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도 새 생명은 태어난다.

아이를 볼 수도 안아볼 수도 없었다.

by yololife

이 글은 코로나가 국내에서 1차 확산되던 시기의 글입니다.





Photo by Janko Ferlič on Unsplash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코로나 확산이 점점 심해져서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접할 때마다 앞이 깜깜하다. 병원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조용하다. 수술 날짜는 혈소판 수치가 낮아지고 있어서 예정보다 1주 당겨져서 36주 0일에 진행하기로 했다. 계속된 자궁 수축 억제제 '트랙토실' 투여로 양팔의 혈관 자리에 주사를 꽂지 않은 곳을 찾기가 힘들다. 멍든 부위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혈관 주사 바늘을 교체할 때마다 간호사들은 내게 미안해한다.

"에고, 놓을 곳이 없네요. 한 번에 안 아프게 해 드릴게요. 조금만 참으세요."

"너무 무서워요. 바늘은 자꾸 교체해도 적응이 안되는 걸까요?."라고 말하면서 손에 땀이 난다.


'트랙토실' 기계는 아주 예민하다.



또 새로운 사이클의 트랙토실이 투여되었다. 트랙토실은 정확한 양이 일정한 시간 동안(1분 단위까지 체크한다) 들어가야 한다. 이 특수한 기계는 아주 예민하다. 다른 병원의 기계도 그런지 몰라도, 처음 트랙토실이 제대로 들어가는지 않으면 삑삑 경고 소리가 난다. 많은 간호사들이 돌아가며 여러번 와서 다시 조치를 취해도 다시 삑삑 소리가 난다. 조치가 될 때까지 울리는데, 시끄러운 소리에 옆에 환자들에게 본의아니게 미안하다. 그 외에도 조금 폴대를 잘 못 움직였을 때도 수액이 잘 들어가지 않은지 경고 소리가 나기도 한다.

긴 입원 기간으로 트랙토실 기계 조작은 절대 하지 않지만, 기계에 붙어있는 설명서도 읽고 경고음이 울릴만한 케이스를 다 겪어봐서 이 기계가 보내는 경고음의 종류를 알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보통 산모들은 자궁 수축 억제제로 '라보파'를 맞는지 간호조무사가 이 기계를 조작법을 자세히는 모르는지 달려있는 설명서를 한참 보기도 했다. 그럴 때는 내가 이렇게 하면 된다고 알려준 적도 빈번했다. 나도 입원하면서 트랙토실을 맞는 산모를 본 적은 기억에 없다.


밤에 자다가도 30분마다 깨서 화장실을 간다. 몸도 무거운데 수액 폴대를 끌고 화장실을 왔다 갔다 하는 게 정말 일이다. 출산하고 나면 아기들 돌보느라 잠을 자기 힘들다고 하는데, 출산 전부터 잠을 자는 게 힘들지는 몰랐다. 통잠이 그립다. 다리가 많이 부어서 압박스타킹을 처방받아 낮 동안 신고 있다가 자기 전에 벗으면 신기하게 아침에 일어나면 부기가 빠져있다. 임신 후의 인체의 신비는 끝이 없다.

하루하루 견디는 게 전쟁 같지만 그래도 35주가 지나고 있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지금까지 버틴 나와 쌍둥이 그리고 고생하는 우리 남편과 친정엄마에게 마음속으로 박수를 치고 있다.


혈소판 수치가 계속 떨어져서 수술 전에 수혈을 받아야 한다고 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혈액 수급이 어렵다고 의사가 매일 말한다. 나로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 모르겠다. 이 의사를 믿어도 되는 건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대학병원을 가야 할지 매일 걱정이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경험 많고 유명한 의사가 해결할 수 있으니 지켜보는 거 아닐까?라고 생각을 해 본다.




드디어 우리 쌍둥이를 만나는 날이 왔다. 응급 수술 없이 계획된 수술날까지 버틴 게 대견하다.

주치의는 수술 전날 말을 바꾸어 혈소판 수치가 많이 낮지 않다며 수혈 없이 수술을 진행하자고 했다. 계속 낮아지던 혈소판 수치가 갑자기 좋아졌을 리는 만무하고, 혈소판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고 수술을 못할 정도의 수치는 아니라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안전하게 수혈받고 수술실에 들어갈 텐데 코로나가 정말 야속했다.


수술 당일 4인실에서 1인실 병실로 옮기고 남편과 나는 오랜만에 속삭이는 소리가 아닌 채로 대화할 수가 있었다. 수술 직전에는 혈소판 수치와 당 수치도 떨어져 임신성 당뇨임에도 수액을 당이 있는 것으로 교체해서 준비하고 있었다. 오후 수술 시간이 금방 돌아왔다. 기다리는 동안 혈소판 수치 때문에 수술 중에 혈액이 응고가 안돼서 큰일 나는 게 아닐까? 란 생각이 자꾸 들었다. 하지만 설마 그 정도 일이 발생하겠나? 란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우리 아이들이 니큐(신생아 중환자실)에만 들어가지 않았으면. 제발 건강하기만을 얼마나 바랬는지 모르겠다.




