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el의 매일 기록하기 2021년 2월 20일 토요일
어제는 2021년 2월 19일, 음력으로 1월 8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날이 외할머니 기일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
엄마가 서울에 볼일이 있다며 올라오겠다고 전날 갑자기 연락이 왔다.
나 보고도 나오라고 해서 그저 엄마와 데이트 겸 점심 식사 겸 같이 시간을 쓸 생각을 나갔는데 점심을 먹는데 엄마가 약간 울적해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울적함을 아빠가 이미 알아줬다며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바로 외할머니 기일이었던 것이다.
외할머니는 내가 대학생 때 돌아가셨는데, 내가 대학생 시절 아주 가끔 외할머니가 계시던 요양원에 찾아가서 시간을 보내고 오기도 했었고, 내가 일하던 대학병원 (약제팀 아르바이트생)의 중환자실에 입원해 계시기도 해서 병원에서도 찾아가서 뵙곤 했었다.
친할아버지는 아빠가 어릴 때 돌아가셨고 친할머니,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내 인생에 계셨는데 외할머니가 가장 따뜻하고 애정이 넘치는 분이셨다. 물론 촌스럽고 투박했지만 늘 인자했고 하나라도 더 먹이고 싶어 했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렇게 적으니 갑자기 마음이 그립네.
우리 아빠는 늘 명절이 되면 큰집에 가서 제사를 지내고 친할머니를 뵙고, 돌아오면서 꼭 외가에 들러 함께 식사를 하고 자고 오거나 시간을 보내고 오곤 했다. 틈틈이 어른들을 모시고 같이 여행을 가기도 하고 우리 집에서 잠시 지내시게 하기도 했다. 그리고 돌아가진 지금도 우리는 매 명절마다 산소에 가서 나름의 제사를 지내곤 한다.
사실 삼촌들은 기독교인들이라 제사를 지내지 않아 묘지에 잘 찾아오지 않는다. 엄마는 내내 그것을 속상해했다.
자식들 키워도 산소에 오는 놈 하나 없다고, 누구 하나 기일에 제사 지내주는 사람 없고, 기억해 주는 사람 없다고.
그 마음을 알았는지 울적해하는 엄마한테 우리끼리라도 집에서 간단한 제사를 지낼까?라고 아빠가 권했다고 한다. 엄마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기일이었던 것이다.
엄마는 엊그제 같던 날이 벌써 12년이 지났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갑자기 문득 우리 엄마도 언젠간 그렇게 가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라는 생각이 들어 무서웠다.
나는 상상해 본 적도 없고 상상이 되지도 않는데, 보고 싶지만 더 이상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존재가 된다는 건 도대체 어떤 걸까.
엄마는 보고 싶은데 볼 수 없는 건 참 슬픈 일이라고 했다. 가끔은 보고 싶다고도 했다.
엄마의 엄마...
나의 엄마..
엄마가 나에게 말했다.
자신은 자신의 엄마보다 더 오래 잘 지내서 우리 딸이 이런 생각, 덜 받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그러니 엄마 건강부터 잘 챙기라고 말했다.
아무리 돈도 좋고 일도 좋고 다 좋지만 결국 건강이 허락하지 않으면 이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된다는 것을 늘 명심하고 건강을 챙겨야 한다고.
죽음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다.
내가 실제 슬픔을 느꼈던 가까운 죽음은 실제 외할머니 돌아가셨을 때가 거의 유일하다.
다른 장례식은 물론 슬프긴 하나 그 정도의 가까운 애착관계들은 아니었다. 나이가 연로하신 가족 어르신분들이었으니. 그 외에는 가까운 친구나 지인이 죽은 사람도 없다.
하지만 점점 죽음의 그림자는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점점 나이 들어가는 부모님, 갑자기 지병이나 사고로도 갈 수 있는 친구들.
사람일은 모르는 거라고 했지만 그런 갑작스러운 비보는 듣고 싶지 않다.
모두 건강했으면, 오래오래 내 옆에 있어 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