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코로나가 국내에서 1차 확산되던 시기의 글입니다.
내가 엄마가 된 건가?
엄마가 된 지 하루가 지났는데도 아이들이 건강한데도 안아보지 못한 산모가 어디 있을까?
분명 풍선처럼 커졌던 배는 꺼졌는데, 아직 아이들을 보지도 못해서 그런지 출산했다는 사실이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몸을 움직일 때마다 출산의 고통을 온몸으로 실감하고 있다.
어젯밤부터 몸을 움직여도 된다고 해서 오른쪽으로 돌아눕고, 왼쪽으로 돌아눕다가 눈물이 났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온 장기가 한쪽으로 쏠리는 느낌이다. 내 안의 장기가 이렇게 무거웠나 싶을 정도로 배안의 무언가가 묵직하다. 출산 직전까지의 몸무게는 겨우 10kg가 쪘다. 쌍둥이를 임신했으니 양수의 양의 무게나 두 태아의 무게를 뺀다고 하더라도 실제 내 몸무게는 거의 늘지 않았다. 아무리 먹어도 나의 볼살은 점점 사라져 갔었다.
수술 후 소변줄을 제거하자마자 간호사는 나에게 병실에서 걸어 나와 간호사실 앞에 체중계에 몸무게를 재보라는 숙제를 주었다. 수술 후 누워있는 것만으로도 이 세상 통증을 다 겪는 것 같은데 걸어서 침대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손에 땀이 난다.
코로나로 보호자는 한 명만 상주가 가능해서, 남편은 쌍둥이들이 집에 왔을 때 출산 휴가를 내기로 해서 병원에 있는 동안은 출근을 하고 친정 엄마가 퇴원까지 내 옆자리를 지키기로 했다.
엄마는 한 걸음을 걸을 때마다 악! 소리를 내는 나를 안타까워하셨다. '남편이 이 모습을 봤어야 하는데. 아내의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투정 부리고 싶었다.' 수술 후 몇 걸음을 걸으니 머리가 핑 돌았다. 엄마의 부축이 없었다면 쓰려졌을지도 모르겠다. 침대에서 내려오고 통증으로 한 발짝도 떼지 못하는데 약 3분은 소요가 됐다. 평소라면 1분이면 걸어갈 거리를, 10분은 더 걸린 것 같다. 한발 한발 내 딛는 걸음이 나무늘보 보다도 느렸을 것이다. 많이 걸을수록 회복이 빠르다는 말을 귀에 박히도록 들어왔기에 이를 악물고 발걸음을 옮겼다. 드디어 도착한 체중계 앞에서 얼마나 체중이 빠졌는지 설렘을 안고 올라섰다. 출산 직전과 비교해서 4kg가 빠졌다. 두 아이가 합쳐서 4kg인데, 양수의 무게는 어디로 간 거지? 먹은 것도 없는데.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몸무게 걱정을 하다니 이제 정신이 돌아왔나 보다.
아이들의 면회 시간은 저녁 6시부터 8시 사이에 신생아실로 가야 한다. 신생아실로 가려면 방금 온 거리의 4배는 걸어야 한다. 엘리베이터도 타야 한다. 과연 갈 수 있을까? 방금 체중계까지 오는 고통을 생각하면 오늘은 포기하고 다음날 갈까? 란 생각이 솟았다. 하지만 내가 처음으로 낳은 아이들을 보고 싶은데 저녁 6시까지 기다리는 것도 곤욕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겠지만 엄마 얼굴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이들을 생각하니 애틋함이 피어올랐다. '내 아기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엄마가 보러 가지 않으면 우리 아기들이 얼마나 슬플까?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았다. 엄마가 저녁에 갈게. 조금만 기다려 우리 아기들아.'
훗배앓이로 하루 종일 끙끙 앓았다. 무통 주사가 무통이 아니었다는 왠지 모를 배신감까지 느껴졌다. 진통제 엉덩이 주사를 놓으면 조금은 괜찮아졌다. 오후에는 '걸어야 하는데..'만 생각하고 종일 몸을 도무지 움직이지 못했다.
저녁시간이 다가올수록 긴장이 됐다. 내가 과연 신생아실까지 잘 걸어서 갈 수 있을까? 병원의 모든 산모들이 모이는 데 코로나로 괜찮을까? 가 걱정이 되었다.
면회 시간 30분 전에 침대를 벗어났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엄마와 함께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겨 쌍둥이에게 향했다. 면회 시간 전 10분 전쯤 도착했는데 이미 대기 중인 산모들과 그녀들의 남편들이 많았다. 서둘러서 왔는데도 늦었구나 싶었다. 신생아실 앞의 복도에는 어느샌가 사람들이 북적였다. 자리가 한자리 남아있어서 겨우 앉았다. 자연 분만한 산모들은 도넛 방석에 앉아있었다. 의자에 앉아 산모들을 관찰했다.
나처럼 온갖 인상을 쓰며 나무늘보처럼 걷는 산모들도 있었지만, 아무렇지 않게 씩씩하게 걷는 산모도 있었다.
분명 저 사람은 자연분만이겠지? 지금 이 순간 가장 부러운 사람은 바로 저 사람이었다.
Photo by Jonathan Borba on Unsplash
한 번에 두 명의 산모가 면회 입장이 되었고 5분이 걸려서 대기 시간이 꽤 길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고 드디어 두 명의 아기를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유리창 안에서는 간호사가 아이들의 발에 묶여있는 이름표를 보여주어 내 아기들임을 확인시켜주었다. 한 침대 안에서 두 아기들은 눈을 감고 있었다. 흰 모자를 쓰고 배냇저고리를 입고 있었다. 양수에 불어서인지 얼굴이 부었다. 옆에 면회 중인 아기와 비교하니 우리 쌍둥이들이 아주 작았다. 옆에 면회 중인 아기 아빠는 우리 아이가 쌍둥이라며 신기해하고 축하해주었다. 힘들게 나에게 온 아이들은 아직 더 힘이 필요해 보였다. 그냥 잠자는 모습을 쳐다보았는데 5분의 시간은 야속하게 빨리 지나갔다.
출산 다음날의 아기들과 5분의 만남이라니. 손 한번 잡아보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니. 야속한 코로나 때문이다.
"그래도 니큐(신생아 중환자실)에 안 들어간 게 얼마나 다행이야. 항상 감사해야지. 저렇게 작게 태어났는데 아무 이상 없다니 난 행운아야."
병실로 돌아오는 길은 분명 힘들었겠지만, 잠자던 아기들을 생각하니 진통제를 맞은 것처럼 통증을 까맣게 잊었다. 퇴근한 남편과 통화 중에 아이들을 보고 왔다고 했더니, 어머니의 힘은 대단하다고 놀라워했다. 보통의 나라면 그 통증에 거기까지 갈 수 없었을 텐데, 너희들의 엄마가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나 보다.
너희들은 기억하지 못할 오늘. 나는 영원히 유리창 너머의 너희들을 잊지 못할 것 같아.
그 유리창 앞에서 너희들을 정성껏 보살피겠다는 약속 꼭 지킬게.
아직 부족한 엄마겠지만, 너희들이 자라는 만큼 나도 엄마로 잘 자랄게.
우리 잘해보자. 쌍둥이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