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이가겸

11월, 성찰의 글

"과연 나는 사람다운 한 달을 살았나?"

by 이가겸

9월, 아빠에게 한 가지 제안을 받았다. 아빠의 은사이신 원당 이득희 선생님의 가르침을 요약한 <신과 칼과 얼 1>을 읽고 12월 추모식에 발표를 해보라는 것이었다. 책을 읽고 정리하며 어느덧 11월이 되었고 발표문을 마무리 지으면서 나 자신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얼'은 정태적으로는 진리, 본질이자 로고스에 종속적인 중심을 말한다. 동태적으로는 시공간 속 의미를 초월한 가치관의 변동을 의미한다. 책 <신과 칼과 얼 1>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직감에 잡히는 수많은 것들과 더불어 명멸하는 무수한 것들 사이로 영원한 것을 꿰뚫어 가는 것'. 정리하자면 나의 가치는 얼을 향해, 또는 중심으로 움직여야 하며 여기서 벗어나는 순간 탁상적으로 사유하게 된다. 얼은 신에게 종속되어 있는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서 벗어날 경우 신은 '칼'을 내민다. 그 칼을 받아들일 때 사람다운 바탕이 생기고 나의 얼이 굳혀지면서 참다운 신앙과 더불의 나의 삶은 자리를 잡게 된다.

인간은 신의 형태를 가지고 있기에 얼을 갖고 있다. 따라서 얼은 신의 얼과 인간의 얼, 2가지로 나눠진다. 신의 얼은 사람의 영과 마음의 몸을 조화시켜준다. 순환하는 우주, 생명이 엮은 질서다. 인간의 얼은 신에 대해 말하는 얼의 상태를 짐작하는 것이다. 이는 그 자체가 기발력을 갖고 있으며 계속 정상으로 회복하고 피해 가길 반복한다.


11월은 나에게 있는 기원이자 변동의 계기, Epoch에 대한 방황이자 고민을 했었던 달이었다.

"과연 나는 사람다운 한 달을 살았나?"

나의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신과 칼을 회피했다. 자가도취를 일삼으며 비관적인 생각만을 하기 일쑤였다. 나 자신은 나를 왜곡, 은폐했다. 모든 건 누적되고 복잡하게 이어져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며 오히려 지식과 인간에만 의지하려 했다. 이에 대해 '나는 왜 이렇게 나는 모순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나'를 생각해보았다. 그러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을 읽게 되었다. "나는 이 얼굴들을, 이 습관과 이 나날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나는 휴식이 아니라 생명으로 도달하는 소리를 듣고 싶다. 바닷가 오두막이나, 심지어 험난한 산비탈 위에 있는 동굴도 내게 그것을 줄 수 있다." 이 문장에서 그렇지 않다는 것에 대한 답을 찾았다. 곧 나는 내면적 깨달음을 등한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나를 도구로 세상에 이용하기 위해 대상화시킬 합리적 이유를 찾고 있던 것이었다. 거기서 오는 결과는 답을 찾을 수 없는 공허와 허망한 환상뿐이었다. 부자연스러웠던 내 11월은 나의 가치가 변동해야 함을 암시했던 것이다. 도덕경의 '도가도는 비상도, 명가명은 비 상명이라'는 말에서 시사하는 것과 같이 모든 건 자연스러움 가운데서 행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2019년의 마지막 달에는 새로운 가치를 스스로 창달해보려 한다. 나의 희열과 자유를 위해서, 회피가 아닌 변화로 도약하는 12월을 살아보려 한다.


"넓고 깊고 영원한 것을 찾기 위해 노력하라. 그렇지 않으면 시간은 흘러가고, 지식은 누적되고, 기술은 축적되는 시대에 어떻게 평화롭게 임하겠는가?"

- 이득희, 신과 칼과 얼 1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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