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관 시술1차에 성공할 줄 알았니

나의 시험관 시술 1차

by 김여희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53세, 41세 띠동갑 연예인 부부의 시험관 시술 도전기에 대해 방송되었다. #시험관 시술 은 정자와 난자 둘 다 몸 밖으로 꺼내 시험관에서 수정시킨 다음에 자궁에 넣는 #체외수정시술 이다. 41세 아내는 시술 비용에 대해 "사람마다 쓰는 약에 따라 다르다"며 "정확한 상담이나 비용 체크는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아야 하는데 저 같은 경우는 #과배란주사 , 배란 채취 시술, 배아 동결, 배아 보관까지 1차에서 총 230만 원 정도 비용을 지출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2차 때는 배란 채취 과정이 빠져서 50만 원 정도, 3차 때는 주사나 약을 안 쓰고 자연 배란으로 시도해서 약값이 빠지다 보니 30만 원 정도"라고 밝혔다.


취업을 위한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처럼 압축된 시험과목과 정해진 답안이 있으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난임 엔 정도(正道)가 없다. 이왕 시작하게 된 인공수정이나 시험관 시술이라면 한 번에 성공하여 임신에 이르는 것이 바람직한 길일 테다. 최근에 난임을 주제로 만난 10분의 사람들 중엔 저마다 각기 다른 기간과 사연이 있었다. 그중 모아놨던 10개 이상의 난자로 이식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이식에 실패하여 4년 동안 틈틈이 이식에만 매진하셨다는 분이 있었다. 그러다 첫 아이 임신 성공 후_4년의 육아 끝에, 다시 냉동해뒀던 난자로 임신을 시도하셨다한다. 이번엔 한 번만에 이식 성공. 그마저도, 쌍둥이를 임신하셨다고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얼굴이 밝지가 않았다. 예상치 못한 #쌍둥이임신 으로 갑자기 둘이 아닌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며 두려움과 기대감 사이를 오가던 육아맘이셨다. 그래도 #난임동지 에서 #육아동지 가 된 우리는 다행이라 하였다. 절망감과 우울감, 희망 사이를 오갈 때보다 낫다 하며. 다른 9분들은 아직도 난임의 길을 걷고 계셨다. 각기 시작한 시점도, 난임을 겪고 있는 기간도, 저마다의 사연들도 모두 달랐다. 공통점이 있다면 어떤 이유로든 임신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 빨리 #난임일상 을 극복, 육아 일상을 시작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아까 언급했던 방송 속의 연예인 분은, 가장 힘들었을 때가 언제냐는 물음에 "두 번째 실패했을 때 힘들었다. 1차 때는 '그냥 처음에 되겠어' 그러면서 받아들였고, 2번째는 '되겠지, 될 거야'라는 기대감이 있었는데 안 되니까 '그냥 너무 쉽게 생각했구나, 쉬운 일이 아니었구나'라는 걸 깨달았다"라고 말했다. 마치 과거의 내 마음속을 읽는 것처럼이나 공감 가던 답변이었다. #난임병원 으로 들어서기 전의 나 역시 실패라는 단어를 아예 염두에 두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 20개 이상의 #난자채취 , 한 번만에 이식 성공 그리고 임신‘이라는 주변의 성공 사례는 나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단 한 개의 난자도 채취하지 못해 #공난포 에 떨게 될 줄이야. 하긴, 세 아이 엄마도 그렇게 생각하실지도. 난임에 우울해할 땐 언제고 이제 애 셋 육아를 걱정하게 될 줄이야.





10월엔 #소파수술 을 진행한 후, 11월부터 본격적으로 과배란에 들어가기로 했다. 소파수술은 자궁 내벽을 깨끗하게 해서 착상을 돕는 수술이라고 했다. 내 인생 생애 첫 큰 수술이었다. 나중에 돌이켜보면 소파 수술은 큰 수술도 아니었지만... 친정엄마까지 대동하고 큰 마음먹고 갔던 자리였다. 엄마가 자궁 수술을 받던 때 생각이 났다. 엄마와 아주 살가운 사이도 아니었지만 그때 난 지독히도 엄마 옆에 붙어있었다. 엄마에게, 여자로서 큰 의미의 수술일 것 같아서였다. 모르긴 몰라도 몸만큼이나 마음이 아플 수술 같아서였다. 그래서인지 엄마의 수술이 끝난 후, 연신 눈물을 훔쳤었다. 마취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해 알 수 없는 소리를 웅얼웅얼거리던 엄마의 모습에 겁이 났었다. 그때의 엄마는 내게 뭐라고 했었을까. 내게 울지 마라고 했을까. 엄만 괜찮다고 했었을까. 사실은 슬프다고 했었을까. 이번엔 엄마가 아닌, 내가 수술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애처롭게 나를 바라보던 엄마의 눈빛이 보였다. 결혼한 지 6개월 남짓된 새댁에겐 풋풋한 활기 대신 서글픔과 먹먹함만이 가득했다.





