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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lolife Jan 15. 2021

빛의 속도로 네가 떨어졌다.

아기 1호가 뒤집기에 첫 성공을 한 후 3일째 되는 날이었다. 화창한 토요일 오후지만, 평일과 다른 게 있다면 친정 엄마 대신 남편이 육아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날따라 애들 돌보는 게 조금은 더 노하우가 생기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 조금 더 나아지려나?' 생각이 들었다. 아직까지 수유를 한 아이당 8~9번 정도 하는데도, 그런 묘한 느낌이 드는 날이었다. 조금 마음이 느슨해졌던 걸까?


아기 1호는 하루 종일 뒤집기를 하려고 애를 쓴다. 특히 밥을 먹고 나면 힘이 나는지 쉬지도 않고 계속 시도한다. 한참 열심히 운동을 해서인지, 잠깐 남편이 재워볼까? 하고 살짝 안아서 방으로 가는 길에 잠에 쏙 빠져들었다. 남편은 안자마자 자길래 방으로 들어가 아기 침대에 눕히고 침대 가드를 올리지 않은 상태에서 아기 방 정리 중이었던 내쪽을 보며 잠깐 뒤를 돈 순간 갑자기 자고 있던 아기가 몸을 뒤집으면서 아기 침대에서 땅으로 떨어졌다.


쿵!


순간 너무 당황하면 아무 생각이 안 난다고 하던가? 나는 '이게 무슨 상황이지?' 싶었는데 남편은 재빠르게 떨어진 아이를 들어 올리고 안고 아기는 대성통곡을 했다. 잘 자던 아기가 왜 일어나서 뒤집었는지 정신이 얼떨떨했다. 아기의 오른쪽 머리 위쪽에 핏방울이 맺혔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고,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평소에는 아기 침대 가드를 바로 올리는 데 그날따라 왜 바로 안 올렸을까? 정말 말로만 듣던 눈 깜짝할 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기를 안고 "별일 없을 거야"라고 아기에게 이야기를 하는 건지, 나 스스로에게 이야기를 하는 건지 모를 정도로 말하고 또 말했다. 그 시간이 토요일 오후 3시쯤이었다. 이 시간에 진료 시간인 소아과가 있을까? 이야기를 하며 급히 병원을 찾아보니 차로 10분 거리에 5시까지 하는 소아과가 다행히 있었다.


목이 쉬도록 우는 아기는 한참이 지나서야 진정이 되었다. 쌍둥이를 데리고 친정엄마 없이 남편과 둘이서 차를 타고 병원에 가본 적은 없는데 걱정이었다. 아기 2호는 자고 있다가 갑자기 봉변을 당했다. 잘 자고 있었는데 옷을 갈아입히고 모두 함께 차에 탔다. 차를 타고 가면서 우리 부부는 말이 없었다. 스스로를 자책 중이거나 '괜찮을 거야, 별일 없을 거야.'를 마음속에 외치고 있었을 것이다. 한참의 침묵 속에 나는 "정말,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라고 했고 남편은 말이 없었다.


진료가 거의 끝나는 병원에 도착하니 사람이 없어 바로 진료를 볼 수가 있었다. 의사는 여러 군데를 살펴보고 아직 대천문이 닫히지 않은 시기라, 그곳이 다치면 큰일인데 다행히 그쪽이 아니라고 했다. 단순 찰과상 같아 보이고 연고만 처방을 받았다. 하지만 24시간 더 주의 깊게, 48시간 동안 잘 지켜보라고 했다. 갑자기 울컥 토를 한다던지 잘 놀지 못한다던지 다시 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또 쓸어내렸다. "아, 자식이 다치면 이렇게 마음이 두근거리는 게 부모의 심정이구나.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렬했다." 이제 부모라는 타이틀에 조금 발을 디딘 것 같았는데, 아직 시작도 안 했구나를 절실히 깨달았다.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이 온몸을 휘감았다. 집에 겨우 돌아온 우리는 반성을 했다. 아기들을 정말 1분 1초 잘 봤다고 생각했는데, 나태해진 마음을 혼내듯 사고가 일어났다.


말이 없던 남편은 이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를 이야기했다. 스스로 자책하고 있었을까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큰 일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엄마, 아빠! 긴장하세요.'라고 아기 1호가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우리 긴장 좀 하자!"


집에 돌아온 아기 1호는 먹는 것도 그 전과 똑같이 잘 먹고 잠도 잘 잔다. 정말 다행이다. 병원에서 돌아온 우리 부부는 몸과 마음이 기진맥진했지만 긴장을 늦추지 않아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앞으로 너희들이 자라면서 얼마나 자주 아플 텐데, 이렇게 마음 아파서 어쩌나. 마음을 단단히 붙잡아겠구나'

너희들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역할인데, 그 역할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 오늘이 아쉽다.

하지만, 잘 이겨내자. 늘 그렇듯이.




별일 없을 거야라고 외쳤던 수많은 외침에 다행히 48시간이 지나고 며칠이 지나도 평소와 같았다.

오른쪽 머리의 상처는 며칠 만에 다 나았다. 아기들의 재생력은 놀랍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다는 듯 상처도 우리의 마음 졸임도 지나갔다.






커버 사진 출처 : Photo by Osman Ran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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