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조>에 대한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시작하기 앞서, 이 텍스트의 내용은 앞 뒤의 상황이 제대로 설명되어 있지 않고 나의 입장에서만 쓰였다. 읽는 사람이 해석해 원하는 내용만 잘 가져갈 거라고 생각한다.
이번 5월, 한 사건 덕에 이제야 가짜 친구, 진짜 친구를 구별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를 정말 생각해주는 사람은 소문이 아니라 나를 믿어준다. 보고싶은 대로 보는게 아니라 나 자체를 보려한다. 또 내 진심을 무시하지 않고, 당당한 방법으로 존중하며 이야기해준다. 주위에 소중한 사람도 많고, 날 대단하게 봐주는 감사한 사람들도 많은데 굳이 나 싫다는 사람들 생각하는 건 시간낭비였다.
나에게 오랜 친구가 있었다. 2명인데, 둘 다 나에게 소중한 친구였다. 그리고 몇일 전 두 친구가 나에 대한 부정적인 거짓 소문을 누군가에게 듣고 나를 이미 나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어제 한 친구(이젠 아니지만) 에게 큰 상처를 받았다. 그 친구는 몇 개의 장문의 카톡을 남겼는데, 나에게 말하길 ‘너를 사랑해라. 인생은 보기 나름이다. 너 인생 제발 너가 잘 살아라’ 는 맥락의 이야기를 했다. 여기서 나의 블로그임을 빌미삼아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난 나를 충분히 사랑하고 있고, 인생은 보기 나름이라서 오해하기 싫어 너에게 연락을 했고, 내 인생 내가 너무나도 잘 살고 있다고.
더불어, 나에게 ‘너에게는 우리가 큰 존재였겠지만’이라는 말을 했다. 내 마음과 진심이 부정당해서인지, 참 오랫동안 아프게 기억에 남을 말이다.
이 외에 다른 길고 긴 카톡 내용에 대해서는 그럴 수 있겠다 싶기도 하다. 하지만 자기 힘든 일이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라고 말하며 나의 상황을 무시하는 발언을 한 건 화가 났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힘든게 있지 않나. 그리고 힘든 상황과 감정은 분리해서 상대와 ‘대화’를 해야하는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난 힘드니까 이랬다 그러니 이해하니? 라는 논리는 근본적으로 대화의 태도가 아니다. 상대를 나쁘게 몰아가고 나는 피해자, 안타까운 사람이 되려는 행동이 아닐까 싶다.
또 이정도로 아득바득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려는 거 보면 애초에 나를 친구, 동등한 타인으로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라도 생각한다.
반면 다른 친구는 나에게 오히려 사과를 했다. 뜬 소문을 믿고 연락도 하지 않았던 것과, 개인적으로 오해가 있던 사건들에 대해 먼저 미안하다 말했다. 그리고 ‘이 친구는 평소에 나를 그래도 존중하고 친구로 생각했었구나’ 라고 느꼈다. 물론 내가 아닌 소문을 믿었다는 사실이 마음을 아프게했지만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 덕에 오래 기억에 남지는 않을 것 같다.
이렇게 텍스트로 쓰고, 읽고 나니 왜 구분을 그간 못했을까 싶지만, 인간관계는 오래될 수록 복잡하지 않은가.
관계를 오랜 시간 이어왔던 만큼 나에게 이 기억은 꽤 오래 남을거다. 몇 일이 지난 지금도 가만히 있으면 그 친구들과 주고받은 최근의 메시지 내용을 곱씹게 된다. 감사하게도 나와 같은 아픔을 겼은 수 많은 사람들의 조언을 이제는 편하게 유튜브, 브런치 등에서 볼 수 있다.
난 내 감정을 공공의 온라인 플랫폼에 정리해서 올리고 싶었고, 누군가 인간관계로 상처받은 이들에게 공감이 되길 바란다.
마무리하며, 이 두 사람과의 관계를 어느정도 정리하면서 이 둘의 모습에서 느끼는 불편감이 곧 나의 모습은 아닌가 돌아보게 되었다. 결국은 나를 돌아보는 성찰이 필요하다. 출구없는 자책을 하지는 말자.
다만 남의 잘못에 대해서는 하나하나 비판하고 미워하면서, 스스로의 잘못에는 관대한 것이 사람이다. 그렇기에 더욱 성찰이 필요하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말이다. 맹자는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갖게 된 ‘마음(心)’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공부에 있어서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잃어버린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쟁과 능력주의가 팽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찰이 부족한 우리 삶의 모습은 결국 이렇게 인간관계 속에서 드러난다. 그렇기에 나를 돌아보고 이 아픔과 고통을 발전의 기반으로 삼아야한다.
영화 <조> 속 박람회에서 한 인공지능이 이야기한다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도 당신의 감정을 정확히 알아차릴 수 있다면, (...) 절대 상처 주지 않을 거예요. 당긴 곁을 떠나지 않고 당신을 사랑하고 이해하도록 설계되었죠. “ 하고 뒤 사창가 장면에서 말한다. “기계성 안에 인간성은 없다고.”
결국 사람은 기계가 아닌 이상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밖에 없고, 생존을 위해 정당화한다. 조와 (남)의 관계 속 상처, 이를 가리기 위해 그 둘이 각자 첫 사랑의 감정을 회복해주는 약과 관계에 중독되는 행위처럼 말이다.
사람과의 관계는 삶의 질을 향상시켜주지만 때로는 많은 실패와 고통의 원인이 된다. 그렇기에 더욱이 나의 기준을 세우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행위가 필요하다.
사람 깊이의 차이는 성찰에서 온다. 사람 관계에 있어, 나도 성숙하지 못하다. 때때로 실수하고 감정적으로 행동한 것을 돌아보고 반성한다. 필요하다면 만나 사과를 하고 값을 치르기위해 용기를 내기도 한다. 속담에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라는 말이 있다. 자기 모습은 모르고 작은 남의 결점을 비판하고 나무란다는 뜻이다.
어제는 함께 일을 하는 친구가 힘내라며 허브티를 보내줬다. 내게 가장 필요한게 뭔지 아는 사람도 감사하지만, 내가 무엇을 필요로하는지 알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느끼는 감사도 참 크다.
나를 돌아보고 나를 정리하고 나면 감사함이 남는다. 앞으로 내가 나아가야할 단계는 어마어마하게 많을 것이다. 다사다난했던 5월이었다. 다가올 6월에는 보다 나의 마음을 잘 유지하는 그런 한 달이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