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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겸 Mar 15. 2020

특이점의 예술

기술과 예술, 그리고 인공지능

* 이 글은 글쓴이의 생각과 함께 최선주 작가의 책 <특이점의 예술>의 내용 일부를 발췌, 요약한 것입니다.

인간이 아닌 새로운 예술 주체의 등장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2016년 구글 딥드림은 주어진 이미지의 패턴을 분석하고 다른 이미지와 합성해 마치 꿈속에서 보는 것 같은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었다. 같은 해 소니의 플로 머신즈는 비틀스 음악을 분석해 이를 토대로 새로운 음악을 작곡했다. 하지만 예술계에서는 이는 기존 작품에 대한 모방이기에 예술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과연 인공지능의 창작물은 예술이라 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을 인간과 동등한 예술가로 볼 수 있을까? p9


 기술에 예술에 미칠 영향력에 대해 폴 발레리(Paul Valery)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엄청난 혁신들이 예술의 테크닉 전체를 변모시키고 그로써 예술의 창작 과정 자체에 영향을 끼치며, 결국에는 예술의 개념 자체를 가장 마법적인 방식으로 변화시키는 데까지 이를지 모른다는 점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p10

 오늘날 가장 영향력 있는 기술, 인공지능은 지금까지의 예술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저자는 우리는 지금 특이점을 한 걸음 앞에 두고 있을지 모른다고 말한다. 


 특이점(特異點, singularity)이란 어떤 기준을 상정했을 때, 그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 점을 이르는 용어로, 물리학이나 수학 등의 학문에서 사용된다. (위키백과 : 특이점) 여기서 파생된 기술적 특이점(技術的特異點, technological singularity, TS)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는 미래학에서 문명의 미래 발전에 가상 지점을 뜻하는 용어로써, 미래에 기술 변화의 속도가 급속히 변함으로써 그 영향이 넓어져 인간의 생활이 되돌릴 수 없도록 변화되는 기점을 뜻한다. (위키백과 : 기술적 특이점) 인공지능(AI)의 발전이 가속화되어 모든 인류의 지성을 합친 것보다 더 뛰어난 초인공지능이 출현하는 시점이다. 인공지능은 이제 다방면으로 삶 속에 들어올 것이다. 예술도 예외는 아니다. 과연 우리는 인간이 아닌 새로운 예술 주체의 등장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p12 질문의 끝에서 저자는 인공지능이 함께할 미래를 이해할 통찰의 발견을 기대하며 글을 시작한다. 


 오래전부터 신의 손길이 닿은 자연은 아름답고 조화로운 것으로 여겨졌고, 인간이 만들어낸 인 공저긴 것은 조작한 것,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p16 하지만 이제 앨런 튜링(Alan Turing)의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 질문으로 시작된 인공지능은 지금까지 점점 똑똑해지고 있다. 예컨대 인공지능이 직접 데이터를 분석해 패턴을 찾아내는 머신 러닝은 인간을 벗어난 지능 확장이 실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p25 인공지능에서 지능(Intelligence)은 이해하다는 뜻의 라틴어 'Intelligentia'에서 유래했다. 지능에 대한 교육, 심리학의 정의는 이러하다. 

- "문제를 찾아서 해결하는 기술들의 집합"(발달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 ( Howard Gardener))

- "생존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인지적 능력을 변화시키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 (심리학자 뢰벤 포이어스타인(Reuven Feuerstein))

정의와 같이 지능은 문제 해결 능력과 연관된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해결 능력을 넘어서 발전, 성장하고 있다. 이제 책 속 몇 가지의 키워드로 이러한 인공지능과 예술에 대해 생각해보려 한다. 




사이버네틱스

 인공지능은 인공두뇌학,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가 번성했던 1940~1960년대에 태동했다. 사이버네틱스는 생물의 자기 제어(自己制御)의 원리를 기계 장치에 적용하여 통신·제어·정보 처리 등의 기술을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학문 분야로 제2차 세계 대전 후 대두한 것으로 미국의 수학자 위너(N. Wiener)에 의하여 창시되었다. 인공두뇌의 실현과 오토메이션의 개량을 목적으로 한다.(구글 사전 : 사이버네틱스) 이로 인해 기계, 동물, 인간을 비교하는 연구가 증가하면서 복잡한 행동 패턴을 가진 인간의 유사성이 밝혀지기 시작했고 이후 인간은 지능을 가진 기계와 본질적으로 유사한 정보 처리 개체로 여겨지게 되었다. 자연-인간의 구분이 이뤄질 수 없음이 증명된 것이다. 예술에서는 바이오 아트,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을 이용한 예술, 인공지능의 창작으로 이뤄진다. p26

 사이버네틱스 예술은 시기에 따라 구분된다. 



