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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겸 Oct 28. 2021

4. 겸손하자

211028


이번에 치질 수술을 받게 되었다. 스케줄이 바빠 당일 수술, 당일 입원 해 1박 2일로 예상치 못하게 병원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다. 수술은 괜찮았는데, 그 이후가 너무 아팠다. 계속 내 부위를 강한 펀치로 두들기는 느낌이었다. 오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10시까지 24시간,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한 건 그곳의 아픔보다도 외로움이었다.


퇴근 후 필요한 물건을 가지고 면회를 온 동생의 얼굴을 보니 참 뭉클했다. 늦은 저녁, 남자친구와의 짧은 전화통화에서는 오열을 했다. 아픔에 대한 하소연이 기반이 된 눈물이라기 보단, 이곳에 혼자 떡하니 내버려져 있다는 고독과 괴로움에 흐르는 눈물이었다. 너무 갑작스러웠고, 예상하지 못한 지출에 상상하지 못한 아픔, 거기에 이야기할 사람 한 명 없는 적막한 입원실은 내게 큰 고통 감을 안겨줬다.


난 내가 '참 나약하구나'라고 생각했다. 25살이면 그래도 단단하게 혼자 뭐든 해낼 수 있을 나이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고작 1박, 하루밖에 나와있다고, 눈물을 흘리며 외로움을 삼키다니.




반면, 내 옆에는 50대로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계셨다. 오전에 나눈 짧은 대화 외에 큰 소통은 없었다. 같은 치핵 제거 수술을 하셨고 나보다 하루 먼저 입원하셔서 내일 나랑 같이 퇴원하신다는 정도의 정보만 주고받았다. 커튼 2장을 사이에 놓고 그렇게 같은 공간에서 하루를 묵었다.


좁은 공간에 함께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아주머니와 동선이 자주 겹쳤다. 그렇게 아주머니를 좀 관찰해보게 되었다. 나랑 달랐던 점은, 온화한 표정과 여유였다. 나는 계속 나의 치부를 붙잡으며 아프다고 간호사 언니를 불러댈 때, 아주머니는 편하게 두유를 마시면서 TV를 보고 계셨다. 몇몇 순간, 나는 '아 어쩜 저렇게 다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고, 퇴원 수속을 밟게 되었다. 함께 기다리는 엘리베이터에서 어색하게 흐르는 침묵을 깨기 위해 먼저 말을 걸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


"아유, 나는 애를 낳아봐서 그런지 이건 아프지도 않았어요."


한 껏 여유 가득한 아주머니의 눈빛에 한 방 얻어맞은 것 같았다. 정말 말 그대로 'Respect'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아주머니는 내게 뭐 삶에서 그렇게 큰 아픔도 아닌데, 버틸만하더이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짧게 해 주셨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나는 내가 참 자만했다는 걸, 아직 피 안 마른 젊은이라는 걸 깨달았다.


배울 건 너무 많고, 25살까지의 삶은 준비단계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의미가 없다는 건 아니지만, 세상에는 내가 배우고 느낄 것이 굉장히 많다는 의미다. 그런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더 겸손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드는 오늘이다.




혹시 구체적인 치질 수술 후기를 원한다면 아래 내가 블로그에 작성해 놓은 글이 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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