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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겸 Oct 29. 2021

저거 기계 말고 여기서는 못하나?

211029_디지털소외


 저번 주 영화 시사회에 당첨이 되어 CGV 용산을 방문했다. 최근 영화관이 슬금슬금 부활하면서 사람들로 한껏 바글거렸다. 시사회 티켓을 수령하고 로비에 앉아 대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매표소 앞에 한 할머님이 서성이시는 모습을 멀찍이 보게 되었다. 키오스크 앞에는 젊은 남녀 또는 가족들로 가득했다. 할머니는 키오스크 앞에 한참을 서 계시더니 직원이 서있는 매표소 앞으로 가서 말씀하셨다. "저. 그냥 저거 기계 말고 여기서는 못하나?"라고. 


 그러자 비대면 서비스 확산으로 인한 것인지 홀로 매우 바빠 보이던 직원은 "지금은 어려우세요. 키오스크를 이용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할머니는 결국 자리를 뜨셨다. '내가 도와드릴까'라고 몇 번 생각해보다가, 괜한 오지랖이 될 것 같다는 소심한 생각과 없는 용기에 망설였다.  



 최근 MBC '놀면 뭐하니'에서 '키오스크 확산세로 소외되는 디지털 약자'를 소재로 다루었다. 유튜브에서 다 모아봐야 20분도 되지 않는 분량의 3개의 클립으로 나누어 내용을 볼 수 있다. 웃으면서 '우리가 배워야지' 이야기하지만 삶에 생활 부분들에서 불편, 소외를 당할 수밖에 없는 세대. 그 세대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디지털 전환' (DT)은 핫한 이슈다. 트렌드는 기본이고, 은행이나 보험가입 등의 일상에 필요한 기본적인 금융 업무도 그 영역이 확장되었다. 식품산업, 의류산업 등 대다수의 산업도 비대면의 확산에 따라 디지털 전환에 집중하고 있다.


대부분 디지털 전환 관련 기사나 인터뷰 끝에 '소비자의 편리성과 요구를 더 생각하며 공감하는 ~' 류의 말을 꼭 붙이는데, 그들이 공감하고 싶은 소비자들은 아마 젊다고 칭해지는, 지갑을 가장 쉽게 열 수 있는 타깃들인가 보다. 실제 5대 시중 은행 '연령별 적금 대면/비대면 가입 비율'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까지 적금 비대면 신규 가입자 중 20대는 78.3%, 60대는 19.1% 였다. 심지어 업무를 진행하는 은행 점포마저 줄어들고 있다.


 최근에는 '2021년 리스타트 잡페어'라는 채용 박람회를 메타버스로 했다. 수많은 상담, 특강, 꿀팁이 이어지는 가운데 노인들은 어디서 리스타트를 해야 하는가. 차준철 경향신문 논설위원은 메타버스도 결국 사람들이 이끌어가는 공간이라 말하며 거기에 현실이 펼쳐지면 장밋빛 만은 아닐 것이라 말한다. 사설의 중심이 노인은 아니었지만, 그 속에 포함된다고 생각된다.


노인을 무조건 배려하잔 뜻도 아니다. 실버 세대도 당연히 전환되는 시대에 맞출 필요가 있다. 젊은 세대에 대한 배려 어린 말과 행동도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느려 보일 수 있는 그 세대의 속도에 발을 맞추며 '태도'를 달리하자는 거다.


 우린 우리의 길을 닦아준 실버 세대에게 감사의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라고 뭐 잘나서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다. 단지, 뿌리를 부정하면 곧 그 식물은 썩어버리게 되듯, 우리 사회도 우리의 뿌리를 이어온 분들에 대한 온정 어린 배려가 없다면 곪게 되어 버릴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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