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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겸 Jan 18. 2020

성스러운 여인으로써, 한 사람의 여성으로써

<'성'스러운 국민:젠더와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근대 국가의 법과 과학>

 과학, 국가, 젠더에 있어 여러 시사점을 제공했던 일명 ‘황우석 사건’은 실험의 난자 제공자들을 ‘성스러운 여인’이라 칭했다. 이러한 담론에서 나타나는 윤리성, 여성성의 문제는 사회에서 비교적 작은 또 쉽게 극복 가능한 문제로 인식되었다. 이 과정에서 난자는 사회적, 물적 연결망에서 익명화된 실험재료로써 ‘탈맥락화’ 되며 난자 기증의 위험은 비가시화되었다. 또한 ‘상상적 공동체’에 대한 민족주의 및 이타주의 적인 의무로써 ‘재맥락화’ 되면서 새로운 생명정치의 수단, 자원이 되었다.


 연구에서 보여주는 ‘이미지’들은 과학자의 기술에 맞춰져 있었다. 따라서 여성의 몸은 관심에서 사라지고 난자는 실험재료, 사물로 비춰지며 탈맥락화 되었다. 하나의 상징, 미래를 종합한 아이콘이 된 것이다. 생명공학적 시선으로 시각화된 기술의 이미지는 난자를 여성에 몸에서 분리시키는 폭력적 행위를 비가시화하고, 난자가 원래부터 분리되어 존재한 것처럼 믿게 만들었다. 즉, 연구는 이러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배아줄기세포의 필요성을 정당화하며 상대적으로 여성에 대한 문제는 무관심하게 한 것이다.




 난자 채취과정은 전문가만 설명할 수 있는 정립된 지식처럼 여겨지며 블랙박스화 되었다. 페미니스트, 시민과학 운동은 이 과정에서 생기는 부작용, 위험성을 가시화하며 과학의 확실성, 환원주의에 대한 신화를 깨뜨렸다. 더불어 난자는 여성 몸의 일부로 봐야한다는 주장을 하며 몸의 경계와 난자의 외연을 확장했다. 하지만 이 담론과 함께 사용된 이미지도 여성을 수동적 피해자로만 그리며 사회, 경제적 맥락에서의 관심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난자와 몸의 외연은 여성의 물리적 몸을 넘어 사회적인 여성의 삶이 위치한 가족, 경제, 이데올로기, 사회 속 맥락까지 확정되어야 한다. 여성도 생계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재생산은 종종 자연스러운 것, 사회적이지 않은 것, 잉여가치를 생산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져왔다. ‘사랑의 노동’이라며 비가시화되었던 것이다. 줄기세포 연구 속에서도 난자를 제공한 여성은 자신의 몸, 몸의 일부가 실험자원으로만 탈맥락화 됨으로써 소외를 경험한다. 그 속에서 자기 노동의 결과물, 과정으로써 온전한 의미의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한 것이다. 이는 ‘고지된 동의’로 해결할 수 없다. 개인적, 집합적, 제도적, 사회문화적 수준에서 과학기술 연구의 기획까지 여성이 참여할 수 있어야한다. 난자를 채취한다는 것은 여성 몸의 권리, 건강, 인격과 떼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이다.




 앞서 여성의 몸과 삶에서 분리되며 탈맥락화 되었던 난자는 내셔널리즘, 이타주의라는 이름을 가진 시민의 의무로써 상상적 공동체와 관계를 맺게되며 재맥락화 된다. 난자와 관련된 문제를 가볍게 만든 배경에는 생명공학기술을 통한 국가 경제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 세계화 시대에 과학, 기술이 서구를 따라잡는 필수 요소로 여겨지는 한국에서 줄기세포 연구는 경제성장주의와 국가 경제 발전에 대한 기대와 연결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난자 채취의 윤리적 문제, 여성 건강 문제는 국익을 훼손하는 소모적인 논쟁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형성된 이상적인 여성상은 여성을 난자의 매매와 희생이라는 이분법 아래 놓이게 했다. 난자 매매 여성이 맺는 사회적 관계는 삭제되고 이상적인 상상적 공동체와 연결되며 희생이 인정되지 않는 것이다. 공공의 선을 위해 자기 몸을 제공하는 일은 사회 전체 복지를 위한 의무로 정당화 되었다. 또한 재맥락화된 담론은 가족 안에서 여성이 부인, 어머니 그리고 더 넓은 공동체 내의 기대에 부응해야한다며 이타주의를 강조했다. 난자를 기증하는 행위와 ‘여성으로써’의 미덕을 연결하며 여성이 된다는 의미를 구성하기도 했다.


 배아줄기세포는 그 자체만으로도 실생활에 적용되기 어렵다. 하지만 미디어는 끝없이 희망을 조장했고 그 속에서 여성의 노동은 보여지지 않았다. 다만 난자는 여성의 몸과 사회적 맥락에서 분리된 실험체였으며, 국가의 발전과 미래를 위한 수단이 되었다. 이 속에서 여성은 시민적 의무를 강요받으며 ‘적절한 혹은 적절하지 않은’의 이분법적으로 분류되었다. 우리는 이분법적 관념에서 벗어나 다양한 구조적 맥락 속에서 이들의 목소리를 드러내야 한다. 이를 위해 여성을 보호되어야 할 피해자로 객체화하기 보다 적극적 삶의 주체로 인정해주며 과학기술 연구 과정에 페미니스트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구성원이 개입할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다.


(내용 출처 : <''스러운 국민:젠더와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근대 국가의 법과 과학>  8 '과학과 국가를 위한  : 줄기세포 연구와 난자 기증 담론' - 정연보,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 젠더연구팀, 20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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