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명확하게 나의 난임 상황에 지침을 주시는 의사 선생님은 안타깝게도 없었다. 아니, 어쩌면 나 혼자 귀를 닫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주저앉았고 주변 사람들 중 몇은 나의 난소 기능 저하 수치 결과에, 극성과 유난이라는 단어로 결론 내리기도 했다. 그렇다고 무턱대로 내 발 밑의, 난임이라는 상황을 좌시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괴로운 일이 생길 때, 인생의 비스킷 통과 같아서 지금 이걸 겪어두면 나중에 편해진다는 말로 위안 삼고 털어낼 준비를 해야 했다.
하지만 말처럼, 생각처럼 쉽지 않은 게 ‘내 마음’ 관리. 난임이라는 단어가 일상에 들어온 이후로 시시때때로 열려있는 난임 폴더 때문에 난 점점 시들어갔다. 지금 겪는 이 괴로움도, 나중엔 의미 있는 과정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위로가 필요했다. 자기 연민과 자괴감 사이에서 맴돌며 위로해줄 이를 찾았지만 애석하게도 위안을 줄만 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내 난임 일상을 구제해줄 이는 뉘신지.
빠른 기간 내에 난임 시술에 성공하는 방법. 임신 및 출산의 길로 빨리 접어드는데 단연 중요한 것은 난임 시술 의료 기관의 선택이다. 하지만 난임을 이유로 산부인과에 자주 드나들게 되었음에도 30년 평생 몇 번 갈까 말까 했던 이 병원의 문턱은 매번 높기만 했다. 여성인 내 몸 중 가장 은밀하고 소중한 부위를 검사하는 곳인데도 산부인과 문을 열기도 전에 좌우를 살피게 되는 건 무슨 연유인가 싶었다. 옷을 벗고 의자에 다리를 벌리고 앉고, 다리가 올려지는 그때엔 여전히 눈이 질끈 감아졌다. 난임 부부들은 지인에게 추천을 받거나 난임 카페나 블로그 글을 통해 얻은 정보로 대부분 병원을 선택한다. 그런데 막상 객관적으로 뒷받침되는 자료가 없어 막막해지는 때가 많다. 먼저,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난임 시술 의료기관이라고 할 지라도 난임 시술 성공률 등의 정보를 제공하는 병원들은 많지 않다. 예전 보건복지부의 난임 병원 임신 성공률 조사에 따르면 한 번도 임신에 성공하지 못한 곳이 27곳, 성공률이 10%에도 못 미치는 병원은 59곳이었다고 한다. 이 결과도 2017년도의 결과 공개 내용일 뿐이다. 요샌 병원들의 반대에, 평가 공개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는 추세다. 병원 정보 공개에 대한 부작용이 더 크다는 거다. 블로그나 카페에서 얻는 정보들은 대다수, 병원 홍보를 목적으로 작성된 관계자의 글인 경우도 많다. 지인 추천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결국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발품을 팔아, 정보를 취합한 후 병원을 선택하는 건 난임 시술자의 몫이다. 병원을 잘 선택하고 의료진의 처방을 믿고 따라야 하는 수밖에 없다. 더러 과잉 진료로 검사나 영양제 등을 권하는 병원들도 많으니 주의해야 한다. 병원마다 천차만별인 추가 검사 비용 등도 어느 정도 감안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난임 카페나 블로그 글에서 개인이 작성한 실제 성공사례가 많은 병원에 환자들이 몰리는 상황이다. 여러 개의 성공 후기를 섭렵하게 된다. 가장 좋은 건, 난임 카페 가입과 활동, 지인 추천 등의 다양한 채널을 통해 자기와 맞는 병원을 선택하는 것. 카페 활동을 통한 너무 방대한 양의 정보 취합은 도리어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도 있을 테지만 적당한 정보 취합의 과정은 필요하다. 자신과 비슷한 사례를 가진, 성공 경험을 분석하고 자기만의 방법을 찾는 것도 필수적이다. 여러 성공사례를 취합하고 병원의 브랜드 평판 등을 고려해 병원을 정한다. 의료진의 시술 영역 외에, 믿고 의지할 수 있는지 정서적인 교감도 중요하다. 나 역시 지인의 추천으로 병원 한 곳, 검색을 통해 찾은 병원 세 곳을 전전한 끝에 나와 맞는 병원을 찾았다. 병원을 옮기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일이라 처음부터 자기와 맞는 병원을 만난다면 좋았겠지만...! 다른 병원으로 옮길 경우 검사부터 다시 시작이기 때문이다. 배아 채취 및 동결, 보관 등의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밟아야 하기에 부담이 큰 일이었다.
