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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겸 Oct 23. 2021

분노

211023


아침마다 신문에 이재명 대장동 의혹, 화천대유의 키워드가 크게 실려있는 걸 본다. 내가 정치외교학 전공도 아니고, 정치에 깊게 몰입하지도 않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에 대해 알지는 못한다. 그래서 유튜브에 '화천대유 정리' , '대장동 정리' 를 검색해서 보았다. '음 이런 사건들이군' 하면서 댓글과 관련 글들을 찾아보았다. 뉴스도 몇 읽어보았다. 그 텍스트들 속에서 나는 우리 사회의 굉장한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어찌 나라라는게 이리도 국민을 분노하게 만들까?)


 또한 분노를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다만, 우리가  분노를 다루는 법에 대해서 생각해봐야한다고 느꼈다.  분노는 우리를 "친한 사람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소리가 나면 짖어대는 개처럼" 싸우게 만든다. 누군가에게는 정말 위험할  있는 폭팔 직전의 다이너마이트다. 그렇다고 분노는 외면한다고 없어질 감정이 아니다. 언젠가 때가 되면 터지기 때문이고,  여파는 누군가의 마음을 죽이기 때문이다.


 많은 것을 갖게  지금 우리는  자유로운가?
경쟁과 다품, 공정성 시비가 늘어난 만큼 분노할 일은  많아졌다.

우리  자체가 끝나지 않는 트로이아의 전쟁이다. (...)

분노가 훼손된 공정성에 대한 저항의 감정이라면,  감정 자체를 부정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생각 없는 분풀이가 분노  일을  늘린다는  있다.

(어떤 신문의 연세대 철학과 교수님의 
오피니언 )



분노가 잠시 지나간 자리를 채우는  짜증남, 공허함, 무력감이다.  삶에서 나는 자아와 분노스러운 현상에 대한  의견을 확고히 하는게 더욱 중요하다 느낀다. 고삐가 없는 망아지는 이리저리 날뛸 뿐이다. '  사람의 의견이 맞는  같아' 라는 태도는 버려야  것이다. 분노는 ' 의견'으로서 기준으로서 하나의 요소로 승화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코로나 상황이 겹치면서 '코로나 레드' 터졌다. 참고 있던 분노와 불만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에픽테투스(Epictetus) 
"인간들을 괴롭히는 것은 현실이 아니라,
현실에 대해 그들이 품고 있는 의견"
이라고 말한다.


분명 억울하다. 무언가 공정하지 않다는 느낌,  생각은 분노의 물꼬를 튼다. 하지만 그렇다고  같은 현실에 느껴지는 분노로 스스로의 현실을 괴롭힐 수는 없지 않은가. 물론 분노가 시작이 되어 변혁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분노의 혁명가들을 자세히 들춰보면 그들은 분노에 대한 건강한 승화의 과정을 거쳤다. 사회를 괴롭힐 억압의 도구가 아니라, 서로의 연결고리로  공감의 씨앗으로서 분노를 해석했다. "오늘의 분노가 건강한 자극의 촉매제로서 내게 작용될  있도록 하는 그런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특히나 요즘과 같은 분노의 시대에." 라는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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