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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겸 Oct 13. 2019

[아가씨(2016)]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 영화 '아가씨'에 대한 스포일러와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출처 : 씨네 21

 히데코는 코우즈키가 뱀처럼 옭아매도 자유를 향해 발버둥 친다. 드디어 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언제나 참고, 또 참았다. 이모가 그렇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도 제대로 소리 한번 내지 못했다. 지하실에서 어린 히데코에게 코우즈키는 말대답을 한다고 구슬로 손등을 때린다. 유모 사사키는 비천한 계집애라고 말하며 기름 아끼라고 불을 못 키게 한다. 그리고 불을 켜거나 소리를 내면 큰 야차 같은 남자가 나와서 아가씨가 아무 소리를 낼 수 없게 덮쳐 눌러버릴 것이라 겁을 준다. 실제로 저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다. 초등학생 시절 외가댁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조용히'었다. 그릇을 깬 엄마의 손을 아무도 잡아주지 않았을 때도. 노래방에서 이모들은 한 곡도 부르지 못하고 박수만 치며, 삼촌과 할아버지, 사촌오빠들만 주야장천 자기 노래만 부를 때도 나는 아무 말하지 못했다. 


출처 : 뉴스 줌

 그렇게 등장한 이모는 히데코에게 불을 옮겨준다. 아무도 불을 주지 않을 때, 히데코에게 손을 내민다. 그리고 '내가 곱냐'라고 물어본다. 하지만 그녀들은 '언니보다 못하다는', '엄마보다 못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기억나는 건 단지 그뿐이다. 서로에게 있는 미세한 유대감 조차 결국 주위의 말들에 억눌려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동생보다 못하다던데'라는 말에 대한 기억 뒤에는 '나 어때?'라며 관심을 요구한 나의 결핍이 있었다. 단지 '그래도 동생보다 못하지'라는 말로 채워졌다고 합리화했던 것이다

 히데코에게는 숙희가 나타나 결핍을 채울 수 있는 자유와 선택이 생겼다. 나는 숙희가 다가오길 기다리기보다 찾아다니고 있다. 채워지지 않을 결핍이지만 나의 아픔을 상처답게 내 마음에 남기고 싶다. 하지만 이렇게 다짐하다가도 가끔 마음에 울컥하고 올라온다. 


출처 : 블로그 '소히월드 :D'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여자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찢어지는 심정이다. 영화 속에서 히데코를 성적 대상으로 묘사해 쓴 글, 그린 그림을 보고 숙희는 칼로 찢는다다. 던지고, 부수고 물에 담가버린다. 이내 뱀의 머리를 부순다. 답답한 세상! "여자 두 명 이선 절대 고베를 떠날 수 없다"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의 머리를 깨버리고 싶은 내 마음이 통쾌하게 공감되는 장면이었다. 뱀은 곧 무지의 경계선이다. 무지한 사람들에게 내가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여성영화 스터디를 할 때마다 올라오는 답답함에 숨을 쉴 수 없다. 참 많은 이들이 오해한다. 여자들이 뭘 할 수 있겠어. 하지만 가장 크게 오해하고 있는 건 내 사진이다.  스스로에게 하는 자아의 목소리에는 아직 가득 힘이 실려있다. '여자인 내가 뭘 할 수 있겠어'라고 무의식 중에 내게 한계선을 긋는다. 여성영화 스터디를 만들어 놓고도 '의미가 있을까?' 하며 혼란스러워한다. 이 혼란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으려 한다. 히데코의 죽음 앞에서 죽지 말라며 우는 숙희가 내 옆에도 있기 때문이다. 


출처 : 오마이뉴스

내가 바라는 건 '넌 페미니스트잖아'. '너는 페미니즘에 관심이 없잖아'라며 서로 까는, 그게 아니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가식적인 모든 걸 떠난 솔직한 마음이다. 참 이상적인 한계가 있지만, 남자, 여자를 떠나 서로를 아끼고 그들에게 공감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런 마음에서 또 여성영화를 공부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단지 욕하며 삿대질하는 삶이 아닌 누군가의 이야기를 곧게, 그대로 듣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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