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없는 산모는 없더라
초산임에도 다른 산모들보다 다소 늦은 8주나 돼서야 내가 임산부가 되었다는 걸 알았다.
거의 종일 메스꺼운 상태로 있어야 한다는 점과 냄새에 좀 많이 민감해졌다는 점만 빼면 비교적 평온한 임신초기라고 생각했었다.
16주 정기 진료 전까지는.
미리 잡아둔 정기 진료날은 16주 차에 막 접어든 시점이었다. 16주는 일반적으로 아기의 성별을 알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해서 설렘 반 기대 반으로 병원을 찾았다. 유독 대기가 길어 1시간이 넘게 기다린 후에야 진료실에 입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 초음파를 보며 담당 선생님이 낮게 고민의 소리를 내쉬기 시작했다.
으음, 애기가 왜 이렇게 아래로 내려갔지?
설명을 들으며 초음파 화면을 보니 지난 초음파와는 달리 봄이의 얼굴이 자궁경부 가까운 아래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일반적으로는 초음파 상 아기의 척추와 엄마의 배 라인이 거의 평행하다고 하는데, 나의 경우에는 아기 얼굴이 아래쪽으로 내려가 있다 보니 아기의 척추가 아래쪽으로 내려 꽂힌 듯한 형상을 보이고 있었다.
임신 초기에는 자궁수축이 와도
통증이 동반되지 않아요.
자궁경부까지 짧아지면 진짜 위험한데
아직 자궁경부는 4.6cm로 괜찮아서
좀 더 지켜볼게요.
오늘부터 일절 산책, 활동하지 말아요.
그냥 누워있어요.
아무 활동하지 말고, 절대 운동한다고 산책도 하지 말고 누워있으라는 당부가 처음엔 많이 의아했다.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듣고 나온 터라 남편도 나도 벙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때만 해도 꿈에도 몰랐다.
이후로 나의 눕눕 생활이 시작되었다.
임신한 후에도 재택 제도 대신 매일 출근하는 걸 택하고, 산책을 즐겼던 나는 바깥공기를 마시고 사람들을 만나며 에너지를 충전하는 E성향의 사람이었다.
그런데 한 달이 넘게 집 안에서 누워만 있자니 출산하기 전에 내가 먼저 우울증에 걸릴 것만 같은 심정이었다.
눕눕 생활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누워서 쉬기만 하면 좋은 거 아니야?"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딱 일주일만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상체를 세우지도 않은 채 누워서만 지내보면 이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단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꽃이 피고, 나들이하기 너무나 좋은 따스한 봄날에 말이다.
공감과 위로가 필요할 때면 종종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산모들의 후기를 인터넷에서 찾아보고는 했다. 의외로 임신 중기 자궁경부가 짧아지거나 자궁수축이 진행되어 입원하는 산모들이 많았다.
생각해 보면 그 옛날 옛적 왜 출산하다 죽은 여자들이 많았겠나,
그만큼 한 생명을 품고 키워내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알아가고 있다.
누구보다 리얼하게 임신을 겪으면서 그동안은 스쳐갔던 선배맘들의 경험담이 하나하나 와닿기 시작했다.
누구 하나 임신 과정을 쉽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누군가는 입덧이 너무 심해 먹지도 못하거나 입덧약으로 겨우 버텼다 하고,
누군가는 임신 초기 출혈과 함께 유산위험이 찾아와 마음 아파했고,
누군가는 이른 자궁수축과 짧아진 자궁경부로 입원해서 누워지내기도 했다.
높아진 난임 비율로 임신이 어렵지,
임신 기간 동안은 그다지 큰 어려움 없이 뚝딱 지나가는 줄만 알았는데.
네이버 카페에 이런 질문을 올린 산모가 있었다.
혹시 아무런 이벤트 없는 산모 분 계신가요?
그리고 그 아래 각자의 사연이 댓글로 달려 있었다. 또 한 번 생각했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이벤트를 견뎌내고 있구나.
지금은 마음이 조금 회복되었지만 정말 힘든 순간 다른 산모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많이 공감하고, 위로받았다. 그래서 나도 임신 중의 피곤함을 물리치고 큰 결심을 하게 됐다.
바로 나의 이야기를 적어 보기로.
나의 이야기도 담담히 적어 내려가면
누군가는 보고 공감하며 위로받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