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유를 하기로 결심을 했다.

by yololife

생후 50일이 지나도 여전히 하루 스케줄은 빡빡하다. 짧으면 2시간 길어도 2시간 반마다 아이들은 배고파한다. 몸은 회복이 되어가고 있는지 모를 만큼 몸 여기저기가 아프다. 여전히 출산의 후유증은 진행 중인가 보다. 아이들에게 모유를 직접 먹이는 것은 계속 시도했지만, 결국은 잘 되지 않았다.




조리원에 들어가고 2호 아기에게 직접 모유 수유하는 것은 성공은 했지만, 젖몸살 후 주말이 되니 온몸에 열이 나고 더웠다 추웠다를 반복했다. 처음엔 젖몸살인가? 했는데 배도 아파왔다. 그날 조리원에서 연어 샐러드가 두 점 나왔길래 그동안 꾹 참아왔었던 생선초밥이 너무 먹고 싶었다. 남편에게 생선초밥 1인분만 포장해와서 딱 세 점만 먹겠다고 했다. 남편은 말렸지만 연어샐러드도 먹었고, 조금만 먹을 건데 괜찮지 않을까? 란 생각에 사다 달라고 했다. 약속대로 딱 세 점 먹었는데, 그게 탈이 났다. 저녁에 먹은 생선초밥을 먹고 2시간 후부터 밤새도록 설사를 했다. 기력이 안 그래도 없고 제왕절개 한 배도 아파서 걷기도 힘든데, 화장실까지 들락날락했다.

그 와중에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젖몸살이라, 새벽에도 유축을 했다. 온몸의 기력이 다했다. 거기에 속도 꽉 막혀 체한 느낌까지 들었다. 다음날 아침밥은 미역국만 겨우 먹고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점심도 굶고 저녁까지 굶어봐도 여전히 체기가 있고, 무언가 입에 들어가면 화장실로 직행했다. 주말이라서 병원도 문을 열지 않아서, 약국에서 겨우 약을 사 먹었다. 생선초밥 때문에 확실히 아픈 건데도 마음 한편에 괜스레 '혹시나 코로나이면 어쩌지?' 란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이 시기에는 아픈 것도 정말이지 마음까지 불편하다.


조리원 원장 선생님께 이야기하니, 산후 조리기간이라 열이 심하게 날 수도 있고 설사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다른 산모들은 밥 먹고 아픈 사람이 없는 것으로 봐서는 조리원 음식은 문제없는 것 같다고 했다. 주방에서 일하시는 직원 아주머니는 산모가 안 먹으면 안 된다고 간장과 쌀미음을 급히 가져다주셨다. 음식 준비하는 것만 해도 바쁠 텐데 미음까지 끓여주셔서 감사했다.


몸을 회복해야 할 기간에도 아프다니. 온몸에 수분이 빠져나가고 먹은 것도 없고 이렇게 컨디션이 안 좋으면 모유수유를 직접 안 하는 게 좋다고 원장님이 말했다. 내가 생각해도 모유수유까지 할 기력이 없었다. 병원에 가기 전까지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유축한 모유도 먹이지 않았다. 다음날, 월요일이 되자 다행히 같은 건물에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의사는 위염과 장염이 같이 온 것 같다고 약을 처방해주었다. 약을 먹으면 모유수유를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 출산 후 초유가 아이들에게 그렇게 좋다던데 초유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일단 나는 약은 처방받고 조금 더 참아보고 더 악화되면 약을 먹기로 했다.


약을 먹지 않아서 인지 3~4일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일주일 가까이 아팠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행히도 점점 좋아졌지만 조리원에서의 대부분 시간 동안 나는 그렇게 아프게 됐다. 그리고 퇴소 기간이 다가왔다. 조리원에서 모유수유를 많이 해봐야 늘 텐데, 마음속으로 조바심이 났다.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젖을 물리면 되지'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나도 어떤 자세로 젖을 물려야 아이들이 편할지 이리저리 땀을 흘렸다. 겨우 물리면 아이들은 생각보다 빨 힘이 없었다.

그 작은 젖병의 20~30ml도 힘겹게 먹었던 터라, 불편한 엄마의 직수로 배를 채우기엔 역부족이었는지 자꾸 울었다. 그렇게 계속 시도했지만 애들을 너무 괴롭힌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너무 배고파서 우는데 모유수유를 하겠다는 건 나의 욕심인 걸까?'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들을 보고 나도 진땀과 눈물이 났다.


그 후로 계속 연습했지만 아이들은 결국 매번 울었다. '내가 아팠던 시간 동안 우리 아이들은 이미 젖병에 익숙해져 버린 걸까?'

조리원에서 돌아와 집에서도 친정 엄마의 도움을 받아 이렇게 저렇게 모유수유를 시도했지만, 우리 아이들은 이미 나를 거부했다. 결국 나는 직수는 포기하고 세 시간마다 유축기를 이용해 젖병에 유축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매일 유축기를 통해 유축을 하니, 나는 늘 젖몸살로 끙끙 앓았다. 매일 가슴이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뭉쳤다. 집에 신생아가 둘이나 있는데 코로나라서 출장으로 젖몸살 마사지하는 분을 부르기에도 겁이 나고 내가 방문을 할 시간은 더욱 없었다. 너무 아파서 직접 할 수밖에 없었다. 조리원에서 받아본 경험과 유튜브의 셀프 젖몸살 마사지 영상을 보고 때로는 스스로, 손가락 마디마디가 다 아파서 때로는 친정엄마에게 부탁을 했다. 친정엄마는 나와 동생을 키울 때 일 년이 넘도록 모유수유를 해서 젖몸살을 모르고 살았다고 했다. 그런 친정 엄마가 시간이 지날수록 젖몸살 마사지를 베테랑처럼 해내고 있었다.

아기들의 수유시간이 2시간 텀이라 수유하고 아이들 재우고 유축을 하고 시간이 그래도 쌍둥이 둘이 같이 자는 시간이 10~20분이라도 있어야 마사지도 할 수 있지 대부분은 못했다. 하루에 한 번이라도 하면 다행이었다.


생후 80일이 될 때까지 유축을 계속하면서 젖몸살로 끙끙 앓으니 단유를 할까를 고민했다. 그래도 모유를 조금이라도 먹이고 싶은데, 몸이 도무지 힘이 들었다. 하루 종일 친정 엄마와 쌍둥이를 케어하느라 내 몸 산후조리를 할 시간은 없고 아프기까지 하니 체력을 다 소진했다. 친정 엄마는 이렇게 힘든데 단유 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나는 꽤 오랜 시간을 고민을 했다.

단유를 하고 후회하면 어쩌지? 그때는 이미 늦는데.

내 선택이 과연 맞는 걸까?

내가 덜 아프자고 단유를 하는 게 맞는 걸까?

쌍둥이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결국은 백일이 되기 전에 단유를 하기로 결심을 했다.


- 다음이야기는 다음편에서 계속 됩니다.






커버 사진 출처 : Photo by Zach Lucer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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