 1단계로 사이버네틱스 예술은 한 시스템 안에서의 [정보흐름]에 집중하고자 했다. 예로 관객과 기계 장치의 메커니즘에 의해 작동하는 예술작품인 키네틱 아트(Kinetic art)가 있다. 정보 교환, 인간이 환경에 적응한다는 원리가 작용한다. 

 2단계[비 물질성]을 활용한 관객-매체 간 작동이다. 여기서 중요한 매체는 일대일 개인 매체인 동시에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비디오다. 비디오는 모니터에 투사된 이미지와 주체 사이의 간격을 없애 관찰자의 위치작품에 참여하는 주체로 변환시킨다. p28

 3단계 사이버네틱스 예술에서는 물질적 대상을 [정보 패턴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핵심은 생명체의 정보를 해석해 인공적으로 생명체를 만들어내는 인공 생명(artifical life)이다. 이는 장차 바이오 아트와 사이보그 아트로 이어진다. p29 


 

 사이버네틱스 이전의 예술은 [기술을 지워나가는 과정]이었다면, 후는 [인간-기계를 동일하게 바라보고 해석하며, 인공지능에게 창작 가능성을 새롭게 그려나가는 과정]이다. 




자동화

 자동화(Automation)인공지능의 중요 특징이자. 뉴미디어의 주요 원리다. p35 철학자 레프 마노비치가 말한 뉴미디어의 특징을 바탕으로 말하자면 자동화는 (1)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낮은 단계의 자동화 (2) 만들어지는 객체에 포함되는 의미를 이해하는 높은 단계의 자동화가 있다. (1)의 예시로는 오타 자동 수정의 기능을 말할 수 있다. (2)는 자체 언어(interlingua)가 있다. 단순히 문자-문자의 번역을 기억하는 게 아니라 문장의 의미론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재매개 

 재매개(remediation)란 폴 레빈슨(Paul Levinson)이 새로운 미디어 테크놀로지가 앞선 테크놀로지를 개선하거나 수정하는 "인간 성향적 anthropotropic" 과정이라 정의한 개념으로 새로운 미디어가 앞선 미디어 형식들을 개조하는 형식 논리를 의미한다. (위키백과 : 재매개) 어원은 라틴어 'remeferi'에서 기원했는데. 치료하고 회복시켜 건강하게 한다는 뜻이다. 현재의 미디어가 과거의 미디어를 개혁, 개선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작품 자체가 아닌, 창작 과정 그리고 창작 주체인 인간을 재매개 한다. p42 

 

 인간은 감각 기관으로 데이터를 받아들이고 뇌에서 분석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출력 시스템으로 손을 거쳐 작품을 완성한다. 창작을 위해서는 반드시 인풋 데이터가 필요하고, 뇌 속의 창작 알고리즘을 거쳐 아웃풋, 작품이 탄생한다. 하지만 인간은 뇌 속의 분석 시스템과 생성 시스템 속에 어떤 알고리즘이 있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인공지능은 임의의 이미지에서 양식(style)과 내용(contents)을 분리해 새로운 작품을 만든다. 어떤 방식으로 완성되는지 그 과정을 밝히고 재매개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재매개는 인공지능이 인간이 어떻게 예술적 이미지를 생성, 인식하는지 알고리즘으로 이해하는 길을 제시했다는 걸 보여준다. p43

 이렇게 인공지능은 인간이 평생 학습한 것을 단기간 배워 구현해내고, 알고리즘으로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전에 없던 새로운 창작물을 만든다. 그러면서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지각 경험을 제공하며 인간의 창작물을 개선한다. p44


자유 의지와 예술 의지

 앞선 주장은 인간의 예술이 인공지능 창작물보다 우위에 있다는 뜻이 아니다. 예술엔 미지의 영역, 불투명성이 존재한다. 인지 과학자, 컴퓨터학자 더글러스 호프스태터(Douglas Hofstadter)는 "인간 역시 자신의 심상이 어디서 오는지 정확히 알 수 없고, 선택과 조합의 무한한 가능성 앞에서 무력할 뿐"이라고 말했다. p45 작가는 이미지, 관념이 마음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명확히 모른다. 그래서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해보고 이를 가장 잘 표현하는 법이라고 느꼈을 때 무언가를 완성한다. 인공지능도 마찬가지다. 프로그램에 주입되어 있는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 사이에서 결과물이 나온다. 호프스태터는 자유 의지"자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일종의 직관적인 감각"이라고 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의 미묘한 균형에서 자유 의지가 나온다는 것이다.  p46


