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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Mar 03. 2021

“저를 그만 잊어주세요!”


사람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때쯤 전화가 걸려오곤 한다. 친구들조차도 ‘그 친구는 어찌 지내누~’ 싶을 때 연락이 온다. 연락은 항상 반갑지만 안 좋은 소식이 함께일 때가 대부분이다. 교통사고가 났거나 누가 암에 걸렸거나 주변 누군가의 사망소식일 때도 있다. 오랜만에 연락해서 ‘안 좋은 소식으로 물어보기만 한다’며 미안해 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라도 소용되고 생각나는 사람이라서 다행입니다’라고 답한다. 진심이다. 크든 작든 막다른 골목에서 나를 떠올려줬고 내가 도움이 될 존재로 기억되어서 감사하다. 그래서 이 일을 좋아한다.


그러나 손해사정사라서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을 할 자신은 없다. 항상 상황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보탬이 되려고 애쓰는 일을 하지만 의뢰인들은 상황이 너무 어려워서인지 나의 마음까지 돌볼 여력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나는 이게 팔자인지 유가족들이나 피해자들이 힘든 일 겪은 뒤 보험금 받은 것으로 남은 생을 잘 이어나가는지, 그들에게 보험금이 정말 희망이 되었는지 항상 궁금하다. 이제는 안 하지만 한때는 사고를 겪은 피해자나 유가족들에게 1년 정도가 지나면 연락을 해보곤 했었다.



나를 만나서 보험사가 지급을 거절했던 보험금이 아파트 중도금이 되고, 망할 뻔한 회사를 살리고, 연금이 되는 걸 보았고 그 보험금의 기쁨과 감사함으로 보험금을 받아야 할 만큼 상처받은 마음이 치유된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번번히 상처를 받아서 이제는 피드백 필요치 않은 정보전달 문자 외에는 연락을 하지 않는다. 설레는 마음으로 연락을 한 사람들의 반응은 의외로 냉랭했다.



“왜 연락하셨어요? 우리 일은 끝난 거 아닌가요?”


“저는 제가 보험금을 받은 사실을 주변이 아는 걸 원치 않아요. 혹시 저를 소개해준 아무개에게 제가 보험금을 얼마 받았는지 얘기하신 건 아니죠?”


“저는 손해사정사님을 만났던 시간 자체를 잊고 싶어요. 그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때였어요.”



이러한 반응들이 서운하지만, 진심으로 이해가 된다. 그들은 대부분의 타인들이 겪지 않는 엄청난 사고를 만나서 거의 울부짖는 마음 상태에서 나를 만나고, 그런 그들은 언제든 감정적으로 폭발할 준비가 되어있는 상태로 세상을 대하고 있었다. 그들은 갑작스런 사고와 힘든 병간호로 잘 씻지 못하고 잘 자지 못한 상태거나 병원에서 큰 수술 후 회복이 안 된 퉁퉁 부은 상태 혹은 장례식장에서 나를 만나 자신의 가장 힘든 문제를 이야기했다. 친구한테도 얘기 안한 채무관계를 고백해야 할 때도 있고, 자신의 많지 않은 소득을 나에게는 공개하기도 한다. 죽은 남편과 별거해야 했던 이유를 상세히 설명해야 할 때도 있었다. 보험금은 원하지만 자신이 무언가를 희생하고 보험금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는 비도덕적인 일로 생각하는 시선을 두려워하기도 했다.



그 시간을 견디려면 누군가는 그들에게 그런 상황들을 직시하도록 도와야 한다. 내가 그걸 했고 그 시간은 지나갔고 나도 그 시간과 함께 지나간 사람이 된다. 그들로선 자신들이 잊고 싶은 그 시간을 기억하는 내가 불편한 건 당연한 일인 것이다. 같이 고민하고, 같이 가장 힘든 시간을 보냈기에 반가울거라 기대했던 내 계산은 완전히 틀렸다. 이걸 인정하고 나니 내 일이 허무해졌다. 고맙다, 감사하다를 바라는 건 내가 무료봉사를 하는 것도 아닌데 욕심이라해도, 그냥 잊어버리고 싶은 사람이라는 것이 의뢰인을 만나는 마음이 경직되도록 하고 방어기제가 생기도록 했다.



그러나 시간이 더 흐르고 보니 내가 의뢰인들에게 잊혀지는 것까지가 내 역할의 완성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힘들 때 친구도 가족도 알지 말았으면 하는 것들을 이야기하고 기대어 일을 함께 처리한 후에 그런 일도, 그 과정조차도 함께 삭제하고 그 과정으로 인해 득한 보험금만 영유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나조차도 그 사람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잊어주는 것이 어쩌면 가장 높은 버전의 손해사정사 업무클로징이 아닐까. 지금은 시간이 흘러 새삼 연락을 하는 건 철부지 손해사정사의 자아도취, 자기위안 생색이었을 수도 있다. 자각이 된다. 그리고 더 오래 일을 하다보니 이런 전화도 온다.



김○○님 : 여보세요! 이수현씨?


이수현 : 네, 어머니. 안녕하세요.(또 무슨 일 생긴 줄…)


김○○님 : 이수현씨는 사람이 어쩜 그래? 내가 궁금하지도 않어? 나 사고 난 지 7년이나 되었는데, 전화 한 통이 없냐? 내가 눈 뜨면(양안 실명함) 제일 먼저 이수현씨 김치 담가주는 게 소원인데… 아직 이러고 살어. 그래도 건강히 잘 있어.


이수현 : 제가 곧 찾아뵐께요. 어디세요?



며칠 후 바로 다녀왔다. 장해 인정을 받으려고 전투적으로 휠체어 타고 이 병원 저 병원 다닌 이야기도 나누고 그동안 늘어난 내 흰머리랑 몸무게 이야기도 했다. 헤어지면서 울먹울먹했다. 우리 사이에 무엇이 있어 눈물이 나게 하는 걸까? 모르겠는데 알 것도 같다. 그리고 그 무엇이 나에게 오늘도 잊혀질 용기를 준다.



“손해사정사이기에 기꺼이 잊혀져드리겠습니다.”









이수현 손해사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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