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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lolife Jan 31. 2021

그 힘든 일을 해내야 합니다.


친정 엄마가 없는 3주. 남편과 나는 과연 해낼 수 있을까?


3주 동안 친정 엄마 집 이사를 위해 지방의 집으로 가시는 동안, 재택근무하는 남편과 나 그리고 아이들이 남게 된다. 20년 가까이 살던 집을 이사하는 것이라서 정리할 것이 많기도 하고, 휴가 겸 엄마가 잠시 자리를 비우기로 했다. 그래도 집에서 내가 오로지 혼자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힘들겠지만 해내 보기로 했다. 처음으로 장기간 친정 엄마 없이 남편과 내가 해낼 수 있을지가 가장 의문이었지만 호기롭게 아무 걱정하지 말라며 엄마를 터미널에 모셔다 드렸다.

그리고 그 날 바로 후회를 했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니 최선을 다할 수밖에. 그 힘든 일을 해내야 한다.




아이들 둘을 혼자 이유식을 먹이고, 씻기고 놀아주고 재우는데 온 기력이 다했다. 엄마가 없어서 그런지 평소보다 손길을 덜 받아서 그런지 아이들이 특히 더 칭얼거렸다. 한 명을 안으면 다른 한 명이 칭얼거려서 허리가 너무 아파왔다. 남편도 재택이라서 물리적으로 도와줄 수 있었지만, 일의 흐름이 끊기는 걸 원치 않아 최대한 내 혼자의 힘으로 해내려고 했다. 하지만 이따금씩 밀려오는 짜증을 남편에게 풀기도 했다. 뒤돌면 왜 그랬을까? 후회했지만 그래도 남편이 화내지 않고 잘 받아줘서 고마웠다.


처음 일주일이 가장 힘들었다. 둘이서 하던 일을 혼자서 해내려고 하니 역부족이었다. 아기들 이유식을 먹인 후 집안 청소를 해야 하는데, 할머니가 안 계시니 엄마 껌딱지가 된 아이들은 내가 잠깐만 눈에 보이지 않아도 둘이 서로 엉엉 울었다. 애들이 자면 깰까 봐 청소를 못하고 깨어있으면 청소할 기회를 안 주니 청소를 못했다. 설거지와 아이들 젖병 설거지도 점점 쌓여갔다. 눈 앞에 집안일이 산더미인데, 아이들과 놀아줘야 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아이들이 자는 시간 동안 다 할 수 있을까? 란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엄마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절로 났다. 그리고 엄마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집안일을 엄마가 많이 하고 그 시간에 애들을 주로 본 나는 시간이 없다며 조금만 더 내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동안 내가 편히 산 거구 나를 깨달았다.

힘이 들수록 반성을 많이 했다. 역시 소중한 사람은 잠시 떨어져 있어 봐야 더 소중한 지를 알게 되는 것 같다.





독박 육아를 하면서 제일 걱정했던 것은 이유식을 동시에 주는 것이었다. 젖병은 아이들이 들고 먹을 수가 있지만, 이유식은 떠먹여 줘야 하는데 아이들이 한 명씩 먹인다고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에 두 아이를 앉히고 한입씩 돌아가며 이유식을 처음 주었다. '이게 통할까?' 싶었지만 아이들은 생각보다 서로가 먹는 시간을 잘 기다려주었다. 물론 이유식을 중간 먹을 때까지 만 이었다. 그 이후에는 집중력이 흐트러져 의자를 벗어나려고 하고 몸을 베베 꼬고 칭얼거렸다. 겨우 어찌어찌해서 이유식을 먹였지만, 평소보다 더 많이 흘렸지만 '동시에 두 아이 이유식 먹이기'라는 새로운 쌍둥이 엄마의 기술이 늘었다. 


