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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Jan 14. 2021

피보험자는 피 보는 사람?

정말 아주 오~래 전에 생명보험설계사 시험을 봤었다. 내 나이의 숫자 앞자리가 두번 바뀌기 전이었으니 그 시절 나는 지금보다는 시험이라는 것을 보기에 참 좋은 성능을 보유했었다.



보험의 3주체로 ‘계약자·피보험자·수익자’를 열심히 외웠다. 당시 팀장은 나에게 피보험자는 ‘피보는 사람’이라고 외우면 된다고 했다. 그러니까 피보험자는 생명보험에 있어서 보험사고의 대상이다. 피보험자가 다치거나 질병에 걸리면 보험사고인 것이다. 나는 그때 ‘정말 그러네’하면서 열심히 외워서 시험을 봤었다.



그리고 손해사정사가 된 지금은 그렇게 열심히 외웠던 ‘피보는 사람’이 틀린 정의였다는 것을 알고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틀린 것이 아니라 생명보험 또는 3보험에 국한된 정의이다.



손해보험에서 피보험자의 정의는 ‘보험의 수혜를 입는 주체’를 말한다. 이렇게 설명하면 일반인들은 다시 머리 속이 흔들린다. 그러면 자동차보험의 경우 피해자가 보험금을 받으니까 피해자가 피보험자인가?



당연히 아니다. 자동차 사고 시 가해자가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더라도 피해자가 가해자(피보험자)에게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권한은 같고 그 채무는 유효하므로 피해자가 보험의 수혜를 입었다고 볼 수 없다.



피해자는 가해자로부터 받을 민사상배상책임액을 보험사로부터 대신 받았을 뿐이다. 자동차보험 같은 배상보험(일상생활배상책임, 근로자책임보험 등)에서 피보험자는 보험금을 직접 수령하지는 않으나 보험금에 해당하는 배상금을 피해자에게 직접 변상해야했던 책임을 면했으므로 보험의 수혜를 입은 것은 피보험자(가해자)이다.



그렇다. 배상보험에서는 보험사고(배상책임이 발생하는 사고)로 인하여 발생하는 채무를 보험사가 대신 부담하게 되고 그 채무를 보험가입내역만큼 보험사가 대신 부담함으로써 피보험자가 수혜를 입게 된다.



인구가 점차 감소하고, 1인 가정이 확산되고 일반화되는 이 시대에 ‘피보는 사람’보다 ‘보험의 수혜를 입는 주체’가 더 되고 싶어하는 것이 요즘 만나는 보통의 사람들의 정서이다.



나에게 변고가 생겼을 때 걱정되는 가족이 존재하지 않는 1인 가정에서는 내 편이 없기에 의도치 않은 사고로 인한 타인과의 민사상 분쟁이 더 걱정되는 것이다. 우발적인 사고로 인해 발생하는 채무(민사상배상책임액)를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예전처럼 이웃끼리 부침개 한 두장으로 해결할 수 있던 시대는 아니지 않은가? 내가 피봤을 때보다 나 때문에 남이 피봤을 때의 보험이 더 필요할 수도 있는 세상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인보험과 더불어 배상보험의 컨설팅이 매우 중요한 시장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는 나는 수시로 업계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배상보험의 시장성에 대해 화두를 던지곤 한다. 그러나 피보험자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여 교차판매 상품의 보장 및 약관을 이해하는 것이 어렵다는 설계사님들을 만날 때가 종종 있다.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의 교차판매가 일반화된지 10년이 넘었지만 상식이어야 될 것 같은 필수개념도 정립이 안된 것이다.



생명보험사는 여전히 ‘피보는 사람’으로 가르쳐도 생명보험설계사 자격증에 합격시켜서 조직원으로 등록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고 교차판매 회사인 손해보험사에서는 흩어져있는 교차설계사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기초부터 가르칠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너무 당연한 손해보험사 입장에서는 그런 것부터 차근히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필요성을 모르는 것 같다. 손해보험사에서도 3보험 위주로 영업을 하시는 분들은 자동차보험은 열심히 팔면서도 자동차보험의 피보험자 개념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현실은 수시로 바뀌는 실손의료비 특약만 제대로 해도 모자를테니까.



지금까지 피보험자의 정의에 대하여 간략하게 정리해보았다. 이제 앞으로 펼쳐질 배상보험의 시대를 리드하는 독자 여러분이 되시길 바라면서!




이수현 손해사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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