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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겸 Nov 10. 2020

[윤희에게(2019)] 어제 네 꿈을 꿨어

"나도 네 꿈을 꿔"

* 영화 <윤희에게>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과 생각을 담았으며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랑 : 깊은 상호 인격적인 애정(deepest interpersonal affection)에서 단순한 즐거움까지를 아울러서 강하며 긍정적으로 경험된 감정적 정신적 상태. 즉 좋아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말한다. (위키백과)

 < '사랑'이란 무엇일까? >

 이런 나의 물음에 큰 물결을 일으킨 영화가 있다. 2019년 개봉한 임대형 감독의 '윤희에게'다. 녹지 않는 고정관념 같은  속에서도 부정할 수 없는 그들의 사랑을 보면서 '아 타인을 사랑한다는 것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정말 아름다운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영화는 생물학적 여성이자 한국인 '윤희'와 또 다른 생물학적 여성인 일본인 '쥰'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쥰은 윤희와 헤어진 이후 줄곧 그녀에게 편지를 써왔었다. 하지만 윤희가 곤란해질까, 감히 보내지는 못하고 차곡차곡 모아만 놨다. 그러다가 쥰과 함께 사는 쥰의 고모가 그 편지를 발견하고 몰래 윤희에게 보낸다. 윤희의 딸 '새봄'이 엄마에게 도착한 이 편지를 보게 된다. 그리고 새봄은 곧 엄마에게 일본 여행을 가자하고, 둘의 만남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 과정에서 새봄은 엄마를 더 이해하게 되고, 엄마는 스스로에게 더 솔직해진다. 결국 윤희와 쥰은 새봄의 노력으로 만난다. 

 두 사람은 만나고, 나란히 걷는다. 그리고 영화는 함께 밥을 먹거나,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보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단지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자체만을 보여 준다. 이후 윤희의 새로운 도전과 쥰에 대한 답장으로 끝이 난다. 언제나 윤희를 그리워하고 잊지 못했던 쥰의 사랑으로 영화가 살아난다. 또 그런 쥰을 잊지 않고 그녀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던 윤희의 진심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출처 : 영화 <윤희에게> 스틸컷 (다음 영화)

 임대형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스스로 질문을 많이 했고,
그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는
영화를 찍고 싶었다.

자기 자신보다
타인을 더 사랑할 수 있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없는
용감한 일이다"


 그 둘은 참 용감했다. 누구보다 솔직했고 당당했다. 그것이 사랑의 모습이 아니라면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싶다. 글 아래에는 이제 인상 깊게 느꼈던 장면, 오브제를 중심으로 몇 가지 글을 나열해보려고 한다.



출처 : THE SCREEN
"눈이 그치긴 할까?"

 눈이 가득 내린 일본 오타루에서 쥰의 고모가 두텁게 쌓인 눈을 치우며 말한다. "눈이 와서 치우면 또 눈이 오고 치우면 또 눈이 오고..." 영화 캐릭터 중 가장 오래 살아온 세대인 고모가 묻는다. 녹는 듯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내린다. 다시 차갑고 두텁게 쌓이는 눈은 현실의 틀과 같다. 틀에 박힌 태도로 일관하는 현실 같다. 

 매 세대마다 끊임없이 차가운 시선과 차별을 깨려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다시 다음 세대가 되면 또 다른 틀이 차별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에 쌓여 간다. 이 차별의 기준은 세대가 지나기까지 지워지기가 참 어렵다. 어떻게 보면 눈이 그칠 것을 묻는 고모의 걱정은 '정말 그치긴 할까?'며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조바심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속에서 이 대사가 몇 번 등장한다. 

"왜 연애 안 하세요?" 

 너무 자연스럽게 우리 옆에 녹아들어 있어 당연한 대사처럼 들렸다. 이 말에는 '너는 외적으로 참 괜찮아 보이고, 이제 슬슬 다른 사람처럼 (또는 나처럼) 이성을 만나서 데이트도 하고 사랑하다가 결혼해. 외롭잖아!'라는 현실이 녹아있는 것 같았다. 윤희와 쥰에게 차례대로 돌아가는 이 질문은 그들이 서로를 더 그리워하고 있음을, 진정 사랑했음을 더욱 알게 해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윤희와 쥰의 태도는 "차라리 외로운 게 낫다. 이 차가운 사회에서 억지로 사랑할 바에는"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는 더욱 현실의 차가운 틀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로막을 수 없다는 걸 말해준다.



