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이라는 단어만 받아 들고서 그 무게에 짓눌려 지레 우울해하기만 하던 방구석의 나에게, 아직도 자연임신에의 희망을 놓지 않고 배란일을 받으러 일반 산부인과를 찾던 나에게,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배란일 잡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시험관 병원으로 가세요.”
지금의 내 상황으로선, 자연임신도, 인공수정도 의미가 없다며 의사 선생님 쪽에서 내 폴더를 닫아버리신 것이다. 일반 산부인과에서의 내 차트는 그렇게 일방적으로 닫혔다. 냉정했다.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이내 내 머릿속 ‘난임 폴더 닫는 연습’을 하는 것이, 현실도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절당하고선 터덜터덜, 친정집을 찾았다. 내 사정을 알 리 없는 친정엄마는 “마음을 편하게 먹으면 나중에, 삼신할매......”이라는 말로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한 마디를 하나 툭 던졌다. 먹고 있던 흰쌀밥 위로 눈물이 후둑후둑 떨어졌다. 마음을 편하게, 나중엔 다 잘될 거라는, 삼신할머니 점지... 이런 말만큼 막연한 위로가 어디 있을까. 한껏 날 선 마음에, 결국 화를 내고 말았다.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삼신할머니 이야기를 자꾸 해!”
여러 번 눈치를 살피고 위로의 말을 곱씹다가, 간신히 위로를 건넸을 애먼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난임 검사 후 받아든 딸의 초라한 성적표가 자기 탓이라도 되는 양, 덩달아 기가 죽어있던 친정엄마였는데 말이다. 누구보다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살았을 그런 엄마였는데 말이다.
(친정엄마가 무슨 죄라고.)
병원에서 객관적인 수치로 대변되는 낮은 자연임신에의 가능성을 진단받았다 하더라도 모든 걸 쿨하게 인정하고, 하던 일을 만사 제쳐놓고, 난임 병원으로 한걸음에 내달려갈 이가 몇이나 될까. ‘제 상태론, 자연임신이 어렵다고 해요... “ 담담히 받아들이고서 활기찬 난임 생활을 적극적으로 시작해보마, 열정적으로 달려드는 이는 몇이나 될까. 나는 난임 병원의 문을 여는데만 해도 수개월이 걸렸다. 난임 중에서도 난소 기능 저하라는 단어를 받아들이는데 수 날이 걸렸다. 난임이라는 단어를 거부하며 ‘내가 왜’ 물음표만 남발하다 한 달을 그냥 보냈다. 굳이 배란일을 잡아, 애먼 사람만 달달 볶는 밤을 보내며 몇 달을 흘려보냈다. 결국 아무런 진전 없이 우울감의 늪에서 헛발질만 하다, 반년을 허비했다. 하지만 인정해야 했다. 자기 연민에 빠져있는 동안 난소 기능 수치는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분노할 시간도 없어. 연민에 빠질 시간도 없어.)
난임임을 인지하기도 어렵지만 난임 검사를 받았더라도 난임임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난임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자세’란 이렇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럼 이제라도 적극적으로 대처하면 되지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명쾌하게, 유쾌하게 대처하게 되는 그런 사안이 아닐 테다. 하지만 일단 알아야 한다. 내가 지금 서 있는 그곳. 아이를 맞이할 준비가 얼마만큼 되어있는지, 나의 현재 상황. 알아야 했다.
결혼 후 임신이 지연되면 보통 ‘배란일 맞추기’를 시도한다. 나는 난임 검사를 통해 ‘난소 기능 저하’와 ‘나팔관 한쪽 막힘’이라는 결과지를 받아 들었음에도 배란일을 잡는다며 상당기간 산부인과에 내원했던 난임러였다. ‘난임 카드’를 받아 들고서도 쉽사리 자연임신에의 희망을 놓지 못하고 기적을 좇았던 게다.
