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임신'이라는 이벤트를 만났을 때
남편이 "임신"이라는 이벤트를 만났을 때 낯선 남자의 향기가 느껴졌다. 낯설다. 남편.
임신을 하고 난 후 우리는 기쁨과 동시에 앞으로의 우리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이야기하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다. '어떻게'라는 단어에는 부모로서의 마음가짐이 가장 컸다.
어떤 상황이 주어지고 '만약 이럴 땐 어떻게 하지?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지?'를 누가 물으면 '나라면 이렇게 이야기할 것 같아. 또는 이렇게 행동할 것 같아.' 등 육아방식이나 태도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경제적인 것들도 말이다.
난임 기간에는 앞서가서 '임신해서 아이를 갖게 되면'이라는 가정을 하며 서로 편하게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아주 가끔 무심코 내뱉은 적은 있을지 몰라도, 지나친 기대는 큰 절망이 될 것 같아서 임신 후의 모습은 머릿속에서 의식적으로 피하곤 했다.
매일을 야근을 하고 주말에도 집에서 일을 하는 남편을 보니 안쓰럽고 희망적인 커리어도 아니고 회사의 미래도 보이지 않아, 몇 년 동안 다른 회사로 이직하기를 권유했다. 남편도 힘들어서 이직해야지 말은 하면서도 신입부터 함께한 회사에 애증이 있어서 그런지 회사가 커가는 과정을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이직을 미루고 미뤘다. 하지만 이제 우리 아이들이 태어나는데, 언제까지 평일 밤과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을 서로 견딜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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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스럽게도 남편은 임신 후 드디어 이직을 결심하고 한 달 후 퇴사하기로 했다. 다니는 회사를 퇴사 후에 공백 없이 바로 다음 회사로 이직하는 게 가장 좋지만 이직 준비할 시간이 몇 년간 좀체 나지 않았었다. 일에 쫓겨 언제나 체력이 방전된 남편의 모습에 때론 화가 나기도 했었다. 나는 퇴사 후 이직 준비 후에 이직하는 것을 적극 지지했다. 당장 몇 개월 쉬면서 월급은 없겠지만 아직 젊은데 평생 들어갈 직장이 없겠나? 며 이때 아니면 못 쉰다로 이직을 응원했다.
퇴사하기 직전까지도 남편은 주말에 일을 했다. 인수인계도 잘하고 싶다고 했다. 아름다운 말로 남편은 책임감이 강했다.
퇴사하자마자, 잠이 많은 남편은 이전과는 다른 하루를 시작했다.
잠을 많이 자는 게 좋다는 사람이 새벽 5시에 일어나 그날 해야 할 일을 정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자칫 늘어질 수 있는 퇴사 후의 시간을 경계하듯 직장에 다닐 때보다 더 시간관리를 철저히 했다.
퇴근 후에 머리 식히는 겸 잠깐씩 하던 모바일 게임도 다 지웠다. 소파에 누워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던 유튜브도 시청 시간이 아깝다고도 했다. 이 시간을 생산적인 일에 시간을 더 쓰고 싶다고 했다. 내가 잘못 들은 건가? 그동안 내가 그렇게 소비하는 시간을 줄이고, 생산적인 일을 하라며 다그칠 땐 귓등으로도 안 듣더니, 남편이 180도 달라졌다. 퇴사하니깐 마음이 달라진 건지, 내가 임신을 해서 달라진 건지.
내가 임신해서 두 아이를 키울 생각을 하니 책임감 강한 남편이 달라진 거겠지.
꼭 나와 아이들을 위해서만이 아닌 남편 스스로 더 멋진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낯설었지만 나는 정말 환영했다. 내가 그동안 생각하던 것과 꿈꾸는 것이 이렇게 잘 맞아떨어진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남편은 내가 듣기 좋은 말만 했다. "내 생각이 바로 그거야!"라며 맞장구칠 때가 많았다.
남편은 내가 임신 초기에 대중교통으로 다니는 걸 걱정하다가 퇴사를 계기로 직접 자동차로 출퇴근을 시켜주었다. 덕분에 더 이상 지하철의 임산부석에 관심을 끄게 되었다. 앉을 수도 없었던 그 자리. 앞으로 앉을 일은 없겠구나.
