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걸 송두리째 바꾼 그날 (2)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

by 요진
누워지내요.
잘 누워있었어요?


입원 초기부터 담당 의사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이런 경우는 산모가 누워 지내야 해서 힘들어 그렇지 아기는 괜찮다며',


누워 지내라는 당부를 임신 초기부터 후기까지 꾸준히 들었다.


초기 때부터 배뭉침이 있어서였는지 아기는 계속 자궁 경부 가까이 위치해 있었고,


덕분에 머리가 자궁 위쪽에 자리했던 적은 거의 없었다.


어느덧 임신 30주가 지나고 후기 땐 좀 괜찮으려나 했는데 30주 차 진료에서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는 잦은 자궁수축이 양수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절대안정"이 필요하단다.


일도 안돼. 인수인계 1-2주도 안 되고, 앞으로 2주는 밥 먹는 시간 빼고 누워 있고 절대안정 해야 돼요.

병가를 내고, 그 이후에 막달까지 얼마든지 일할 수 있으니까 지금은 쉬어.


안정이 필요하다는 말은 여러 번 했어도 일을 쉬라고 단호하게 말한 건 처음이었고, 갑작스런 자궁수축검사에 수액까지 맞게 되니 정말 안정이 필요한 상황이구나 싶어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누워 지내는 요즘이다.


(수액을 맞으며 얼마나 눈물을 훔쳤는지 모르겠다)




돌이켜 보면 올해는 거의 누워 지낸 시간이 많았다.


날이 좋아 매일 나들이가 하고 싶었던 봄에도,

선선한 밤산책이 너무나 고팠던 초여름에도,


발코니를 경계로 밖을 보며 계절의 색을 느꼈다.


누구보다도 외부활동을 즐기고, 사람들과의 만남이 많았던 내가 그렇게 집에 갇혀 있는 것이 짠해 보였는지


남편은 '그냥 나가서 놀고 와, 병원에서도 보수적으로 이야기하는 거겠지' 말하곤 했다.


하지만 병원에서 안정을 취하라는 말을 듣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임부가 얼마나 될까.


임신 기간 내내 나는 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를 계속 풀어내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답안은 정해져 있는데 문제를 풀어야 하는 시기는 내가 정할 수 없는 기분이랄까.


통제할 수 없는 일들과 상황 속에 자꾸만 놓여지는 것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내 존재의 의미가 오롯이 뱃속의 아기한테 있는 것 같아 우울하고 울적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뱃속의 아기를 위한다는 이유로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날 좋은 날 자유롭게 날씨를 만끽할 수 있는 자유,

만나고 싶은 사람들과 언제든 만나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 자유,

욕심껏 일할 수 있는 자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자유,

선선한 저녁 계획하지 않은 산책을 할 수 있는 자유 등등.


하나하나 이루 집어낼 수 없는 소소한 많은 것들을 참고 자제하며 일상을 보냈다.


갑작스런 이벤트가 많아 회사에 마음 불편한 양해를 구해야 하는 일이 많은 건 덤이다.


(심지어 누워서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출산을 앞두고 인수인계도 하지 못한 채 '병가'를 논해야만 한다)




며칠 전에도 TV에서 저출생과 관련해 토의하는 것을 봤다.


요즘 저출생, 인구위기와 관련된 토론회나 다큐가 참 많다.


나의 삶이 중요하고 나를 우선순위에 두고 살아가는 것이 익숙한 세대에게 '임신'과 '출산'이 얼마나 많은 포기를 강요하는지 그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이제는 임신과 출산, 육아를 위해 포기해야 하는 모든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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