수술실에 도착하자 마취 의사는 차분하고 친절하게 내게 설명을 했다. 수술 전에 의사와 척추 마취라서 아기 낳을 때까진 깨어있고, 낳은 후에는 수면마취를 하기로 했었다. 마취 의사는 수술대에 누워 있는 나의 척추에 마취를 놓았다. 그때까지는 하나도 떨리지 않고 마음이 담담했다. 난임에 난자 채취할 때도 수술대에 누워봤는데 생각하며 마음을 차분하게 가져야지. 하고 생각해도 차가운 수술대에 막상 누우니 점점 몸이 떨려왔다. 마취제가 몸에 퍼지는 듯했지만 꼬집어보면 아팠다. 마취가 완전히 되지 않았다. 마취가 퍼질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직전에 나에게 혹은 아이들에게 만약 문제가 생겨 더 큰 병원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가야 할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에서 코로나 환자가 나왔다는 것을 뉴스 속보로 알았다. 수술대에 누워 의사에게 그 사실을 전달했다. 의사는 문제가 생기면 그 대학병원이 아닌 다른 대학병원으로 가겠다고 했다.


수술실이 너무 추워서 인지 긴장해서 인지 모르겠지만 몸이 점점 더 떨렸고 혈압이 낮아지고 있었다. 의사는 마취가 온전히 되지 않기도 하고 너무 떨어하니 수면마취를 해도 괜찮겠냐고 했다. 비록 아기 낳는 모습은 볼 수 없겠지만, 그 순간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 같아 수면마취를 진행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수술이 끝났는지 갑자기 너무 춥다.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할 정도로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이내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너무 추워요."

"수술실이 추웠어서 추우실 거예요. 조금만 참으면 괜찮아지실 거예요. 그럼 병실로 올라갈게요."


"아기들은요?"

"아기들은 둘 다 건강해요. 산모님. 고생하셨어요."


정신은 없었지만, 안도가 되었다.

더 이상 말을 잇기가 힘들었다. 침대에 누워 병실로 가는 동안에도 눈을 한 번도 못 떴다.

나는 병실에 도착해 병실 침대로 옮겨지고 후처리로 간호사들이 무척 분주했다. 남편과 친정엄마가 덜덜 떨고 있는 내게 고생했다고 아이들도 괜찮다고 하면서 다행히 니큐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하며 나를 안쓰러워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니큐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말에 '일단 내 할 일은 다 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내가 살아오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마음도 괜한 우려와 걱정이었다. 우리 아이들도 훌륭하게 나왔구나.


간호사는 안그래도 아픈 배에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올렸다.

한참 후에, 체온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마취가 풀려오면서 아픔이 이 세상 아픔이 아니었다. 바로 엉덩이 진통제 주사를 놓아서 겨우 이겨냈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극심한 고통이 왔다. 고통이 이제부터 시작되는구나. 무통 주사를 맞고 있는데도 통증이 계속되었다. 무통 주사를 놓아서 이 정도의 아픔인지 아니면 나에게 무통 주사가 소용이 없는 건지 의문일 정도로 강한 통증이 왔다. 무통 주사래서 정말 통증이 없을 줄 알았던 건 오산이었다. 통증이 심해 일정한 시간마다.엉덩이 진통제 주사를 놓으면 그 동안은 잠깐 숨을 쉴 수가 있었다. 하지만 침대에서 몸을 뒤척여야 할 때마다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출산 전에 누군가 제왕절개 수술 후의 통증이 코끼리가 배를 밟고 지나가는 느낌이라고 했는데 '정말 그 무거운 코끼리가 내 배를 지르밟고 갔구나'를 연신 생각했다. 그날 하루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Photo by Gabriel Tovar on Unsplash



코로나라서 모자동실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출산전 코로나 이전에 입원했을때는 아기들을 신생아실에서 데려와 병실로 들어가는 아빠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작은 아기들을 조심히 안고 가는 아빠들의 모습이 어색하지만 행복해보였었다.


지금은 아기는 하루에 한 번만 정해져 있는 시간 동안 신생아실에 가서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5분 동안만 볼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척추 마취제 때문에 밤까지는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서 머리도 들 수 없고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고 오로지 물만 빨대로 조금씩 먹을 수 있었다. 남편과 친정엄마만 저녁 7시에 아이들 면회를 하고 오면서 사진을 찍어왔다. 한 침대에 둘이 눈도 뜨지 못하고 모자를 쓴 채 누워있었다. 둘 다 양수에 불어있었다. 한 아이는 2kg가 되지 않았고, 다른 아이는 2kg가 겨우 넘은 채 태어났다. 그렇게 두 작은 아이들이 쎄근 쎄근 잠을 자는 듯 두 눈을 감고 있었다. 그 작은 몸으로 세상에 적응하고 있는 사실에 너무 안쓰러웠다.

그래도 몸 이상 없이 니큐에 들어가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그것만으로 감사하고 또 감사해했다.


출산하는 날 아이를 무사히 낳았지만 볼수도 안아볼 수 없다.

나는 언제쯤 아기들을 직접 볼 수 있는 걸까? 아기를 낳았지만, 아기를 본 적도 없고 안아보지도 못해서 내가 엄마가 된 건지 실감이 되지 않았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아기를 품에 안아볼 수 있을 텐데, 퇴원할 때까지는 안아 볼 수 없고 만져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속상했다. 내일은 아파도 움직일 수 있다면 움직여도 되니, 저녁 7시에 있을 아이들 면회시간에 다른 층에 있는 신생아실까지 가는 큰 숙제가 생겼다. 과연 나는 내일이면 아이들을 볼 수 있을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조산기 마지막 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