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열 번째, 미챠가 삶을 사랑하는 방식
미챠는 삶을 사랑하는 방식이 독특하다.
아마 한국인들과는 딴 판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몇몇 사람들은 불쾌감을 느끼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킬지 모르나, 아주 주관적인 견해라는 점에서 양해를 부탁한다. 사실 어쩌면 나와 딴 판인 것일지도 모른다.
미챠가 삶을 사랑하는 방식은 속된 말로 앞뒤 안 재는,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스타일이다.
자신의 말이나 행동이 훗날 자신의 발목을 잡게 될 거라는 걸 알 지언정 거짓말하거나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상황이든 정면돌파하는 식이고, 놀라울 정도로 순박하게 접근하는 식이다. 물론 그가 그렇게 행동하는 건 그의 천성이자, 정말 자신이 그렇게 노력한다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거라고 믿는 식이다. 설령 일이 잘 풀리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한들, 미챠는 그런 방식으로 행동할 것이다.
그렇다. 미챠는 이반과는 정반대 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미챠는 속에 있는 이야기를 전부 다 토해내고, 그런 식으로밖에 할 수 없는 인물이지만, 이반은 '침묵'한다. 미챠는 계산하는 일이 드물지만, 이반은 계산하지 않는 일이 드물다.
미챠는 술에 취한 채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편지에 적어 자신에게 불리한 '물증'까지 남기는 반면, 이반은 결코 자신의 생각을 발설하지 않고 아무도 없는 층계에서 자신의 계산이 담긴 '기대'를 관망한다 (미챠가 어떤 '물증을 남겼는지, 이반의 계산이 담긴 '기대'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한 사람은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어쨌든, 내가 1편의 리뷰에서도 말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이반이고, 어쩌면 내가 그와 닮아있기에 미챠의 살아가는 방식이 부러우면서도 배우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요즘에는 서로 이득이 되지 않으면 하지 않는 어떤 이해타산적인 가치가 유독 만연해있는 것 같다. 부조금과 관련한 일부터 해서, 결코 손해 보려 하지 않는 태도들이 곳곳에서 보인달까? 물론 이것이 나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나 또한 그런 사람이니까). 나쁜 것도 아닐뿐더러 오히려 그러한 특성 덕분에 우리가 '미챠'처럼 파멸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때로는 미챠처럼, 그러니까,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길을 바보 같아 보일지라도 순박하게 달려가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것이 삶에 이득이 되기 때문이 아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어쩌면 우리가 '낭만'이라 부르는 것, 혹은 '원초적 즐거움'이라고 부르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삶에 그야말로 흠뻑 젖는 것,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이든 신경 쓰지 않고, 온전히 하고 싶은 대로 해버리는 것, 가끔은 그런 미챠의 방식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미챠는 이렇게 사는 게 천성이지만, 나 같은 사람은 '의식'해야만 그렇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부를지 몰라도 나는 미챠의 삶을 '낭만'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미챠가 어떤 식으로 삶을 사랑하는지 뚜렷하게 보여주는 장면 하나를 소개하며 마무리하겠다.
미챠 "아니, 왜 저리 울고 있나? 무엇 때문에 울고 있는겐가?
... 중략
"왜 긴요, 찢어지게 가난한 데다가 화재까지 당했으니, 살 집도 없고, 그래서 다시 집을 짓겠다고 구걸을 하고 있는 것입죠."
"아니, 말이 안 돼." 미챠는 여전히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투다.
"자네, 어디 말 좀 해보게. 대체 왜 화재를 당한 애엄마들이 저렇게 서있는 건가? 사람들은 왜 가난한 거야? 애기는 또 왜 가난한 건가? 왜 들판이 이렇게 황량한 건가? 왜 저들은 서로 껴안지도 않고, 입을 맞추지도 않는 건가? 왜 기쁨에 찬 노래를 부르지 않는 거냐고? 왜 그런 거야? 왜 저들은 저렇게 흉흉한 재앙을 당해갖곤 저토록 시커메진 거냔 말이야? 왜 애기한테 젖을 먹이지 않느냔 말이야?"
이렇게 미챠는 자기가 미친 듯이 얼토당토않은 질문을 퍼붓고 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그는 꼭 이런 식으로 묻고 싶고 또 이런 식이 아니면 안 됐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