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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전 돈이 필요해요

2000만 원, 그 이상의 것

by 요진

2000만 원.


10년간 미성년 자녀에게 증여세 없이 증여할 수 있는 최대 금액이다. 영어유치원을 포함한 여러 사교육에 대한 확신은 아직 없지만, 단 하나 확신을 가지고 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바로 "종잣돈 마련"이다.


증여세 없이 가능한 한도 내에서 증여 후, 최소 인플레이션 이상의 수익률로 돈을 불려 자녀가 성인이 되었을 때 필요한 곳에 쓰도록 할 생각이다.


자본주의 키즈가 유행하고 돈 공부에 대한 필요를 느끼는 부모들이 많아지면서, 증여에 대해 미리 알아보고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중 한 명이었고, 작년 자녀 이름으로 계좌 하나를 개설했다. 출산과 동시에 증여를 생각한 데에는 나의 가정환경도 영향이 있었다.


우리 집은 돈에 대해 그리 솔직하지 않았다. 나와 동생 앞에서 부모님은 돈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꺼내지 않았다. 돈에 솔직한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부모님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는 돈 버는 이야기에 인색한 면이 있다. 누군가가 돈 벌었다고 하면 부러워하거나 질투하기 일쑤지만, 그런 이야기를 200% 솔직하게 입 밖으로 꺼내기를 꺼려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런 오래된 분위기가 최근 반전되었다. 몇 년 간 엄청난 자산 급등을 경험하며 돈에 솔직한 2030이 늘어난 덕분이다. 여기에 더해 각종 온라인 sns 플랫폼이 정보 공유 속도에 기여하며, 분위기 반전 불씨를 더 타오르게 했다. 돈에 진심인 모두가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는지 본인이 경험한 내용과 꿀팁들을 나누기 시작했고, 각종 부업과 N잡이 유행했다.


나 또한 결혼 이후 재테크와 돈 버는 다양한 방법들에 눈을 뜨게 되었고, 이후 뇌구조가 완전히 바뀌는 나날이 이어졌다. 생각보다 그 과정은 어렵고 낯설었다.


그래서 우리 아이만큼은 이 과정을 나보다 어릴 때, 보다 자연스럽게 경험했으면 한다. 단순히 종잣돈 마련 그 이상의, 자본주의 뇌구조를 물려주고 싶다.


몇 년 전, '물 건너온 아빠들' 방송을 보며 크게 놀랐던 적이 있다. 11살 남자아이가 돈이 필요하다며 영어 과외 사업을 구상하는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었는데, 돈 버는 일련의 이야기를 아빠와 자녀들이 자연스럽게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네가 새로운 영어 과외 사업을 한다고?"

"왜?"


"왜냐하면 전 돈이 필요해요"


11살 아이가 돈이 필요하다 느끼고, 스스로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지 생각한다고?

자신이 가진 강점을 활용해 어떤 사업을 할지 구상하고, 고객을 모으기 위한 구체적인 홍보 방법까지 모색한다고?


당시 방송을 보며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난다.


방송에서 더욱 인상 깊었던 것은 아빠의 태도였다. 좋은 아이디어라며 적절한 질문으로 사업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데 도움을 주며 실행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했다.


나중에 우리 딸과 나도 저런 대화를 나눌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적절한 질문과 공감으로 생각을 확장시켜 주는 그런 엄마가 되어주면 어떨까.


그렇게 스스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방법들을 고민하고, 결과에 상관없이 실행해 보는 경험들을 하나씩 쌓아갔으면.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돈과도 스스럼없이 가까워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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