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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겸 Oct 14. 2019

[조커(2019)] Is it just me?

* 영화 '조커'에 대한 스포일러와 개인적인 의견이 담겨있습니다 *

I used to think
that my life was a TRAGEDY. 
But now I realize, 
it's a COMEDY.

고담시에서 애써 자리 잡아 살아가 보려던 아서는 비극의 삶(life ; 생명, 목숨, 생애, 일생, 생기, 활력, 본인)을 살아간다. 그러다 곧 깨닫는다. 인생은 코미디라는 걸. 


 자신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공익요원에게 힘겹게 이야기를 털어놓은 후 약을 타러 가는 길. 표정은 코미디가 아니다. 사회에서 돌연변이, 정신병자가 아닌 '코미디언'으로 살아가기 위해 발악하는 아서는 참고, 또 참는다. 영화가 끝나고 영화관을 나서는 길에 '아서는 사회 부적응자이며 공감 지능이 떨어지는 미치광이'라는 평을 들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는 누구보다 사회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아서는 노트에 적는다. "The worst part of having a mental illness is people expect you to behave as if you don't."라고. 사람들의 기대(expect)에 누구보다 부응하고 싶어 했다. 랜들이 자신에게 총을 건네주었을 때, '나는 총을 소지해서는 안된다'라고 말한다. 또, 광고판을 뺏어가고 구타까지 한 아이들에게 '아이들인데 그냥 봐줄 걸 그랬어'라며 후회한다. 아서는 그 누구보다 타인과의 공존을 위해 발버둥 쳤다. 

 망상장애가 있는 어머니께 제대로 화 한번 내지 않았다.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어머니 마음에 크게 상처가 되지 않게 한다. 집에서 우발적으로 총을 쐈을 때, 미안하다며 사과하기도 한다. 영화 초반 상담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 아서는 어린아이에게 우스갯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인다. 또 랜들을 죽인 후 개리를 살려준다. 자신에게 유일하게 잘해주었던 친구를 죽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는 누구보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을 웃게 해주고 싶다는 꿈의 동기 조차 자신을 위한 꿈이 아니다. 그는 자신만큼 타인의 삶(Life)도 소중하다는 걸 아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는 다른 이의 삶에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아 한다. 하지만 사회는 그에게 단념의 옷을 입힌다. 아서를 건드린 건 악한 본능이 아닌 사회의 타인이다. 아무도 아서 이야기를 듣지 않았고, 듣고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이의 삶에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아 했다. 하지만 어린아이의 엄마는 아이에게 웃음을 주던 아서에게 되려 '아이를 괴롭히지 말라'라고 한다. 그로 인해 웃음 발작이 일어나는 아서는. 자신도 원인을 잘 모른다며. 작은 쪽지를 가지고 다니며 주위에 병이 있다고, 폐를 끼쳐 미안하다는 메시지가 적힌 카드를 전한다. 그러나 무시당한다. 가식적인 사과도 받지 못한다. 

 이런 아서의 진심 어린 사과와 마음은 영화 속에서 매번 등한시된다. 어머니가 쓰러진 날 병원 앞에서 형사 버크가 쪽지를 내밀며 '이것도 연기의 일종(This condition of yours, the laughing, is it real, or some sort of clown thing?)'이냐고 말한다. 그리고 아서는 되묻는다. "What do you think?". 그렇게 조금씩 마음이 갉아먹힌다. 궁극적으로, 그는 머레이 쇼에서 자신의 조크가 비웃음 당하는 모습을 본다. 그는 머레이를 존경하지 못해 상상 속에서나마 아들이 되고자 했다. 하지만 이로써 누구도 그의 편이 아님이 밝혀졌다. 

 그렇게 남은 건 가족뿐. 어머니 '페니 플렉'과 자신의 아버지 (라고 믿었던) '토마스 웨인'이다. 그렇게 찾아간 극장, 어렵게 만난 아버지는 자신에게 강한 주먹을 날린다. 자신의 진짜 아들을 건드리면 죽여버리겠다고 말하며, 동정과 예의 없이 '미친 여자의 아들'로 아서를 대하는 토마스의 모습에 그는 인간으로서 큰 배신과 절망을 느꼈다. (진짜 아들이 아니라고 해도,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사람이고 시장까지 할 인재라면.)  진정 자신의 친부모님이 자신을 버렸다(abandened)는 현실은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던 신의를 불태웠다. 


"Well, No ONE's laughing now."  

그렇게 아서는 조커가 되었다.


누구도 자신을 향해 웃지 않고, 

진심 조차 듣지 않는 사회에 미련은 없다. 

비극은 끝났다. 질릴 대로 질려버렸다.  


"I do. And I'm tired of pretending it's not."

"You don't listen, do you? I don't think you ever really listened to me. You just ask same questions every week. "


머레이 쇼에 출연한 조커는 절규한다. 

"Everybody just yells and screams 

at each other. 


Nobody's civil anymore! 

Nobody thinks wait it's like to be the other guy. "


누구도 배려하지 않는 사회.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이들. 

조커가 바라본 건 정치적, 사회적 구조의 모순이 아니다. 

다만 개인이다. 


비극의 주인공이었던 아서는 완벽한 JOKER가 되어 코미디의 삶을 시작한다.  "COMEDY is subjective." 코미디는 주관적이다. 누구도 평가할 수 없는 게 삶이다. 옳다거나 그르다, 웃기다든지 웃기지 않다. 제대로다, 아니다로 판단되지 못한다. (판단되는 척은 할 수 있겠지) 그래서 조커는 판단의 경계와 잣대를 향해 제대로 총을 겨눈다. 후반부에 감옥에서 정신과 의사는 아서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묻는다. "Do you want to tell it to me?" 하지만 이제 아서는 없다. "You wouldn't get it." 이것이 사회를 향해 조커가 내린 결론이다. 마지막, 그는 노래를 시작한다. 


"That's Life."

; we then see him walking down the corridor leaving a trail of bloody footprints behind before being chased by orderl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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