자연임신 시도/ 배란일 잡기
배란기에는 가임기 여성의 난소에서 성숙한 난자가 배출된다. 이 배출된 난자가 난관으로 들어가 정자와 만나 수정하게 되는 것. 하여, 배란일에 맞춰 부부관계를 갖고 자연임신을 시도한다. 교과서적으로는 배란되기 48시간 전을 가장 가능성 높은 시간대로 본다고 한다. 임신을 염두하게 된 순간부터 배란일에 마음이 다급해진다. 배란일은 생리 주기를 통해 예측하는데 생리 주기가 비교적 일정하다면 병원에 내원하지 않고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배란일을 알아낸다. 하지만 생리 주기가 변동이 심한 경우는 생리 주기로 배란일 계산하기가 어렵다.
배란장애 질환 다낭성 난소증후군
첫 단계라 할 수 있는 배란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하는 배란장애 질환에는 다낭성 난소 증후군이 있다. 대사장애의 일종이라고도 하는데 다낭성 난소증후군의 경우, 난소가 배란을 잘하지 못해 생리가 미뤄지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한 달에 두 번씩 3주를 채 넘기지 않고 생리를 자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도 제대로 된 배란성 월경이라고 볼 수 없는 경우이다.
난소 기능 저하
AMH 검사를 통해 난소 나이를 짐작해볼 수 있다. AMH가 0점대라면 난소가 45세 이상, 1점대는 40대 초반, 2점대는 38세~39세, 3점대는 34세, 4점대는 30세 정도로 본다고 한다. 6점대 이상이면 필요 이상으로 배란이 억제되어서 너무 많은 난자가 있는 다낭성 난소증후군을 의심해봐야 한다며. 35세를 기준으로 난자의 퀄리티도 안 좋아지기 마련인데, 본래 신체 나이보다 난소 기능이 저하돼있는 경우 수정률도 감소되고 염색체 이상 난자도 증가한다고 한다. 그때부턴 시간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자궁은 외부에서 호르몬 주사 투입으로 기능을 되돌릴 수 있지만 난소는 그 마저도 힘들다고 하니. 산부인과 통계상 20대의 조기폐경은 0.01%, 30대의 조기폐경은 0.1%, 40대의 조기폐경은 1%에 달한다고 한다. 하지만 난소 노화와 난자 고갈의 경우, 폐경의 시기는 더 빨라질 것이다. 난소 기능 저하일 경우, 차라리 젊을 때 난자은행에 난자를 냉동해주는 게 현실적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연구에 의하면 여자 나이 40~42세가 되면 난소에 남은 난자 중에서 80%가 비정상적인 염색체를 갖고 있는 난자라고. 44~45세에는 90% 이상이 비정상 염색체의 난자. 그래서 만약 비정상 염색체를 갖고 있는 난자로 수정이 되면 착상이 될 순 있겠지만 유산이 될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어느 의사 선생님의 글을 읽었다.
(넋 놓고 기다리면 안 됩니다. 헛된 희망을 걸고 시간을 끌면 큰일 나요. 제 환자 중에는 민간요법을 하다가 거의 폐경이 되어서 오는 경우가 꽤 있었어요. 인정할 건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시도( #시험관아기시술 )를 해봐야 해요. 시간이 없으니까요.)
결국 그때의 난_방구석 이불 속에서 두려움과 자괴감, 자기 연민과 후회 사이를 오가며 배란일에 급급할 때가 아니었다. 일단 아는 게 먼저다. 현재의 상황 알기 그리고 받아들이기. 눈물을 훔치며 자연임신에 집착할 때가 아니었던 게다. 혹시 배란일에 맞춰 임신을 시도한 지 1년 이상 지났는데도 난임 검사를 아직 안 받으신 분이 있다면. 난임 판정을 받았는데도 여태 난임 병원에 ‘못’ 가신 분이 있다면. 하물며 난소 기능 저하인데도 그 급박함이 아직 와 닿지 않으시다면. 난임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마시길. 좀 더 적극적으로 건강한 아이를 만나러 길을 나선다고 생각하시길. 난임 판정을 받고도 방구석에서 6개월 동안이나 배란일에 집착한 난임러의 혼잣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