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와이잭

저 아세요?

<후아유>/줄리아 하트 '유성우'

by 요지



B라는 친구가 있다. 초등학교 때 단짝이었지만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데면데면해진 그 아이와 다시 연락이 닿은 건 대학생이 된 후의 일이었다. 10년에 가까운 간극이 두려웠던 나는 어울리지도 않는 하이힐과 진한 아이라이너로 중무장을 하고 나갔으나 그런 날 보자마자 던진 B의 첫 마디에 와르르 무너졌다.


진짜 오랜만이다. 너 웃는 거 완전 그대로네.


수다가 길어지면서 B야 말로 내 인생의 산 증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첫사랑을 유일하게 알고 있었고, 처음 부모님 없이 버스를 탈 때도 함께였으며, HADURI 캠 때문에 B네 집을 닳도록 드나들었다는 나의 다크 히스토리에도 지분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중, 고등학교 시절의 빈칸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B는 ‘부끄러움은 너의 몫’이라며 스스로도 잊고 지냈던 나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시절 이야기를 박장대소와 함께 쏟아냈다. 하지만 나는 부끄러움은커녕 주체 못할 고마움에 벅차 울어버렸다. 어째서 나는 B가 나에 대해 잘 모를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 구글 이미지


대학로 카페 ‘티티카카’에서 게임 파트너 멜로를 기다리던 인주 앞으로 형태(조승우)가 나타났을 때, 그녀 얼굴 가득히 떠오른 당황과 수치심을 보자 나는 ‘안다(know)’는 말이 주는 거창한 무게감을 다시 실감했다. 이제야 멜로와 형태가 동일인물이란 사실을 알게 된 인주는 혼란스럽다. 가상에서 두 사람은 얼굴도 이름도 직업도 모르지만 프라이빗한 아지트까지 가진 ‘투명 친구’ 관계였다.


하지만 현실에선 그저 같은 건물에서 근무해 종종 얼굴만 마주치는 수족관 다이버와 게임 개발자일 뿐이었으니까 말이다. 더불어 형태가 마음을 고백하는 상대가 가상의 자신과 현실의 자신 중 누구인지도 헷갈린다. 그렇게 ‘아는 사이’라는 동음이의어 사이에 선 두 사람이 애매한 울상을 짓고 있을 때 ‘티티카카’에서는 잔뜩 뭉그러진 노래가 흘러나온다. 바로 줄리아 하트의 ‘유성우’다.


ⓒ 구글 이미지


<후아유> OST라면 하나 같이 델리스파이스의 ‘챠우챠우’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같은 모던-록modern-rock 밴드였으나 델리스파이스는 당시 최고의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더군다나 ‘유성이 무더기로 쏟아지는 현상’이라는 환상적인 제목에 비하면 노래 자체는 단조롭기 그지 없다.


하지만 나는 너의 목소리가 들린다고 시원스레 소리치는 ‘챠우챠우’보다
인주와 형태의 목소리 사이로 근근이 들리는 멜로디가 전부인
‘유성우’가 더 오래도록 귓가에 맴돌았다.


처음엔 무난한 코드진행이 인주의 심각한 표정이나 형태의 토로하는 목소리를 더 돋보이는 게 하기 때문인 줄 만 알았다. 그러나 인주와 형태 사이에 우뚝 솟아있던 ‘아는 사이’의 고정관념이 노래처럼 뭉개지고 모호해지는 모습이 더 큰 이유가 된 것 같다. 물론, 그 동안 몰랐던 정바비의 잔잔한 목소리와 서정시 같은 가사를 알게 됐다는 것은 덤으로.


영화를 보고 난 후, 누군가에 대해 알고 자시고를 내 우물 안에서 평가하려 들었던 날이면, 반성의 의미로 ‘유성우’를 듣는다. 웅얼거리는 수준으로 볼륨을 줄여둔 채. B를 만나고 돌아온 날도 그랬다. 분명 B는 나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다. 하지만 B는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 중 하나라고 자부한다. 가장 많이 아는 것이 곧 가장 잘 아는 것이라는 이상한 등식은 대체 어디서 기인한 걸까? 나는 그 고정관념에 사로 잡혀 수 많은 인연들을 '모르는 사람' 카테고리에 넣고 오랫동안 모른 척 해왔다. 이제 나는 저만치 치워뒀던 그 카테고리를 다시 열어본다. 그리고 묻는다. '저 아세요? 아마 잘 아실걸요.'




와이잭, Vol.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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