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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책 리뷰 열두 번째, 인간은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는가

by 윤혁

드디어 읽기를 미루고 미루던 책 <사피엔스>를 읽게 되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의 읽을 도서 목록 리스트를 차지하고 있지만 선뜻 집어 들기는 어려운 그런 책이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일단 두껍다. 게다가 유명한 책인 데다가 이름부터 엄청난 내용과 주제가 들어있을 것만 같은 이름이다. [사피엔스]라니..

(책 제목이 짧으면 짧을수록, 심지어 그게 단어 하나라면 뭔가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나 심오한 고찰이 들어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실 책이 두꺼운 것도 맞고, '인류'라는 종족에 대해 핵심적이며 날카로운 고찰이 들어있는 것도 맞다. 그러나 필요 이상으로 겁먹을 필요는 없다. 일단 유발 하라리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가 엄청나다. 게다가 글을 또 재미있게 써서 무거운 내용이지만 읽다 보면 피식 웃게 되는 부분도 많다. 그래서 열심히 읽다 보면 미소를 머금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 책 위에 쌓인 먼지를 털어낼 생각이 없는 분들을 위해 꼭 읽어야 하는 이유를 한 가지 말해주도록 하겠다.


인류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맹수들처럼 커다란 이빨도, 강한 발톱도, 거대한 덩치도 없는 인간이 어떻게 모든 생명체의 최상의 포식자가 되었는지, 이 책은 명료하게 답해준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상상하는 능력이 있고, 더 나아가 그것을 믿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 능력을 통해 우리는 몇 명이든, 피부색이 어떻든, 사용하는 언어가 무엇이든 서로 협력할 수 있는 것이고, 협력을 통해 최상위 포식자의 위치에 앉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유발 하라리는 이러한 능력에 대해 좋다, 싫다 평가하기보다는 관찰자, 학자의 위치에서 담담하게 이 상황을 분석해 준다. 인간의 이러한 능력을 좋게 볼지, 나쁘게 볼지는 독자에게 달려 있을뿐더러, 지금 생각해 보면 좋고 싫고를 따지는 게 크게 의미가 있나 싶다.


어쨌든 우리는 그런 존재다. 이 "믿음"이라는 능력으로 돈을 만들어냈고, 종교와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냈으며, 국가를 만들어냈다. 이 "믿음"에 근거하여 다른 생물들, 동물이든 식물이든 내키는 대로 죽였으며(단언컨대 지금도 마찬가지다), 심지어는 서로를 죽이기도 했다(사피엔스가 새로운 대륙에 발을 들인 순간, 그게 어디든지 그 지역의 대형동물이 7~80%? 정도 멸종했다고 한다). 인간은 그 정도로 이 세상에서 치명적인 동물이다.


뭐가 어찌 됐든 역사, 자연이 바라보는 인간은 그런 존재이며, 그런 DNA가 여기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인간이 무서울 정도로 똑똑하고, 그리고 인간만큼 다른 종에게 위협적인 종은 없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그렇다. 우리는 이러한 종족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질문은 '이 능력, 이 [믿음]에 근거한 이 능력으로 우린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할지언정 우리의 의지대로, 본래 의도했던 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말한다. '역사에 정의는 없다'고. 우리가 옳은 줄 알고 간 길 일지언정 거기에 낙원이 있고, 행복이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식량을 좀 더 쉽게 통제하기 위해 농업을 시작하고, 가축을 기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린 행복해졌는가? 사람들은 밀을 키우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게 되었다. 유발 하라리는 우리가 밀을 기른 게 아니라 밀이 우리를 길렀다고 말한다.


3차 산업혁명, IT 혁명으로 우리는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어느 누구와도 메일로 원하는 만큼 수십 번 연락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우린 행복해졌는가? 업무에서는 처리해야 할 일이 수십 배로 늘었고, 사적으로는 상대방에게 연락이 5분만 늦어도 우린 불안을 느낀다.


그래서 결국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의 최종 종착지는 '행복'으로 귀결된다.


이 '행복'이란 최종 종착지의 전 역은 '과학 혁명'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사피엔스]에서 주로 의논하는 과학 혁명은 대개 생물학적인 의논이다. '길가메시 프로젝트', 즉 인간은 죽음마저 극복하고 영생을 누리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죽음'이 신성한 영역이었지만 이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암, 치매 등을 극복하기 시작하다가 결국 '죽음'마저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으로 갈 거라고 그는 바라본다.


그렇다. 또다시 이 질문이 나와야 한다.


"그래서 우린 행복해졌는가?"


현재 21세기 요즘 이 '과학 혁명'에는 또 의논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AI다. 사람이 편하게 사용하고자 만든 거지만 머지않아 이 AI로 많은 사람들의 일자리가 위협받을 것이다. 심지어 지금 AI의 수준을 보면 지금도 진행 중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이건 역사가 말하는 거지만 이 변화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건 옳지 않다며, 인류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며 손을 내저어도 도덕은 늘 한 발자국 느리다(물론 도덕이 개입해야 할 일인지, 즉 옳고 그름에 대해 판단하는 게 먼저겠지만)


인간은 영생을 향해 나아갈 것이고, 4차 산업혁명은 더욱 발전하여 우리를 도와주는 동시에 우리를 위협할 것이다.


끝에 가서 우리가 행복한 모습일지 아닐지 나는 잘 모르겠다. 영생을 얻고, 경이로울 정도의 AI(사실 지금도 충분히 경이롭다)를 만든 인간은 이제 '신'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떡하니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사실 '신'은 지금도 입지가 위태위태하다. 내 느낌엔 한 발을 겨우 걸치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그래서 우린 행복해졌는가?"


살아봐야 알 수 있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그만큼 이 책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이다. 그래서 '과학 혁명'에 불이 붙은 지금, 이 책을 다시 꺼내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우리가 지나왔던 과거의 행보와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이 책을 추천하며 리뷰를 마치겠다.


다들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좋지만, 숙면만큼 행복에 도움 되는 것도 없다. 늦은 밤이니 가장 단순하며 가장 필수적인 행위로 행복을 챙기도록 하자.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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