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이가겸

4월, 성찰의 글

주저리 주저리... 생각들

by 이가겸
"분명 난 불꽃같은 사람이고, 삶을 사는 게 좋다. 그래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고, 즐겁게 지내고 싶다. 다신 오지 않을 인생인 만큼 즐기고 싶다. 요즘은 내가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 두렵지 않고, 설령 바보 같은 짓을 한다 해도 걱정하지 않는다. 시궁창에 처박혀도, 실제로 그런 때가 많이 있었지만, 나만 즐겁다면 걱정하지 않는다." - 퀸의 멤버 프레디 머큐리의 인터뷰 중


코로나 19가 가져온 시대에서 나는 행복을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삶을 '산다' 자체를 일상에서 지워버렸던 건 아닐까?


오랜만에 써보는 성찰의 글이다. 사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오랜만이다. 항상 쓰다가도 임시저장만 했다. 그 원인은 2가지다.


"내 글이 '선'을 넘지 않을까"라는 두려움


정치와 사회의 썩은 냄새는 우리 속에서 무언의 신뢰를 잃게 했다. 코로나19는 그 현상을 고스란히 배출하게 되는 계기였다. 우리의 처절한 분노, 불안, 아픔은 서로에 대한 혐오, '선'으로 포장된 혐오로 점철되어 보이는 게 아닐까.


법철학자인 마사 누스바움 교수는 배설물같이 자신을 위협할 수 있는 전염이나 오염을 꺼리는 원초적 감정으로서의 혐오 감정은 인간 누구나 가지고 있는데, 문제는 실제로 위험하지 않는데도 자신이 열등하다고 믿는 ‘사람’을 오염물의 일부로 확장하고 투사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자신의 분노나 고통의 원인을 자신 스스로나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타인이라고 생각할 때 이는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출처 : 이승현, "혐오의 시대에서 공존의 시대로" 중 '왜 혐오의 시대가 되었나?, 2020)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 '레이디 액션'에서 특정 콘셉트의 삶 24시간을 을 연출해서 보여주는 콘텐츠가 있다. 매번 어마 무시하게 소름 돋는 고증의 재현에 놀람을 느끼곤 한다. 콘텐츠 중 '잼민이의 삶' ep.1에서 "악플은 자제해주시고 만약에 악플을 다는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습니다", "이건 좀 선 넘은 것 같아요.", "기분 나빴다면 죄송합니다." 등의 대사를 한다.


정말 현실적이라고 마냥 웃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했다. '선'을 넘지는 않았을까 자기 할 말도 하지 못하는, 너무나 조심스러운 초등학생들의 모습이 상상되어서였다. 또, 우리의 감정이 흑화(?) 된 혐오가 어린 나이의 친구들에게도 옮겨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어쩌다 이 나라가, 이렇게 되었을까?


그 누구도 나의 희생과 억울, 분노를 응당 해결해주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래서 글을 쓰기 전에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분노 버튼을 내가 의도하지 않게 건드려버리지는 않을까,,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싶었다.




이런 마음에 더불어 생산적이지 않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느껴져 괴롭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글로 내 마음을 정리하는 행위보다 자기소개서를 한 줄 더 쓰고 책을 더 읽는 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쌓이는 데로 살다 보니 어떻게 배출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순간이 찾아왔다. 마음속 생각, 지식, 느낌을 다시 나의 언어로 담아내는 법을 잊어버릴까 두렵기도 했다. 그래서 이렇게 다시 쓰게 되었다. 이런 다짐은 프레디 머큐리의 인터뷰를 보고 하게됐다.

"분명 난 불꽃같은 사람이고,
삶을 사는 게 좋다.
그래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고,
즐겁게 지내고 싶다.

다신 오지 않을 인생인 만큼
즐기고 싶다.
요즘은 내가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
두렵지 않고,
설령 바보 같은 짓을 한다 해도
걱정하지 않는다.

시궁창에 처박혀도,
실제로 그런 때가 많이 있었지만,
나만 즐겁다면
걱정하지 않는다."

가장 즐거운 삶을 살 수 있는 주도권은 나에게 있다. 너무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도, 나의 생각에 얽매이지도 말고 가볍고 편안하게 글을 써보고 싶다. 글을 쓰는 게 내 인생의 중요한 행복이기 때문이다. 앞선 생각들을 정리하다 보니 생각난 노래가 있다.



한대수 - 행복의 나라로(1974)


https://youtu.be/7AgBcabdplM

장막을 걷어라
너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떠보자
창문을 열어라
춤추는 산들바람을 한 번 또 느껴보자
가벼운 풀밭 위로 나를 걷게 해주세
봄과 새들의 소리 듣고 싶소
울고 웃고 싶소 내 마음을 만져 주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테야


접어드는 초저녁
누워 공상에 들어 생각에 도취했소
벽의 작은 창가로
흘러 드는 산뜻한 노는 아이들 소리
아 나는 살겠소 태양만 비친다면
밤과 하늘과 바람 안에서
비와 천둥의 소리 이겨 춤을 추겠네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테야


고개 숙인 그대여
눈을 떠 봐요 귀도 또 기울이세
아침에 일어나면
자신 찾을 수 없이 밤과 낮 구별없이
고개 들고서 오세 손에 손을 잡고서
청춘과 유혹의 뒷 장 넘기며
광야는 넓어요 하늘은 또 푸르러요
다들 행복의 나라로 갑시다



5월은 장막을 걷고 창문을 열고! 나만의 삶을 새로이 시작하고, 다듬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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