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기다리되 겨울엔 날씨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
인생은 일부 고통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외의 부분은 내가 직접 만들어내는 것이다. 고통을 대하는 내 태도가 그 외의 부분을 더 아픈 고통으로 채울지 행복을 채울지 결정한다. 고통과 행복은 같은 조건과 환경 아래서 생긴다. 법정 스님은 <너무 일찍 나왔군>에서 이런 말씀을 하신다. "똑같은 조건 아래서도 희로애락의 감도가 저마다 다른 걸 보면, 우리들이 겪는 어떤 종류의 고와 낙은 객관적인 대상에 보다도 주관적인 인식 여하에 달리 것 같다." 고통과 행복은 상황에 대한 주관적 인식의 결과다.
그렇다고 무조건 고통을 피할 수 없다.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있다. 이를 단지 자책의 동기로 받아들인다면 더 절망에 빠지게 된다. 철학자 니체는 고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겪어야 하는 고통과 고난에서 무작정 도망치거나 고난을 내버려 두고 무시하면 자기 삶의 능력만 약해지고 만다." 우리가 현재 상황을 이성적으로 바라보며 능동적으로 모두 바꿀 수 있는 건 아니다. 인간에게는 감정이 있고, 스쳐 지나가는 순간에 대해 언제나 완벽할 수 없다. 충분히 고통과 좌절은 일어날 수 있으며, 또 일어나도 괜찮다.
또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어떤 고통을 온전히 경험했을 때만 그 고통에서 치유될 수 있다." 치유를 계기로 성장하려면 고통을 밟아야 한다. 분명 그 순간은 힘들고 괴로워서 극단의 생각까지 치달을 수 있다. 이번 2월은 많은 고통이 마음을 오고 갔다. 사회적인 일, 개인적인 일을 통틀어 극의 늪을 달렸다. 그러다가 다만 극복만 하려 발버둥 치는 것보다, 오히려 고통을 직시하고 바라보도는 강한 태도를 지닐 수 있도록 나를 이해하는 것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라는 걸 깨달았다. 또한 나에 대한 이해를 넘어선 과한 생각은 우울을 끌어들이는 지름길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자신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면 자기 연민 또는 비하를 하게 된다. 나를 귀하게 생각하며 이해하려 노력하되, 생각에서 벗어나 실제(實際)를 그 자체로 보아야 한다.
고통스럽다 싶을 땐, 내가 너무 지나쳐 생각하고 있는가?라고 생각의 루트를 바꾸거나 일단 무엇이든 행동(行動)을 하자. 이 행동은 행위(行爲)랑 다르다. 행위는 '분명한 목적, 의미, 의지를 갖고 하는 행하는 짓'을 뜻한다. 행동은 단지 인간의 활동과 반응을 가리키는 말이다. 굳이 '어떤 생각이 준비되면 해야지' 할 필요 없이 행할 수 있는 건 많다. 일단 일어나서 창문을 연다 던 지, 혼자 눈 운동을 한다던지 등 말이다. 그럴 때, 고통의 감정과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고와 낙의 반복 운동을 거치다 보면 한층 성숙해진 나를 발견하고 상황을 이겨나가게 될 거다.
혼란과 불안으로 가득했던 지난달을 뒤로하고 새롭게 고통을 바라보는 태도를 갖추자며 스스로 다짐해본다. 3월을 시작으로 곧 꽃이 피고, 햇살이 따뜻하게 반겨주는 봄이 온다. 곧 봄이 온다고 벌써 얇은 봄 옷을 입으면 쉽게 감기에 걸린다. 봄을 기다리되 겨울엔 날씨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 아프다면 아프다, 고통스러운 고통스럽다는 감정에 걸맞은 옷, 곧 태도를 갖춰 마음 건강을 지켜야 한다. 3월엔 감정에 맞는 옷을 입고 실제를 살아가는 내가 되길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