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염없이 기다렸는데... 야심한 밤의 치맥도 끊고, 기름진 음식도 끊고 영양제는 살뜰히 챙겨 먹으며 임신 준비하고 있었는데... 보건소 기본 산전 검사 후에도, 난 ‘이상 없음’ 소견을 받았는데... 난임의 주인공이라니. 이게 머선 일인고.
인생이란 시시때때로 과제란 걸 내어놓는다. 사회적으로 무언가 해야 할 나이. 그 시기에 닥칠 때마다 부담감이 스멀스멀 밀려온다. 언제나 그렇듯 늘 숙제는 만만치 않다. 마치기도 어렵지만, '잘'하기란 더더욱 쉽지 않아서 숙제. 졸업을 앞둔 20대 중반엔 취업, 취업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고 나면 20대 후반, 30대 초반 즈음 결혼이라는 과제. 결혼과 동시에 임신과 출산 이슈 등. 끊임이 없다. 인생이 시기별로 내어주는 큰 고개는 매번 경사가 완만하지 않다. 물론 남들이 정해놓은 길을 고스란히 걸을 필요는 없다. 시기란 것이 꼭 정해진 것도 아니다. 하지만 스트레스와 부담감이 목까지 차오른다. 남들이, 사회가 던지는 이슈와는 관계없이 당당히 ‘마이웨이’를 외칠 수 있는 사람. 옆을 힐끗거리지 않고 묵묵히 걷을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러다 남이 던지는 사소한 질문에 속까지 뒤틀리기도 하다. 남 일에 궁금한 것도 참 많다. 질문은 늘 쉽게 날아온다. 막상 나가는 대답은 늘 어눌하거나 무겁다. 반감이 일렁거린다. 배려 없이 던져지는 가벼운 안부가 후비고 간 자리에 상처만 깊다. 30대 초반 결혼이라는 가파른 경사를 힘들게 올랐다. 내려가고 나니 인생은 살며시 임신이라는 카드를 내밀었다. 임신이라는 단어에 한 번도 의문을 가져본 적은 없었다. 결혼을 하고 나면 으레 껏 되는 게 임신이라고 생각했다. '네 (생물학적) 나이가 좀 많지 않니'라는 뉘앙스를 포착할 만한 늦은 나이도 아니었고 '이제 신혼의 즐김은 충분치 않니'라는 물음에 뜨끔할 만한 결혼 몇 년차 새댁도 아니었다. 30대 초반의, 막 결혼한 신상 새댁이었다. 물론 ‘난임’의 ‘난’ 자도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오늘 밤 주인공은 나야 나.’ 늘 주인공을 꿈꾸면서도, 막상 한 발 뒤로 물러서고 싶은 때가 있다. ‘너야 너.’ ‘지목하지 말아 줄래. 그냥 지나가 주겠니.’ 발조차 담고 싶어 지지 않은 때. 하지만 인생이란 건 날 좋아해 주는 상대처럼 호의적일 때보다 밀땅하는 썸남처럼 굴 때가 많다. 딱 견딜만한 정도의 절망감 속에 던져놓았다가 잠시 희망의 나락에 살포시 담금질해주는 친절함을 잊지 않는 조련사 같기도 했다. 마음의 근육을 다져보렴, 강하게 훈련시키는. 말랐지만 몸무게에 비해 근육량이 많은 편이라 기초대사량은 높았고 그래서인지 늘 체력은 좋은 편이었다. 매번 생리통이 심하긴 했지만 생리주기는 무서우리만큼 정확했다. S라인 몸매는 아니었지만 요가와 자전거로, 나름 다져졌다 할 만한 몸매였다. 고로, 나는 아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너야 너.’ 인생이 지목했다. 난소 기능 저하가 극심한 너의 수치는 0.7. 전국의 가임기 여성들 101명을 대상으로 줄을 세운다면 하위권에 속할 너는 “축하합니다. 난임 지원 대상입니다.” 20대 후반 정도는 됨직하다 느껴왔던 내 30대 초반 생물학적 나이는, 실은 40대 중반대의 생식력을 말하고 있었던 거다. 믿을 수 없는 검사 결과에, 주먹이 불끈 쥐어졌지만 0.7이라는 수치는 내게 속삭였다.
(분노할 시간도 없어.)
30대 초반의 신혼 초기, 내게 갑자기 던져진 현실이 당혹스러웠다. 그리고 서글퍼졌다. 겉은 초록 초록한데 실상 한번 만지고 나면 금세 바스러져버리는 마른 잎이 돼버린 듯했다. 이미 바스러져 조각난 마음을 안고 먹먹해진 걸음으로 병원에서 나왔다.
보통의 경우, 건강한 남성의 정자와 배란된 여성의 난자가 만나 수정이 이루어진다. 이 수정란은 자궁내막에 착상을 시도하는데, 정상적으로 착상이 이루어지면 임신 성공이다. 일반적으로는 피임 없이 관계 시 1년 이내에 70~80% 정도, 2년 이내에 80~90% 임신에 성공한다고 한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 하룻밤의 정사로 임신이 성사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건강한 남녀가 결혼해 피임을 전혀 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상적인 성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년이 지나도록 임신이 되지 않는 경우, 이를 난임이라고 한다.
난임의 원인은 개개인마다 다르다. 남성의 경우엔 정자 활동성이 나쁘거나 기형정자가 많은 경우, 정자수가 부족한 경우가 있다. 여성의 경우엔 자궁의 노화, 난소 기능 저하, 난자질 저하, 다낭성 난소 증후군, 면역력 저하, 유전적 요소 등 원인은 다양하다. 자궁 경관에서 자궁 내 나팔관으로 지나가야 할 정자가 나팔관 막힘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때도 있다. 수정란이 막상 자궁내막에 착상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유는 각기 다르지만 어쨌거나 사회 생활, 결혼 연령 증가,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난임 인구는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담, 임신과 출산을 계획한 이상 차분한 임신 준비 속에 난임 대상인지 아닌지의 여부 정도 미리 알 수 있는 검사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대부분의 난임러들이 ‘미리 알았더라면...’,‘그때로 돌아간다면.’ 되뇌일 지도 모르니 말이다. 난임 기간 동안 내가 가장 많이, 중얼거렸던 말이기도 했다.
보통 난임인지의 여부는 초음파를 통하거나 호르몬 수치를 파악해 측정한다. 생리 2~5일째에 초음파로 동난포 개수를 확인하거나 혈액 내 난포자극 호르몬(FSH), 난포호르몬(E2) 등의 수치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간단한 채혈만으로 '난소 나이'를 측정할 수 있는 항뮬러관호르몬(Anti-Mullerian Hormone, 이하 AMH) 검사가 있다. AMH는 난소에 있는 원시난포에서 분비되는 물질로, 그 수치를 통해 원시난포의 수를 파악하여 대략적인 난소 나이를 가늠한다는 것인데... 저출산의 시대, 늘어나는 난임 인구 속에 AMH검사 등이 국가 지원을 통해 보건소에서 무료로 시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통 AMH 검사는 난임 전문센터를 포함한 산부인과나 일부 건강검진 센터에서 수검 가능하다. AMH 검사를 통해 임신, 출산뿐만 아니라 다낭성 난소증후군, 과립막 세포 종양과 같은 질환 유무와 폐경 시기를 예측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한다. 따라서 검사 결과에 따라 임신 계획을 미리 세울 수 있고, 난임일 경우 빠른 대응이 가능하며 필요시 난자 동결 여부를 고려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요새 코로나로 인해 임신 후 보건소에서 무료로 진행하던 산전검사마저도 중단되었다고 한다. 또 이게 머선 일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