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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유치원 프로그램 봐볼래?

유치원부터 시작되는 교육 격차

by 요진
영어 유치원 프로그램 봐볼래?


일주일이 넘는 설 연휴 생각에 설레던 금요일, 오랜만에 동기들과 만나 저녁을 함께 했다. 20대에 만나 서로의 연애, 결혼을 지켜봤던 우리는 이제 아이 엄마가 되었고, 모임을 가질 때면 자연스레 대화 주제의 팔 할은 육아가 되었다.


유독 나와 같은 해에 출산한 친구들이 많아 대부분은 딸과 동갑인 이제 돌이 지난 1세 반 아이들이고, 서프라이즈 소식을 제일 먼저 안겨 주었던 친구 한 명만 올해 유치원생 학부모가 된다. 우리보다 먼저 육아를 경험하고 고민을 겪어낸 친구이기에 만나면 모두가 그 친구의 경험담과 이야기를 귀담아듣곤 했다.


중식당에서 1차 근황을 나누고, 2차로 향한 카페에서 이제 막 빙수를 거의 먹어가던 차였다.


영어 유치원 프로그램 한 번 봐볼래?


올해 아들의 영어 유치원 입학을 확정 지은 친구가 던진 한 마디에 나를 포함한 아이 엄마들의 눈이 커지며 강한 긍정의 신호를 보냈다. 친구가 보내기로 한 유치원은 아니지만, 한 번 봐보라며 건넨 전단지는 양면 빼곡히 정보로 가득 차 있었다. 한 면엔 아이들이 아침부터 오후까지 참여하게 될 수업 시간표, 다른 면엔 가격을 포함한 전반적인 안내 사항이 적혀 있었다.


남편과 막연히 고민을 하는 단계일 뿐 구체적으로 알아보거나 상담 경험도 없었기에 영어 유치원 시간표를 실물로 보긴 처음이었다. 아침부터 오후 3시까지 다양한 영어 수업으로 가득 찬 시간표를 보며 참 복합적인 생각이 들었다.


영어 유치원은 엄밀히 말하면 학원 업종으로 개설된 곳들로 유치원보다는 어학원에 가까운 개념이다. 하지만,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기에 체험활동이나 돌봄 기능을 일부 결합해 흔히 '영어 유치원'으로 통칭된다. 친구가 건넨 프로그램을 봤을 때에도 수업 상당수는 놀이와 함께 영어를 배우는 시간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맞벌이 부부를 위한 after class 대부분도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할 만한 수업으로 채워져 있었다.


유치원부터 시작되는 교육 격차


지역마다 차이는 있겠으나 친구 말에 따르면 기본 수업료만 150만 원 정도, 방과 후 수업이나 기타 비용까지 더하면 월 200만 원 정도는 생각해야 한다고 한다. 연간 비용으로 환산하면 1년에 유치원 비용만 2500만 원에 달한다. 여기에 아이 나이에 따라 체육 수업이나 미술, 악기를 추가한다면? 대충 계산해도 아이에게만 월 250~300만 원 정도가 들어가게 된다. 일반 중산층 가정에서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숫자는 절대 아니다.


하지만, 어렸을 때 영어에 노출되는 시간과 밀도가 이렇게 차이 난다면 과연 그 격차가 좁혀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적지 않은 금액임에도 지역 불문 상당수의 부모가 영어 유치원을 고민하고, 보내는 데에는 이런 심리가 바탕에 있지 않을까.


자산과 소득을 바탕으로 한 빈부격차는 자녀의 교육격차로도 이어진다. 그리고 그 격차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상당히 이른 나이부터 시작되고 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이 있다. 주위 환경이 열악한 사람이 본인의 노력과 잠재력으로 높은 지위에 오르거나 성공한 경우에 흔히 사용한다. 그리고 교육은 이런 이동을 가장 빠르게 가능케 하는 수단 중 하나였다. 집이 부유하지 않아도 공부를 잘하면 상대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녀의 입시결과에 부모의 경제력이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이제는 부모의 소득과 자녀의 입시 간 상관관계가 더욱 커지고 있다. 아래 그림은 한국은행에서 작년 발행한 한 보고서에서 발췌한 것이다. 보고서는 2024년 8월에 발행되었으나, 아래 [그림 2.5]와 관련된 분석은 2010년대에 이루어졌기에 현재 시점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참고로만 살펴보면 아래 가정을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상위권대 진학률 격차의 25%만 학생 잠재력의 영향이었고 나머지 75%는 부모의 경제력 효과에서 기인했다고 한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입시경쟁 과열로 인한 사회문제와 대응방안' 보고서 발췌


입시경쟁이 과열되어 있는 만큼 2023년 우리나라의 사교육 참여율은 무려 78%에 달한다. 거의 모든 가정에서 경제적인 여건과 관계없이 사교육에 참여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금이야 쿨하게 아이가 공부에 소질이 없으면 다른 길을 찾아주어야겠다 말하지만, 과연 그 순간이 오면 나는 쿨해질 수 있을까. 친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빠르게 손절하고 다른 방향으로 도움을 제공하는 부모가 될 수 있을까.


다른 아이에게는 좋은 선택일지라도 우리 아이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매 순간 기억해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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