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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Mar 16. 2021

피보다 진한 청약서 오라버니



유튜브에 올라온 동영상을 우연히 봤다. 다름 아닌 그룹 신화 멤버 전진의 아버지 찰리박의 충격적인 근황이었다. 만약 아들이 전진이 아니라면 그냥 예전에 잘나가다가 지금은 힘들어진 노인인가보다 하겠지만 요즘 리얼 예능에서 좋은 집에 알콩달콩 신혼생활을 공개하는 연예인의 아버지라는 사실 때문에 ‘충격적인’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찰리박은 노령연금으로 생활을 하고 그중 가장 큰 지출이 한 달에 10만원 정도 나가는 약값이라고 했다. 내가 “실손보험이 없나봐”라고 하자 함께 보던 남편이 말했다. “자기가 평생 무대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상태로 살 줄 알았겠지. 거기다가 아들이 평생 보험이라고 생각했을 걸.”



찰리박이 찾아온 친구에게 “뇌졸중으로 치료받고 퇴원한 날 아들이 병원비 2000만원을 지불해 줬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나는 “진단금보험도 없나봐. 그 진단금 받았으면 적어도 전세방이라도 얻을 수 있을텐데”라면서 남편과 눈을 마주친 채로 손가락을 꼽았다. 뇌출혈 진단금을 헤아린 것이다. 다섯 손가락이 다 안 접혔다. 남아있는 손가락을 보며 연초부터 말없이 어깨에 힘이 빠졌다. 결혼하자마자 남편 종신보험부터 시작해서 보험료를 오랫동안 열심히 냈는데 충분하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지금 누리고 있는 건강도 영원하지 않고 자식과 관계유지도 보장할 수 없고, 자식의 경제적 능력이 내가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가능할 거라는 보장은 더더욱 없다. 장기 투병한 환자들은 나한테 가족보다 낫다고 하기도 한다. 처음 병에 걸렸을 때는 가족들이 마음 아파하고 위로해 주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모두 지쳐가고 본인도 가족들한테 의지하는 것이 초라해져 오히려 아프기 전보다 관계가 더 소원해진다고들 한다. 그럴 때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역시 돈이라고 했다. 목돈으로 들어온 진단금, 암입원비. 가족들한테 미안한 마음에 이것저것 지원해주고 나면 남는 건 외로움뿐이라고 한다. 그런데 다시 보험금이 들어와 통장이 채워지면 든든하기가 열 아들보다 낫다고 한다. 내가 ‘가족보다 낫다’고 말하는 이유는 내가 그 열아들보다 든든한 보험금을 받도록 돕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수현 아니라 이수현 최강 버전을 만나도 본인이 병에 걸리기 전에 가입한 보험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실제로, 암진단금 수령액에 따라서 치료받는 병원의 등급이나 요양병원의 시설이 달라진다. 그리고 요양병원 내에서도 입원비의 등급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의 차별이 생긴다. 집이 아주 큰 부자가 아니고서는 보험이 없이는 요양병원의 입원조차 엄두를 낼 수가 없다. 암 요양병원 한달 입원비가 내가 들은 중 가장 저렴한 곳이 300만원이었고 같은 병원 안에서 500만원, 600만원 등으로 가격에 따른 차등이 있었다. 요즘 히트한 드라마 ‘펜트하우스’의 등급이 요양병원의 암환자들 사이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암은 초기에 진단하거나 말기에 진단받아서 투병기간이 짧은 경우가 아니면 건강보험공단 적용기준 몇 천만원의 치료비는 기본이고 이는 요양병원의 부가시설 이용비용은 제외한 금액이다. 거기다가 투병기간 동안의 노동능력은 ‘0’이므로 말 그대로 기약 없는 마이너스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마이너스 생활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돈을 쓸수록 그 기간이 짧아질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암이 재발되어 요양병원에 입원한 환자들 대부분이 첫 진단 때 돈 걱정에 충분히 요양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그때 제대로 치료했어야 했는데, 암진단금은 최초 1회에 한하므로 재발시에는 목돈이 없어서 집중적인 치료는 현실적으로 더욱 어려워진다. 회복의 가능성도 당연히 낮아진다. 결국 중하고 긴 병은 돈과의 싸움.



옛날에 친정아버지가 그나마 하나 있는 보험을 해약하려고 하셔서 “아버지, 손주 교육비로 병원비할 거냐”고 화를 낸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아직 건강하시지만, 나는 언젠가는 올 날이 진정 두렵다. 그 보험 하나로는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는 걸 잘 알지만, 지금은 내 자식한테 이 공포를 물려주지 않기 위해 내 보험료도 납입해야 하고 나중에 아들한테 큰 재산은 못 물려줘도 고정지출은 줄여주기 위해 아들 보험료도 납입하고 있다. 보험이 뭐길래, 보험은 알수록 허기지고 부족하게 느껴진다.



동학개미 운동으로 주식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부동산이 올라도 손해사정사 하는 10년 동안 주식 팔아서, 부동산 팔아서 치료받고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무엇보다도 주식이나 부동산은 가족의 자산이라는 개념이 있어서 자신의 병으로 인해 가족자산을 소진하는 것과 같아 함부로 현금화하기 어렵다. 하지만 보험은 응당 피보험자의 보험사고에 대하여 지급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의미는 단순한 자산가치의 크고 적음으로 가늠할 수 없는 것이 막상 중한 병으로 치료비가 필요한 환자 당사자의 입장이다.



고정지출이라서 보험료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면서, 그 내용은 그냥 쉽게 아는 사람한테 적당히 가입해서 보험료 내다가 아플 때만 보면 되는 것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손해사정사로서 걱정이다.



보험료를 걱정하면 결정이 세상 쉬운 게 보험이다. 가입 안 하고 안 내면 된다. 하지만, 분명 필요하다는 생각이 있어서 가입을 하고 상담을 받고 있다면, 세상에 나 혼자 남았을 때 내가 보험료만 낸다면 반드시 내 이름으로 내 곁에 남아있을 친정오라버니 하나 만드는 거다 생각하자. 그 보장내용과 담당 설계사와의 인연에 깊이 고민하고, 어릴 때 철없어서 귀찮게 하는 친정오라버니 용돈 준다 생각하고 보험료 열심히 납입해서 중한 병 걸리고 외로울 때 부르기만 하면 열일 제치고 달려오는 친정오라버니 잘 키워보기 바란다.






이수현 손해사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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