"어제 네 꿈을 꿨어", "나도 네 꿈을 꿔"

  환영받을 수 없는 사랑을 하는 윤희와 쥰, 두 사람이 유일하게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바로 '꿈'이다. 편지의 시작과 끝에는 서로를 꿈꾼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렇게 둘은 서로를 그리워했고 그리워한다.

 하지만 현실은 바쁘고 치열하다. 여자가 여자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정신병원까지 가게 되었던 윤희는 자신의 세대에서 윤희가 갖는 사랑은 진심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체념한다. 또 원치 않는 결혼과 이혼, 술만 마시면 찾아오는 전남편, 혼자 아이를 키우며 회사의 급식소에서 일하는 현실은 끔찍하다. 쥰은 일본에서 수의사로서 어느 정도 괜찮게 사는 듯 보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외롭고 공허해 보인다. 자신에게 고백하려는 한 여성 고객에게는 비유적으로 돌려 마음을 드러내지 말라고 말한다. 사회적 시선으로 인한 상처와 상실을 뼈아프게 경험했을 터다. 이런 둘은 오로지 꿈으로만 만난다. 실제 해몽으로 꿈에 나오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당신이라는 존재의 일부"의 상징이라고 한다. 서로의 일부였던 두 사람은 그렇게 꿈에서 조용히 그리워한다.


 이런 꿈을 현실로 잇는 것은 새봄이다. 새봄은 윤희가 대학 가는 대신 선물 받았던 카메라를 고쳐서 쓴다. 망가져 더 이상 새로운 순간을 담을 수 없는, 멈춰버린 윤희의 카메라를, 새봄이 고쳐 새로운 순간들을 다시 촬영한다. 새봄이 사진과 카메라를 통해 엄마를 이해해가는 과정은 청년 세대가 기성세대의 사랑과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가능성과 메시지를 함축한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두꺼운 눈, 그 속에서도 그리운 마음으로 꾸는 꿈속에서 우리는 단어 그대로 '새봄'을 기다린다. 이제 지나갈 자신들의 세대의 이야기를 듣고 포용하는 세대 간의 사랑이 필요한 것이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로마서 12:9 중)
"사랑은 모든 것을 참고, 믿고, 견디는 것" (고린도전서 13: 7-8 중)

 이 영화에는 여러 형태의 사랑이 등장한다. (사랑에 형태를 붙이는 것도 이상하지만...) 윤희와 쥰, 새봄과 새봄의 남자 친구 경수, 엄마 윤희와 딸 새봄, 고모와 조카 쥰, 쥰과 그의 고객 등. 이 모든 사랑은 자연스럽게 영화에 녹아있다. 무엇 하나 어긋나거나 모 나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에서 많은 사회의 시각은 몇몇은 사랑이다, 사랑이 아니다며 선을 긋는다. 그러나 사랑은 나눌 수도, 이름을 붙일 수도 없다. 그들을 성소수자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는 애정결핍이다, 병이다, 저주다 말한다. 그러나 영화에서 보여주듯 그들의 사랑은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다. 사랑을 하기 위해 제삼자의 관심과 보호가 굳이 필요해 보이지도 않는다. (물론 사회적인 보장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나는 이 영화에서 가슴 아린 사랑, 마음 따뜻해지는 사랑, 형용할 수 없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느꼈다. 그리고 이 사랑은 타인에게 전할 수 있을 만큼 내 안에 가득 심겼다. 나와 인연이 닿는 이에게 사랑을 전할 만큼 말이다. 글을 마무리하며,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윤희에게' 닿고 싶은 그리움에 편지를 쓰면서도 윤희가 곤란할까 보내지 않는, 쥰처럼 '그 인연을 마음에 소중하게 품고 또 진정으로 서로를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닐까', '각 세대는 누군가의 사랑을 지켜줄 사명을 갖고 태어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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