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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겸 Sep 21. 2022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2022)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전적으로 살아 있다고 실감하려면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고 활동적일 수 있는 자기 나름의 힘과 멀어지지 말아야 한다(p7)” 


나는 나의 활동성을 의심하지 않은 적이 없다. 적어도 20살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곧 세상에서 굉장히 수동적으로 ‘움직여지는’ 존재를 걸 알았다. 그간 삶을 난 열심히 연출했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그 결과에 충만한 기쁨은 없었다. 텅 빈 공갈빵에 예쁜 색을 입힌 것뿐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던 중 홀린 듯 에히리 프롬의 책을 집어 들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이다(p9)” 


프롬은 인생의 중요한 건 살아있는 거라 선언했다.


삶은 순간으로 채워진 과정들이다. 멈추지 않는다. 행복, 고통, 화, 슬픔, 기쁨 등 감정은 물론 시간과 사건으로도 채워져 있다. 그렇기에 삶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된다. 소유될 수 없으며, 사용될 수 없다. 


그 존재 자체에 만족해야 한다. 소유 전 단계는 욕망이다. 가지고 자하는 결핍이다. 탐욕을 품고 삶을 바라보는 순간 난 객관적으로 인생을 바라보지 못하게 된다. “내 욕망이 원하는 대로, 화가 강요하는 대로, 어리석음이 상상하는 대로 왜곡한다(p147)” 


종종 시들어버린 꽃처럼 주눅 든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아마 내 관심은 죽은 것(돈, 명예 등)에 있었으며 이로 인해 행동이 관료화된 게 원인인 아닐지 생각해본다. 결국이 연장선으로 “고요할 수 있는 능력, 무언가에 뛰어들 능력, 집중하는 능력(p49)”이 결여되어 간다. 생명과 삶에 대한 내 사랑이 무력해진 거다. 


이 과정에서 생겨난 은폐된 적개심은 인간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불만과 원인이 없는 혐오로 이어졌다. 그 끝에는 항상 공허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 순간 나는 나를 사랑하기를 멈추게 된다. 프롬은 말한다. “자신을 사랑하기를 멈춘 인간은 살해당해도, 죽어도 좋다는 마음을 갖는다.(p138)” 




나를 인정하지 못하고 삶을 사랑하지 못할 때 불안이 찾아온다.

난 나 자신도 나의 감정과 태도의 한 객체이자 대상이 될 수 있단 걸 몰랐다. 고독으로 삶이 가득 차도 나는 내 자아의 시선을 살아있는 것으로 옮겨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사랑으로 가득 찬다. “사랑은 격정이 아니다. 자기 ‘대상’의 행복과 발전, 자유를 위해 매진하는 능동적 노력이다.(p123)“ 


난 노력해야 한다. 진정한 자기감정을 갖기 위해 스스로를 부숴야 한다. 자기감정의 완성을 위해서는 ‘창의성’과 ‘독창성’을 갖고자 현대사회가 가져다주는 갈등, 욕망, 긴장, 공포, 강박의 그물을 찢고 나와야 한다.

 

이를 방해하는 것이 ‘무력감’이다. ‘무력’이 아니다. 나 스스로 ‘력’이 없다 느끼는 착각의 감정이다. 우리가 세상의 비판이 부당하다 느끼지도 못하고, 모든 비판과 비난을 정당하다 여기게 되는 건 무력감에서 나타난다.(p180) 이는 공격을 방어할 능력을 키우지 못하게 한다. 경제적 능률로 사람의 가치를 매기는 현대 사회에서 매일 같이 많은 사람이 무력감을 느낀다. 효능이 없는 존재로 낙인찍히는 순간 소외되기 때문이다. 이는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되기도 하기에 인간들에게는 중요한 문제다. 




현실을 직시하고 진정으로 삶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무력감을 없애줄 ‘활동성’을 깨워야 한다. 

여기서의 활동성은 일을 많이 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미라클 모닝을 하는 그런 활동성을 말하는 게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스피노자, 괴테, 마르크스와 불교에서의 ‘활동성’ 곧 내면의 활동성의 의미다. 그 활동성은 내 이기적인 자아를 비울 때 들어온다. “자신으로 꽉 찬 인간은 마음을 열고 자신을 내줄 자유가 없다.(p255)”.


문득 겁이나기도 한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정말 나의 마음을 비우고, 활동성을 일깨울 수 있을까? 아마 난 끊임없이 착각할 거다. 현대인의 심각한 자기기만에 다시 빠질 거다. 스스로 최고로 활동적인 삶을 살아내고 있다고 합리화하며 진정한 독립으로서의 자유가 아닌 죽은 것, 돈이 만든 알고리즘에서 노예와 같이 살지도 모른다. 그리고 세상은 그런 내게 잘하고 있다며 아주 유용한 경제 단위가 되어가고 있다며 칭찬과 보상을 쏟아낼 것이다.


그래서 난 끊임없이 되뇌고자 한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많은 것을 알고 있고, 그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p275)”는 걸. 내 생각과 느낌을 존중하자. 이기적인 자아를 비우고 세상의 살아있는 것을 사랑하자. 난 생명을 움직이는 원초적인 활동성을 갖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되뇌고 되뇌어본다. “나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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