나의 첫 시험관 시술은 부산에서 시작되었다. 집에서 광주터미널까지, 대중교통으로 약 1 시간 소요. 광주-부산행 고속버스 약 3시간-3시간 30분 소요. 부산 터미널에서 P대학병원까지 지하철 2번 환승 약 1시간 소요. 거의 다섯 시간을 부지런히 달려 가까스로 P대학병원 난임센터에 도착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잠재우기 바쁘게, 이름이 호명되길 기다렸다. 의사 선생님을 마주하는 시간은, 15분 남짓이었다. 그마저도 의사 선생님과 얼굴로서 마주하는 시간보다 나의 은밀한 곳을 통해 상황을 체크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굴욕적인 자세로 앉아 가림천 너머로 의사 선생님 얼굴 한번 힐끗, 뭣도 모르는 초음파 사진 한번 힐끗하다 보면 끝나는 진료시간이었다. 그 짧은 진료시간을 감내하며 2015년 10월에만 3번 부산행 버스에 올랐다. 부산에서의 1차 이식 실패 후, 두 곳을 저울질 끝에 광주의 한 병원을 두 번째 병원으로 삼았다. 하지만 부산에서보다 더 쉬울 거라는 예감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P대학병원 난임센터보다 물리적인 거리는 가까웠지만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의료진 사이에서 심리적인 거리는 멀었다. 병원 내에서의 대기시간은 지루할 만큼 길었다. 광주에서도 유명하다는 난임 병원에선 이식은커녕 난자 채취 실패로 처절함만 만끽했다. 대구와 서울에 이어 다시 돌아온 광주까지. 광주, 대구, 부산, 서울 찍고 광주. 총 6군데의 병원을 돌다 광주에서 난임 병원을 졸업했다. 병원을 옮길 때마다 그 병원이 임신, 출산 종착점으로 가는 마지막 병원이 되길 바랐다. 누군가는, 전국의 병원을 좇아 떠도는 나를 안쓰러워했을지도, 내 노력을 폄하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몸에 맞는 치료법을 찾아 나서야 했다. 최대한 치료비를 줄여야 했다. 난소 기능 저하 수치는 늘 시간에 쫓기게 만들었다. 그 와중에 4번의 정부지원은 허망하게 아스러져갔다. 늘 조바심 갖지 말고 여유를 가지라는 조언을 귀에 딱지 앉도록 듣고 사는 임신 준비자였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희망과 우울감 사이를 반복해서 걷던 나는, 희망보다는 절망에 머무는 때가 많던 난임러였다.
내가 임신에 성공했던 마지막 C병원은, 모든 게 절묘하게 잘 맞았던 그런 병원이었다. 한의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 번도 과배란 시술에 성공하지 못했기에 대구, 부산, 서울 등 여러 병원을 거쳐 마지막 병원을 만났다. 내게 난자 채취를 가능케 했던 병원. 수정란 이식 성공으로 난임 병원 졸업장을 안겨준 병원이기도 하다. C병원의 처방이 옳은 판단이었겠지만 적당한 거리에서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신 분이기도 했다. 환자와의 진료, 면담 시간에 사무적으로 서두르지 않아도 좋았고 적절한 진료 처방 외에도 적극적인 수용 그중에서도 ‘듣기’로 마음을 편하게 해 주시던 분이기도 했다. 진료 시간에 시험관 시술과 관련된 내용 외에도 난 선생님과 다른 이야기도 간간히 편하게 나누었다. 대부분 해외 자원봉사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한의원 선생님은 나에게 불교 대학을 추천해주시기도 했지만 침이나 뜸 시간에 이런저런 도움되는 이야기들도 자주 해주셨다. 두 분 다 내게 슬기로운 난임 생활에 있어 ‘귀인’ 같았다. 걸음이 늦는 아이를 만나러 가는 길. 그 길엔, 인연과 운명이라는 설명할 수 없는 힘이 깃들어줘야 함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난임 일상을 좀 더 과학적으로, 체계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을 누군가도 있다. 그 인연 또한 적극적으로 찾아 나설 일이었다. 귀인이 되어줄, 난임 병원 졸업장을 건네줄 그런 난임시술 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