 자유 의지는 곧 예술 의지(Kunstwollen)로 이해할 수 있다. 자율성은 예술 의지의 작동 기제다. 환경과 분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스스로 변화, 생산할 때 생기는 자율성은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하는 행위다. 최근 자율성은 환경과 접속되어있는 개체 내부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한다는 주장이 떠올랐다. 여기서 중요한 건 순환성, 즉 반복이다. 생물학자 마투라나와 바렐라는 개체 발생"반복적인 질서에 끊임없이 변화하며 수행되는 창조적 진화"라고 말하며 반복을 생명의 본질로 파악했다. p48 인공지능은 반복을 통해 학습해 최상의 결과를 찾아낸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공지능을 인간과 동등한 의미에서 작가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과거의 많은 매체와 달리 인공지능의 반복은 개체 발생을 위한 자율성을 지닌다. 이는 인공지능 창작에서 자율적 생성이 가능하다는 증거다. p51


우연성

 인공지능 창작의 예술적 가능성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인공지능의 창의성에 질문을 던져야 한다. 새롭고 독창적인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 전통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비일상적 생각을 산출하는 능력, 창의성을 인공지능이 가질 수 있을까? 창의성은 우연성(chance)을 지닌다. 이는 인간에게 새로운 미적 자극을 준다. 여기서 우연성은 Coincidence(독립적 인과 관계가 있는 사건이 동시에 발생하는 우연), Serendipity(무작위, 특별한 노력 없이 얻어지는 우연성)의 우연이 아니다. 원료가 되는 아이디어를 결합해 재생산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것이다. 창의성은 이 우연성을 바탕으로 한다. p57 이런 점에서 인공지능도 데이터를 조합하는 과정을 통해 창의적으로 보이는 결과물을 선보일 수 있다는 사실이 근거를 얻는다. 인공지능의 결과물이 인간의 예술과 동등하다 할 수 없지만, 기계적 우연성을 바탕으로 한 예술적 가능성이 확인되는 것이다. p63


창작과 주체

 인공지능은 이제 예술을 함께하는 도구에서 동료가 될 수 있다. 현재 우리는 작품을 작가의 의도로만 해석하지 않는다. 작품 제작 방식을 '탈개성화'시키면서 작품, 관람객, 공간과 맺는 상호 교환이 중요해졌다. 창작이 작가 외부에서도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인간과 인공지능은 상호 매개가 가능하다. 그렇게 될 경우 서로 창작의 주관성을 나눠 가질 수 있다. 작가의 한계를 뛰어넘게 하는 동력, 매체로써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p69

 또, 네트워크가 작품 창작의 플랫폼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공지능은 동료가 될 수 있다. 네트워크는 그 자체로 자기 생산성을 지닌 환경이다. 현재 예술에서 작가, 관객, 인공지능은 네트워크로 연결된다. 이 연결은 각자의 주체성을 부여하지 않으며 서로를 섞고 혼합한다. 이에 따라 네트워크는 재생성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며 '누구라 칭할 수 없는 누군가' 즉, 비인칭적 주체가 탄생한다. 작가, 관객, 인공지능은 모두 동등하게 작업에 참여할 수 있으며, 이미 인공지능은 창작의 주체인 것이다. p75


기억

 기억한다는 건 그 자체로 내가 나일 수 있는 이유다. 역사상 등장한 거의 모든 기술 매체는 기억을 외부에 저장하고 드러내는 외재화(externalization) 작업을 수행한다. 동굴벽화, 붓과 종이, 사진술, 영상, 컴퓨터 메모리가 대표적 예다. 여기까지는 단순한 외재화였다면 인공지능은 새로운 기억을 재구성한다. 여기서 "나의 기억을 학습한 인공지능은 내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원본이 되는 기억을 데이터로 삼아 학습해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내는 인공지능의 모습은 우리가 기억의 개념을 인간 외부로 확장해야 할 시기가 왔음을 시사한다. p81



과연 인간은 과연 특별한 존재인가? 


 언젠가 기계가 완벽하게 인간처럼 말하게 된다고 했을 때, 우린 이제 반대로 인공지능의 언어를 학습하게 될 것이다. 반복되다 보면 대화라는 행위 지표는 인간에게서 멀어질지도 모른다. 이처럼 변화는 인간에게도 일어나고 있다. p83 현대의 기술적 미디어들은 인간의 감각을 능가하며 인간을 정의한다. 이제 인공지능만의 인식 영역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p85 그렇기에 우리는 인공지능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며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한다는 상상보다,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알 수 없는 바로 앞의 미래다. 미디어 아티스트 수파손 수와자나콘(Supasaron Suwajankorn)의 <신서사이징 오바마>는 인공지능의 위험성을 공론화시키기 위해 제작된 가짜 영상이다. p87 인공지능과 예술의 만남이 미래를 유토피아로 이끌지, 디스토피아로 이끌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공지능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몇몇 과학자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것이 우리가 발전하는 기술에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예술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엄청난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주체가 된다고 해도 결국 인공지능을 정의, 해석할 수 있는 주체는 인간이다. 언제나 인간의 상상력은 늘 기술을 앞서 왔다.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예술로 풀어내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 이것이 인공지능 시대의 예술을 바라보는 태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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