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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lolife Jan 16. 2021

금쪽같은 내 세끼

육아 중에도 내 밥그릇 잘 챙겨 먹기

출산을 한 후 '산후조리를 해야 하는 산모'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 나는 친정 엄마의 요리 덕택에 따뜻한 미역국과 임신 중 임신성 당뇨 때문에 맘껏 먹지 못했던 음식들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모유수유 중엔 여전히 먹으면 안 되는 음식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임신 때보다는 자유롭다는 생각에 음식을 먹는 게 즐거웠다. 내가 뭘 좋아하고, 또 좋다는 음식을 잘 아는 엄마의 요리 맛에 힘든 육아 중에도 식탁에 앉을 때면 절로 힐링이 되었다. 그중에 으뜸은 내가 좋아하는 팥칼국수였다. 식탁에 앉아 팥칼국수를 보면서 돌고래 소리를 냈던 것 같다.




육아가 점점 강도도 심해져가고 아이들도 점점 무거워져 가고 잠도 자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남편과 친정엄마 내가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남편은 아침에 출근하고 퇴근하고 집에 오면 밤 8시가 넘고, 하루 종일 쌍둥이 둘을 집에서 엄마와 내가 고군분투 육아하고 저녁때만 되면 울기 시작하는 아기 2호로 우리는 저녁밥을 제때 못 먹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그래도 엄마가 돼서 육아를 하는 건 괜찮은데, 엄마는 노년에 손주들 본다고 또 무슨 고생이신가? 하는 생각 때문에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 내 몸은 여전히 임신 전으로 돌아가느라 여기저기 아우성을 치고 내가 가능한 한 이것저것 하려고 하지만 엄마는 그런 나를 항상 쉬라고 말렸다. 엄마도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하셨다. 집안일을 도맡아 하시고, 쌍둥이들을 달래고 재우면서 안고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자 어깨며 목이며 허리며 손목이며 매일 밤 파스를 붙이셨다. 말로 내색은 안 하셔서 매일 아침 내가 일어나면 아픈 데 없냐고 물어보며 엄마가 신경 쓰이지만 내가 더 할 수 없음에 안타까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피로는 점점 쌓이고, 있는 반찬에 밥 먹을 시간도 없었다. 쌍둥이 둘이 그나마 자는 시간이 맞으면 그동안 못했던 집안일을 하고, 겨우 밥상을 차리고 밥을 먹으려고 수저를 들면 깨서 아이들이 울기 시작했다. 쌍둥이 둘을 겨우 수유하고 기저귀 갈고 흔들의자에 눕히고 발가락으로 까딱하면서 식탁에 앉아 식은 국과 밥을 먹는 적이 많았다. 생존으로 먹는 끼니라는 생각에 나는 슬픈 적이 많았다. 특히 늦은 저녁에 밥을 먹고 소화도 되지 않았는데 자고 아침에 더부룩한 적이 많아 악순환이 되자 더 속이 상했다. 무엇보다 제때 끼니를 먹지 못하는 엄마의 건강이 걱정되었다.




아이들이 5개월쯤 되니 내 몸이 어느 정도는 회복이 되고, 수유 횟수도 조금은 줄어들고 아이들의 생활 패턴이 점점 생기기 시작했다. 예측 가능한 울음소리에 육아가 점점 숨이 트여오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집에서 엄마와 시간을 보내는 나는 매일 똑같은 일상에서 작은 행복을 찾고 싶었다. 집에서 먹는 낙이라도 없으면 무슨 재미로 육아를 하냐며 건강하지만 대충 먹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남편과 단둘이 살 때보다는 엄마가 해주는 요리로 훨씬 잘 먹었지만, 힘든 육아에서 엄마 혼자 음식을 하시는 게 마음이 불편했다. 엄마와 함께 있을 때 요리 실력을 더 늘려보기로 했다. 한 끼는 가볍게 건강하게 샐러드로 먹고, 한 끼는 엄마가 하고 다른 한 끼는 엄마가 입으로 내게 요리를 가르쳐 주고 내가 직접 요리를 하면서 늘려가기로 했다. 육아를 하는 도중에 처음에 내가 요리하는 건 시간이 걸리겠지만, 조금만 투자하면 언젠가는 내가 엄마를 위해 그리고 우리 가족을 위한 요리를 뚝딱 할 수 있는 요리가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육아를 하면서 요리를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미 조리되어 있는 음식을 먹을 시간도 없는데 요리할 시간이 있을까? 에 의문이 들었지만,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아이들이 수유 중에도, 기저귀를 갈면서 오늘은 뭐 먹을까? 그 음식은 어떻게 하면 되는지 엄마와 요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제 때 밥을 먹을 수 있을지 이리저리 머리도 자꾸 굴렸다. 아기들의 타이밍을 최대한 잘 조절해서 우리의 끼니도 잘 맞춰 먹으려고 노력하고 이 방법 저 방법을 동원했다.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많은 시행착오 끝에 점차 노하우가 생기고 있다.


육아로만 하루가 채워진 나와 엄마의 일상에 요리가 더해지니 마음이 조금씩 더 풍요로워졌다. 이전에는 나물들의 제철까지는 잘 몰랐는데, 이 정도 가격이면 싸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재료로 요리를 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엄마는 내가 채 써는 것도 답답해하신 적이 많았지만, 나는 못 썬다고 안 썰면 언제 느냐며 자꾸 썰려고 노력했다.


시간이 흘러 점점 나물들의 요리도 자신이 생겼고 시간이 생명이기 때문에 아주 간단하고 빠르게 해내는 요리들도 습득을 하게 되었다. 쌍둥이들의 컨디션이 좋을 때면 엄마가 요리를 할 때 옆에서 내가 다른 요리를 하면서 밥상이 조금 더 다채로워지기도 한다. 그렇게 잘 차려진 밥상에 앉아 엄마와 밥을 먹을 때면 이런게 행복이지, 행복이 별건가 싶다.





금쪽같은 내 새끼들을 키우느라고 소홀할 수밖에 없었던 나의 끼니 세끼들을 챙기고 나니, 우울했던 마음이 조금씩 해소가 되는 것 같다. 힘들지만 요리 실력이 느는 것 같아 무기력할 수 있는 집안에서의 육아 생활에 활력을 더한다. 살면서 먹는 거에 크게 관심도 없었고 요리를 그리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못했던 내가 음식을 소중하게 생각할 줄은 몰랐다. 당연한 것 같던 밥상이 당연해지지 않게 되는 상황에 나의 기분이 좌지우지 될 줄은 몰랐다. 음식이 주는 행복감이 얼마나 큰 지 그때야 깨달았다. 소중한 나의 세끼도 아주 중요하다.


지금도 밥도  먹고 육아를 하고 있을 누군가의 엄마, 아빠도 끼니를 최대한  챙겨 먹었으면 좋겠다. 힘든 육아 중에도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이겨내었으면 좋겠다. 금쪽같은  새끼들도 중요하지만 나의  끼도 금쪽같음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커버 사진 출처 : Photo by Jeena Jeong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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