이유식 후 아이들을 차례로 씻기니 손목이 후들후들했다. 겨우 옷을 갈아입히니 드디어 1라운드가 끝났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것도 잠시 아이들은 잘 노는 듯싶었지만, 한 아이가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한 아이를 안아주니 다른 아이가 칭얼거렸다. 돌아가며 안아주다 보니 허리가 아팠다. 아이들이 동시에 너무 크게 울 때는 어쩔 수 없이 남편이 한 아이를 안았다. 남편이 일에 방해가 될까 봐 마음이 불편했다. 나도 재택을 해보아서, 재택이라고 일의 양은 달라지는 것이 아니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일정은 맞추는 건 변함이 없기 때문에 남편이 똑같이 출근을 했다고 생각했다. 남편도 내색은 하지 않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 


이 놀이를 해보아도, 저 놀이를 해보아도 아이들은 울었다. 뭐가 부족한 걸까? 뭐가 불편한 걸까?

할머니가 안 보여서 우는 걸까? 우는 아이를 달래며 나도 잠시 울고 싶었다.

여러 가지 새로운 놀이를 시도해 보았다. 주방기구들을 보여주기도 하고 소리를 내보기도 했다. 새로운 것에 아이들은 흥미를 가졌지만 무엇보다 뒤처리가 많은 놀이에 아이들은 특히 재미를 느꼈다. 그래, 너희만 칭얼거리지만 앉는다면 뭐든 다해줄게.라고 생각하며 치우면서 무릎 관절, 골반이 아파왔다. 


그다음 걱정했던 것은 두 명을 재우는 일이었다. 각자의 방 침대에서 따로 재우기 때문에 한 명이 졸려하면 다른 한 명을 케어하기가 쉽지 않았다. 한 방에서 같이 있기에는 잠이 오지 않는 아이가 잠이 오는 아이를 방해했다. 잠이 오는 아이는 안고 아직 놀고 싶어 하는 아이는 바닥에서 놀다가 이내 안아달라고 칭얼거렸다. 재우는 것은 혼자서 해 낼 방법이 없었다. 결국 쌍둥이 아빠의 근무 시간에 맞춰 아이들의 낮잠시간을 재우기로 했다.

남편이 출근 전에 첫 번째 낮잠을 재우고, 점심시간에 두 번째 낮잠을 재우는 것으로 타이밍을 맞췄더니 아이들을 재우기가 수월해졌다. 역시 혼자 두 아이를 동시에 재우는 건 역부족이었다. 남편의 점심시간에 아이들을 낮잠을 재우고 나면 미쳐 점심을 차릴 새도 없고 먹을 새도 없었다.

우리는 최대한 간단하게 점심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빵을 먹거나 라면이나 가락국수 등 간단하게 때울 수밖에 없었다. 이것도 답이 없었다.


대신 남편이 재택근무 후 퇴근을 하면 퇴근시간을 아낄 수 있어서 퇴근하자마자 내가 요리를 하고, 남편이 두 아이들을 돌보았다. 빠르고 간단하게 저녁을 위한 요리 실력이 늘었다. 친정 엄마와 살기 전에는 밑반찬을 해놓고 먹지 않았는데, 주말에 시간이 조금 있을 때 평일을 위해 밑반찬 2~3가지를 해놓으니 밥만 있다면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는 게 가능해졌다. 밑반찬의 위력을 새삼 느꼈고 할 줄 아는 밑반찬의 개수가 늘어났다.




2주, 3주가 지나면서 점차 적응이 되고 육아 스킬도 더 늘었다. 하지만 친정 엄마를 하루하루 꼬박 기다리는 날이 짙어졌다. '엄마가 다시 돌아오시면 더 잘해드려야겠다.' 그전에도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했는데 겪어보니 아니었다. 내가 더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고 빠릿빠릿 움직여야겠다. 지금까지 한 것보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 힘들긴 했지만 3주간 엄마와 떨어져 있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성숙한 쌍둥이 엄마가 된 것 같아서, 너무 늦게 알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힘든 일을 남편과 내가 해냈다!



커버 사진 출처 : Photo by Hello I'm Nik �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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