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작품엔 빛과 바람, 그리고 비애가 있다.
전시회에 가서 그림을 보면 처음 보고 싶었던 작품이 아닌 다른 작품에 꽂혀서 돌아올 때가 많다.
처음 갔던 전시가 마르셀 뒤샹 전시였는데, 당연히 난 <샘>을 보기 위해 간 것이다. 사실 현대 미술의 괴상?한 작품들은 전부 이 작품에서 시작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쨌든, 기대를 너무 많이 해서인지 생각보다 <샘>은 그렇게 큰 감흥이 없었다.
몇 년 전에 갔어도 아직까지 기억이 나는 작품은 바로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라는 작품이다. 큰 캔버스 그려진 이 작품은 보고 있자면 정말 사람이 내려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피카소가 다양한 면을 한 캔버스 안에 넣는 걸 시도했듯 뒤샹은 흐르는 시간을 한 작품에 넣는 걸 시도했다고 어디서 주워들은 것 같은데, 정말 그 작품 앞에 서면 한 사람이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전시회의 매력은 바로 이것에 있다.
오늘 갔던 고흐 전시회도 이런 특별한 경험을 준 전시였다. 물론 내가 보고 싶었던 작품인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밀밭>은 없었지만 고흐의 다양한 인물화, 풍경화, 정물화를 보는 건 역시나 즐거운 경험이었다.
고흐의 인물화는 무엇보다 사람들의 비애가 짙게 느껴진다. 그가 그린 사람들의 표정엔 전부 고난이 담겨있다. 고통, 피로, 체념, 단념, 슬픔, 걱정 등 평범한 사람들이 느끼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쉬운 사람들보다는 어려운 사람들이 지을 법한 감정들이 두 눈 속에 담겨 있다.
작품 이름이 <어머니와 아이>였던가? 그 작품은 어머니와 아이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데 어머니의 표정이 굉장히 어두웠다. 사실 아이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작품을 그릴법도 한데, 그 어머니의 표정엔 아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느끼게 될 고통이나 고난을 미리 걱정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지금은 힘이 되어줄 수 있어 두 손으로 안은 채 지켜보고 있지만 그러지 못할 순간은 반드시 오기 마련이니까. 그게 어머니라는 존재고, 고흐가 바라본 현실적인 어머니의 복잡한 심정이라는 거겠지.
고흐의 풍경화는 마치 빛을 담아 놓은 것 같았다. 바라보고 있으면 따뜻한 햇빛이 내리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석양의 버드나무>란 작품과 <씨뿌리는 사람>(?)이란 작품이 특히 그랬다. 고흐가 바라본 풍경은 이랬을까 싶으면서 봤는데, 그토록 정신적으로 불안한 사람이 세상을 이렇게 아름답게 보고 있다는 게 엄청 놀라웠다.
그리고 가장 감명 깊게 본 작품이 바로 그의 정물화다. 고흐가 그린 정물화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 작품 안에서 바람이 불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고흐는 그림 위에 물감을 계속 덧대서 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물감이 다른 색과 섞이고 꽃잎의 방향도 이리저리 번져있다. 나에겐 그 꽃잎들이 바람에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가장 아름다웠던 작품은 <장미와 모란>이다. 독특한 배경색과 덧대진 물감들 덕에 장미가 더 생생히 보였던 것 같다.
전시장 한 벽면에 적혀있던 고흐의 한 마디가 내 마음을 저리게 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언젠가 내 그림이 물감 값보다 더 가치 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고흐는 살아생전에 그림을 많이 팔지 못했다. 당연히 그는 가난에 시달렸다. 물감값도 없어서 동생 테오 반 고흐한테 빌리곤 했으니까.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자신의 그림이 인정받지 못하고, 가난은 그를 괴롭히고, 친구 고갱은 떠나가고, 사랑도 번번이 실패하고...
그의 상황을 아니까 그의 말이 더 절절하게 다가온다. 살면서 아마 "네가 쓰는 물감이 아깝다"는 소리도 많이 들어봤으니까 저런 이야기를 했겠지?
(정말 동생이 착하고 친절한 사람이라 너무너무 다행이다)
지금 그의 작품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보러 오는지, 그가 안다면 참 좋을 텐데 말이다..
(정말 많이 보러 오긴 한다. 보러 갈 사람들은 적절한 시간을 선택해서 가시길 ㅎㅎㅎ...)
고흐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내며 마친다.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도 그가 바라봤던 세상처럼 빛나고 아름다울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