 혜택은 그대로 남아있고 심지어 해약환급금도 적립돼 만기에 달했을 때 해약환급금은 납입면제를 받기 전과 동일하다. 주택으로 치면 평생 월세를 안 내고 공짜로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현재는 이러한 납입면제 기능이 있는 상품이 없어지거나 그 범위가 점점 줄어들고 있고 납입면제 기능에 대해 부가보험료를 더 받는 상품도 있다.



3. 재해상해, 장해연금 등 사고 등으로 인해 장해율을 인정받았을 때 보험금을 지급하는 상품도 보험사가 팔기 싫어하는 상품이다. 나도 보험을 잘 모를 때는 이 상품이 살면서 실효성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살면서 장해를 겪을 일이 흔치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험약관상 장해란 치유돼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를 말하는 것이고 그 상태가 장해율에 해당하면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상품들은 진단금처럼 가입금액이 지급한도액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험금 지급액의 기준금액이다. 따라서 여러 사고 합산 장해율이 100%를 초과하면 가입금액을 초과하는 금액을 보험금으로 지급받게 된다.



4. 질병후유장해. 재해상해나 장해연금과 같은 장해분류표를 기준으로 하나 그 원인이 질병인 경우 보험금을 지급받는 상품이다. 이 상품은 비싸다는 이유로 많이 판매하고 있지 않지만 나는 손해사정사로서 이 상품이 암진단금의 가격과 비교했을 때 비싼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5. 근로자재해보험. 산업재해로 인한 산재보상액 초과손해액 배상을 위해 사업주가 가입하는 보험이다. 산재가 자동차보험에서의 의무보험 대인1이고 근로자재해보험은 초과보험인 대인2의 기능을 한다. 산재는 기업에서 의무적으로 가입을 하거나 사고 후 가입으로 처리가 되지만 근로자재해보험은 임의보험으로 사고 당시 가입이 되어 있어야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대개 이 상품을 건설현장 보험으로만 알고 있지만 그것은 건설현장 원청업체에서 하청업체에 사업수주시 근로자재해보험증권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임의보험이기 때문에 가입을 안해도 상관은 없지만 건설현장의 경우 사고가 나면 산재를 초과하는 기업의 근로자에 대한 배상책임을 하청이 못하면 원청에서 부담해야 하므로 그 책임이 하청에서 해결될 수 있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이 상품은 어느 업종이든 가입할 수 있고 보험료도 매우 저렴하고 비용처리도 된다. 그러나 보험사 입장에서는 보험료가 너무 싸서 돈이 안되고 인수과정도 힘들다. 이 때문에 보험사에서 잘 가르치지 않아 잘 모르는 설계사들이 많다. 내가 대리점 대표님들 만나서 근재보험 많이 팔아야 기업도 살고 근로자도 보상을 잘 받는다고 얘기하면 그러지 말라고 손사래를 친다. 나는 보험료가 조금 더 오르더라도 많은 사업장이 이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상으로 보험사가 팔기 싫어하는 상품을 내 기준으로 꼽아봤다. 반대로 보면 손해사정사인 나의 입장에서는 지인이 가입했으면 하는 상품들이다. 물론 보험상품을 고를 때 모든 선택에 맞는 정답은 없다. 그러나 좋은 참고사항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수현 손해사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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