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조지 오웰의 [1984]: 디스토피아에서 산다는 것

책 리뷰 세 번째, 디스토피아는 '개성'을 말살시키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by 윤혁

<1984>는 조지 오웰의 대표작이자 3대 디스토피아 소설 중 하나다. 이 작품을 읽다 보면 디스토피아에서 어떻게 해야 살아남는지, 역으로 어떤 특성들이 있어야 디스토피아가 만들어지는지 알게 된다.


내가 보기에 디스토피아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제거해야 하는 것은 딱 하나다.


그것은 바로 '인간성'이다. 여기서 인간성이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개인적 특성, 개성을 말살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나타내는 골 때리는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1984>에서 디스토피아를 만들어낸 주체, 즉 권력 주체인 '당(빅 브라더)'에 적극적으로 헌신하는 동료와 대화를 나눈다. 동료는 당의 권력을 공고히 다지기 위해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는(동시에 기존의 언어를 말살시키는) 일을 한다. 그는 굉장히 똑똑한 데다 열성적이다. 당에 이토록 유능하고 협조적인 인재가 있으니 당연히 당에서도 좋아할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디스토피아 세계관에 익숙지 않은 나의 착각이었던 것이다.


윈스턴은 말한다.


"이 자는 곧 증발될 것이다."


그렇다. 이 세계관에서는 사람이 사라지는 것, 증발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모든 게 조작기 때문이다. 그는 당에 열성적인 그 동료가 증발할 것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고, 그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사람들은 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당의 방식이다. 당은 잘못한 사람을 처벌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의 존재 자체를 없애버리고, 애초부터 없었던 것처럼 다른 사람의 기억에서조차 지워버리게끔 만든다. 과거 자체를 조작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유명한 구절이 나온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그리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당이 어떻게 절대적인 권력 주체가 되었는지, 그리고 디스토피아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관통하는 문장이 아닐까 싶다.


자, 그렇다면 본론으로 돌아가자. 그 동료는 왜 사라졌을까? 그가 너무 똑똑했기 때문이다. 똑똑한 것도 너무 똑똑하면 안 된다. 그가 당에 열성적인지 아닌지보다 더 중요한 것, 그것은 바로 그 인간에게 '개성'이란 게 있는지 없는 지다. 당의 시스템은 인간의 개성을 말살시키고 획일화했을 때 유지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동료와 이야기 나누며 이러한 것들을 알고 있었던 주인공의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그 또한 당을 전적으로 믿고(그냥 믿는 것이 아니라 멍청하고 단순한 방식으로), 당이 내세우고 있는 가상 인물인 빅브라더를 사랑하기엔 너무 똑똑했던 것 같다.


그는 겉으로는 믿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이 세계가 잘못됐다는 걸 느낀다. 그는 과거는 조작할 수 없는 것이며, 사람의 기억과 고유한 인간성은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2+2는 누가 뭐래도 4라고 믿으며 산다. 그리고 그는 당에서 허락하지 않는 행동 중 하나인 사랑까지 하게 된다. 요컨대 그는 가장 위험한 방식으로 사상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그런 주인공은 과연 이러한 세계관 속에서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궁금한 사람들은 읽어보길 바란다


어쨌든 내가 <1984>를 읽고 확실히 알게 된 건 인간의 개성을 인정하지 않는 곳, 그곳이 디스토피아라는 사실이다. 디스토피아는 생각보다 거창한 개념이 아니다. 내가 '나'임을 부정당하는 곳, 난 이런 사람인데 그걸 인정하지 않고 다 같은 한 묶음의 인간들 속에 집어넣으려고 하는 곳, 그곳이 바로 디스토피아다.


조지 오웰의 <1984>는 극단적 전체주의가 어떤 모습인지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그러한 세상에 살고 있진 않지만, 그런 성격의 인간이, 조직이 주변에 없으리란 법은 없다. 그러니까 디스토피아로 점철된 세상을 살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 파편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런 인간이 많아질수록, 조직이 많아질수록 이 파편은 커지고 커져 하나의 세상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자신의 개성을 사랑하자.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인정하는 것부터 이러한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한 첫걸음이 아닐까? 그리고 자신의 개성을 사랑하고 인정한다면, 다른 사람의 개성도 인정하려고 노력해보자.


디스토피아의 유무는 조지 오웰의 말대로 우리의 손에 달려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카뮈의 [페스트]: 자연스러운 것, 그것은 병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