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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Apr 05. 2021

'의료사고피해자'에서 '환자'가 되신 것 축하드려요


                                                        

 

 그런 날이 있다. 손가락 절단 장애 때문에 의뢰인을 만나러 가는 날에 아침부터 손가락 장애 환자들 전화가 계속 온다. 작업 중 기계에 손이 끼인 경우, 예초기에 1·2·3수지 절단 후 접합한 경우, 파절기에 손이 들어간 경우 등등. 세상에 손 다친 사람들은 어떻게 나를 알고 전화를 하지 싶은 그런 날.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오후에 눈의 장해평가를 받기 위해 어제밤부터 준비를 했었다. 손해사정사 업무 중 어려운 점 하나가 암호 같은 의무기록을 보는 것인데 그 중 간호사 출신도 어렵다는 것이 안과 의무기록인지라 암호 중의 암호를 해독해서 보느라 머리가 아픈 날이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눈에 대한 전화가 계속 왔다. 당뇨성백내장 인공렌즈삽입술 실손의료비 면책에 분개하는 노인의 분한 목소리, 아버지가 0.1의 시력이었는데 안과에서 수술 후 그나마 남은 시력을 잃었다는 아들의 전화, 암진단 이후 시력이 상실되었는데 장해평가 받아야 하느냐는 전화. 

어제밤부터 눈이 아픈 사람에 대한 생각을 해서 그런걸까? 오늘은 세상에 눈 아픈 사람들이 다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장해평가를 위해 동행한 환자는 백내장 수술을 하고 망막박리로 재수술을 하였으나 한쪽 눈의 시력이 0.1에 이르고 복시가 생겨서 큰 불편함을 호소하였다. 수술한 병원에서는 책임을 인정하고 소정의 합의금을 지급하였으나 의료배상보험에서 배상의 책임이 없다고 하였다. 나를 만난 때는 사고 이후 2년여가 경과 된 때. 더 나아지고자, 잘 보고자 받은 수술치료 이후 눈앞에 갑자기 검은 커튼이 쳐진 채 걷히지 않는 그 느낌을 담담하게 얘기했다. 환자는 이제 수술이 겁이 난다고 했다. 나는, 그래도 병원에서 위자료 성격의 합의금을 조금이라도 지급한 건 정말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고 했지만, 운이 좋은 편과 운이 좋은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라는 것을 그도 나도 정확히 알고 있다. 우선 개인보험의 가입 내용을 검토하고 ‘의료행위로 인한 결과’가 재해 또는 상해가 될 수도 있음을 설명하고 정확한 진단을 받아보기로 했다. 백내장으로는 저명한 선생님의 진료실 앞은 만석이었다. 진료 전 검사 받는 데만 2시간이 걸렸고 예약 시간 3시간이 지나서야 진료를 볼 수 있었다.

“장해평가 받으러 오셨는데~ 장해가 없네요. 수술 이후 안 좋았던 건 맞는데 지금은 다 회복되셨어요. 그리고 지금 호소하시는 복시도 수술로 치료가 가능하십니다.”

 “그럼 선생님 저는 장해가 아닌가요?”

내가 간단하게 정리를 해드렸다. “치료가 필요한 상태이지 장해가 아닌 거죠.”  “감사합니다. 선생님.”

의뢰인이 ‘의료사고피해자’에서 ‘치료 가능한 환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런 경우 보험금 청구내용이 없으므로 나는 수임한 업무의 종결과 동시에 소위 허탕이 된다. 하지만 환자랑 나는 그 병원 직원들이 찾는다는 맛집에서 저녁을 기분 좋게 먹었다. 의뢰인은 속이 시원하다고 했다. 나도 그랬다. 항상, 예전 같지 않은 시력을 느끼면서 답답했던 마음,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 억울함이 있었을 것이다. 예상치 못한 보상을 크게 받아서 기뻐하는 사람을 보는 것보다 실제로는 장해가 해결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감정적 보상은 더 크다. 

얼마 전에는 꾸준한 치료에도 불구하고 경추의 손상으로 인한 상지(팔)의 통증이 불면증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악화되었던 환자가 보험사와 날을 세우고 있었다. 나한테 이렇게 많이 아프니 보상을 많이 받아야 한다는 환자에게 우선은 대학병원 신경외과에 가서 진료를 받아보자고 했다. 신경외과 선생님이 아무리 봐도 경추가 아니라고 정형외과 진료를 연결해주셨다. 여러 가지 검사 결과 상지의 고통은 경추와 전혀 상관없는 어깨뼈 신생물 때문이었고 악성일 수도 있어서 빨리 제거 수술을 해야 하는 것으로 진단되었다. 환자는 자동차보험사와의 싸움을 마무리하고 현재는 어깨 치료를 받고 있다. 

가끔 환자들이 나한테 전화해서 장해를 만들어줄 수 있는 거냐고 묻는다. 글쎄, 장해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사람들이 장해진단금을 받도록 본인이 가입한 장해진단의 조건을 전문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장해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면 나는 정말 장해를 만들어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장해진단을 받은 환자의 보험금 청구에 대하여 장해가 아니라는 의료자문결과를 보내는 보험사는 환자의 장해를 사라지게 해준 것일까? 오늘 협심증(I20) 진단받은 환자 주치의를 만나서 흉통(R07)으로 코드를 바꿔버린 보험금조사자는 환자의 협심증을 치료해 준 것인가? 이제 협심증 환자가 아닌 것인가? 

손해사정사는 장해를 만들거나 병명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다. 이미 일어난 보험사고에 대하여 보험금 지급 여부의 평가 기준이 약관과 법리에 의한 기준에 의해 정당하게 평가받고 소비자가 혜택을 받도록 돕는 사람이다. 그 결과 장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아니라면 아닌 이유를 설명해야 하고 맞다면 그 해당 권리를 정당하게 행사하는 것을 도와야 한다. 그 과정에서 보험금을 기대하며 절뚝절뚝 진료실에 들어갔던 환자가 유유히 걸어 나오는 기적을 경험하기도 한다. (군대 가기 싫어서 꾀병 부리던 피보험자의 어머니가 기뻐하던 얼굴이 지금도 생각난다) 종착점은 조금 다르지만 바로 정당함에 대한 염원은 보험사 측 손해사정사나 나 같은 소비자 측 손해사정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장해가 아니라서 좋다면서도 연신 나한테 미안해하는 의뢰인의 모습에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또박또박 하루를 정리하며 되새겨 본다. 그리고 퇴근 전 메시지를 하나 보낸다. 

“의료사고 피해자에서 치료 가능한 환자가 되신 걸 축하드려요.”

다음에 이 의뢰인 만나면 비싼 소곱창 얻어먹어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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