소파 수술이 끝나고 나선 과배란 시작과 함께, 주사와 더불어 사는 일상으로 넘어갔다. 생리 21일째부터 저녁 일정 시간에 로렐린 0.03CC를 자가 주사했다. 난자 채취 3일 전까지 매일 저녁 함께 했다. 아침에 퓨레곤 350과 더불어 굿모닝. 저녁에 퍼고베리스 1개 , 메소푸어 75, 로렐린 0.03과 인사. 아침, 저녁으로 생소한 이름의 주사액을 내 몸 안에 주입했다. 생리 3일째부터 아침, 저녁으로 배에 맞았던 주사였지만 혼자 주사를 놓을 때마다 마음은 매번 몽글몽글해졌다. 주사는, 난자 채취 이틀 전 2개의 오비드렐과 IVFC2000을 밤 11시에 맞고 잠드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렇게 정해진 시각에, 일정한 주사액을 주입하여 난포를 키웠다. 과연 이렇게 해서 원하는 아기를 만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난포가 키워지는지, 아님 뱃속에서 주사액이 그저 공중분해되는건지 알 길이 없는 때엔 비싼 주사 값 영수증을 매만지며 혼자 한숨을 내쉬었다. 정해진 시간에 주사를 맞아야 할 일인데, 외출 시에 몰래 화장실 안에서 주사를 주입해야 하던 때는 그 처량함에 눈물마저 나왔다. 어느 순간, 이렇게까지 해서 임신을 해야 하는 걸까. 나도 모르게 지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렇게 여러 주사를 거쳐, 난포를 키운 후에 난자를 채취했다. 난자를 뽑을 땐 질 안 쪽으로 바늘로 찔러 채취한다. 배에 흉터가 남는 건 아니지만 마취가 필요하고, 질을 찌를 때 생기는 출혈, 감염, 통증이 있다. 첫 번째 난자 채취 끝에, 내게서 나왔던 난자는 겨우 4개였다. 그 마저도 난자의 상태상, 냉동은 불가능했다. 임신이 잘될 만한 배아가 많이 나오면, 몇 개는 이식하고 나머지는 냉동 보관했다가 다음번 시도 때 또 이용하는 건데 난자의 상태상, 냉동이 불가능하단 거였다. #신선배아 로 3개 중 2개 만을 이식한다고 한다. 10월에 3번, 11월에 3-4일꼴로 다섯 번을 오가던 편도 다섯 시간 부산병원행이었는데 겨우 난자 3개 채취하여 신선배아로 이식이라니... 수정하여 냉동할 수 있을만한 알찬 난자는 하나도 없다는 말이 더 야속했다. 하지만 딱히 그 순간도 잠시, 앞으로 벌어질 다른 걱정거리에 대해서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냉동할 수 있는 난자가 없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지. 4개밖에 난자가 채취되지 않았다는 건 또 무슨 의미인지. 그저 이식에 성공하면 되지! 멋모르는 희망에 부풀어있었던 까닭이었다. 채취한 난자와 정자를 수정시킨 수정란을 이식을 하고 나서 진료실 베드에 상당 시간 누워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초음파 사진을 받아 들고선 임신을 확인한다. 난 작은 배아 세포가 두 개 있는 사진을 받았다. 배아 사진이든 초음파 사진이든 알 수 없는 사진이긴 매한가지다. 일단 #착상 이 되길 기도했다.






12/4일 이식 후, 피검사가 있던 16일까지 2주 남짓 온종일 누워만 지냈다. 착상에 도움이 된다는 음식들만 먹을 때를 제외하곤 이불과 한 몸이었다. 먹을 때 앉고 화장실 갈 때 일어날 때 빼고는 시체놀이만 했다. 딱히 병원에서 누워만 있으라고 한 건 아니었다. 과하게 움직이기라도 하면 배아 두 녀석들이 찰싹 붙어있지 않고 떨어질 거라 생각했던 거였다. 얄팍한 생각이었지만 안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드라마 정주행 했다가, 영화도 봤다가 책도 봤다가 일어나서 전복, 소고기, 추어탕 등을 오가다 다시 누워 잠들기를 반복했다. 몸은 한 곳에 누워있었지만 생각은 이리저리 탁구공처럼 이리 튀고 저리 튀었다. 무증상이면, 무증상인 게 맞나요_ #난임카페 지나가는 사람을 잡고 물었고 피검사 전에, 갈색혈이 나왔는데 어떡하나요_역시 모르는 사람을 잡고 물었다. 몸은 무증상과 갈색혈 사이를 오갔다. 마음은 사진 속 배아들이 찰싹 붙어 뭉게뭉게 수정되는 생각에 구름 위를 날았다가 주룩 흘러내려 이미 온데간데 사라진걸 이렇게도 붙들고 있는 건가 우울함 속에서 헤엄도 쳤다. 그야말로 자발을 떨었다. 몸은 여전히 이불 속이었다. 며칠 후, 꼭 부산까지 가야 하는 걸까 투덜거리며 다시 먼 길을 나섰다. 몇 분의 피검사를 위해 몇 시간 가는 길이었다. 피검사 수치는 0.1로, 맥없이 끝이 났다. 나는 3킬로의 살을 얻었으며 교통비 제외하고 330만 원의 카드값 명세서를 받았다.


1차 시험관 시술비용 4,717,800 + 처방비 491,400

(그중, 190만 원 정부지원)

광주-부산을 오가며 2개월간 들였던 노력의 결과는 냉동 난자 0. 그리고 이식 실패. 이 날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유독 멀었다. 겨울바람에 코 끝이 시렸지만 눈시울만은 뜨겁게 화끈거렸다. 사상터미널 앞 광장 한가운데 서서, 남이 보면 영문 모를 눈물들을 한참이나 쏟아내었다. 무슨 사연이 있나, 궁금함의 눈초리가 몇 지나갔다. 민트색 냉장 가방을 든 손 끝이 시렸다. 가방 안엔 갓 처방받아 따끈따끈한 영양제와, 성장호르몬 주사가 차갑게 들어있었다. 첫 이식의 실패는, 안 좋았던 난자질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첫 번째 시험관 시술 성공. 그건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였다. "시험관시술은 한 번 하고 나서 몇 달의 휴식기를 가져야 해요.” 몸만큼이나 조각난 마음을 겨우 모아 안고 버스 안에서 창 밖을 바라봤다. 시험관 시술 1차 만에, 성공할 줄 알았니? 누군가 초보 난임러의 해맑은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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