남편은 평소 업무와 관련된 이외의 책을 읽는 모습을 못 봤는데, 아침에 일어나 책도 많이 읽었다. 내가 너무 놀라워서 사진으로 남겨두었다. 육아를 하려면 체력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밤에는 가까운 공원에 가서 턱걸이 운동을 시작했다.
처음엔 1~2개도 겨우 했는데, 느리지만 하나씩 개수를 늘려갔다. 나도 그를 응원하기 위해 같이 저녁 산책을 했다.
원래 하던 스터디도 '참여'에 목적을 두었다면, 스터디를 계기로 더 해보고 싶은 것을 크게 이루려는 '꿈'을 위한 목적으로 임하는 태도를 바꾸었다.
남편의 모습에 나도 자극을 받았다. 나도 지금보다 더 열심히 살고 싶었다. 마음만은 열정이 하늘을 치솟았다. 몸을 더 부지런히 움직이고 싶었지만 임산부니깐 무리하지 말아야지요 얼마나 자제했는지 모르겠다. 몸이 부담스럽지 않은 정도로 하루를 알차게 보내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하루를 열심히 그리고 감사하며 지내고 있다.
일기를 잘 쓰지 않는 남편은 내가 같이 태교일기를 쓰자는 제안에 처음엔 마지못해 했지만 시작은 했다. 아이패드 한 페이지에 남편과 내가 반쪽씩 일기를 채웠다. 자기 전에 쓰기 시작했는데 나는 점점 하루 이틀 피곤하다는 핑계로 빼먹었는데 이외로 남편은 꼬박꼬박 매일 써나갔다. 내가 못쓰는 날엔 남편이 혼자 한 페이지를 채울 정도로 이러저러한 사소한 이야기를 썼다. 다음날 내가 일기를 쓰려고 남편이 그 전날에 쓴 일기장을 펼치며 읽어보면 재밌기도 했고 이런 생각을 하며 하루를 보냈구나를 새삼 놀라웠다. 남편은 나중에 아이들에게 해줄 이야기를 생각하며 열심히 참여한다고 했다.
우리 쌍둥이에게 나중에 우리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고 보여줘야지. 너무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부부가 함께 쓰는 태교 일기 시작하기를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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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준비 중에 식단을 철저히 건강식으로 하고 있었는데 몸을 사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음식이 잘 해지지 않았다. 남편에게 "나 뭐 먹고 싶어~" 하면 남편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음식을 해주었다. 원래는 같이 하던 빨래며 설거지며 집안일은 모두 남편이 했다. 그럴 때마다 노력하는 모습에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임신을 하면 배가 튼다는데 쌍둥이 배는 얼마나 클까? 하며 한 사진을 보게 되었는데, 만삭인 쌍둥이 엄마의 배가 상상 못 할 크기로 커져 튼살은 물론이고 파란 핏줄이 배에 가득했다. 그 사진을 보니 내 배가 어떻게 될까? 가 걱정되어 튼살크림을 수시로 발랐다. 내가 바를 수 있음에도 남편은 "내가 튼살크림 발라줄까?"라고 물어보면 나는 살짝 나온 배를 내밀었다. 우리 아이들한테 아빠 목소리도 들려주고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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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이전에도 늘 노력했지만 내가 임신을 한 후에 더욱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런 모습을 보니 남편에게 더 잘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하지만 내가 몸이 지칠 때가 많아서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호르몬의 영향인지 핑계인지 모르지만 내가 얼마나 힘든지 투정 부리고 싶은 때가 많았다. 그 투정을 다 받아주며 남편의 하루가 알차게 지나갔다.
아직은 많이 나오지 않은 배를 쓰다듬으며 남편 손을 잡고 산책하는 주말 오후가 너무 행복했다.
남편, 노력하는 그 모습 고마워. 힘이 돼. 그 좋은 모습만 기억할게.
혹시나 출산 후에 달라진다고 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