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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독하고 무더웠던 여름의 시간들

What's the time

What's the time, Mr.wolf?

아이들과 책 수업을 할 때 즐기는 영어동화책 중 하나.


What's the time, Mr. wolf?

반복되는 질문 패턴이 이어지고

7시, 8시, 9시... 흘러가는 시간에 따라 wolf의 일상을

대답하는 형식이다.


7시, 일어나서... 8시, 아침을 먹고 9시 이를 닦고 10시 옷을 입고 11시 playschool에 가고, 12시 점심을 먹고.


별거 없는 늑대의 일상이 이어지는 가운데, 늑대는 늘 배고프고 허기지다고 말한다.





영어를 막 시작하는 아이들에겐 숫자와 시간 개념, 일상의 영어 표현들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할 수 있어서 좋다. 아이들은 생활 밀착형 영어표현들에 꽤나 관심을 갖는다.


What's the time?


나의 인어공주를 생각하면서 나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일이 잦아졌다. 내가 지금 누리는 일상의 작은 것들을 새삼 감사해하면서, 이 되뇌임가증스러워하곤 했다. 가끔 감탄'씩'이나 하게 되는 포인트들에 미안해지고 이내 먹먹해다.




6시 30분 식구들이 깰까 봐 조심조심 씻어내는 바지락. 바지락 껍데기가 바그락바그락대는 소리를 듣다... 이내 보글보글 한 김 끓여 오르는 냄비 속 찌개를 들여다보는 간.


7시

새 잎을 돋아낸 올리브나무의 한편을 대견해하면서

군데군데 말라버린 잎의 끝자락을 잘라내 주는 일.


8시

아이들에게, 아침식사와 옷 갈아입기, 정리하기, 이 닦기, 양말 신기를 시키면서... 이 보잘것없는 일들로

대단한 화에 사로잡히는 등원 전의 시간.


9시 30분

아이들을 유치원에 넘기고, 후련해하며 달달달 떨리는 손으로, 카페라테 한 잔을 받아 드는 일.





11시

운동을 마치고 뱃살을 매만지며 이 살들은 어쩜 이다지도 염치없는지_생각하는 순간.


12시

혼밥을 즐기거나 아이들 없이 자유로운 식사를 즐기는 점심시간.


14시

하원 전에 후다닥 집안일을 하면서... 아이들이 하원 후 집 안에 들어서는 순간부 초토화되는 집을 상상하며 '지금 이 청소가, 부질없다' 한숨을 내쉬는 때.


15시

일주일에 세 번.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면서, 미래의 우리 둥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하는 15시.






하원 후의 시간들

17시 하원 후부터 21시 30분까지, 집안일과 아이들 사이에서 하원 후 공부까지 욕심내느라 또 화가 몰아치는_하루 중 가장 바쁜 시간대.


하지만 시시때때로 사소한 화에 사로잡힘에도 불구하고 이 얼마나 감사한 보통날의 시간들이었던지.


내 현재형 고충들을 들여다보며 너는 눈물짓지나 않을지 조심스러워하며 대신 맡았던 그녀의 아이들의 일상을 보여준 지 2달이 지났다. 셋이었다가... 넷이었다가... 힘듦이 목까지 차오르던 육아전투가 있던 여름.


그리고 그중 두 명이 오늘, 떠난다.





둥이들만으로 버거워하던 그 여느 때보다 더 혹독하고 숨 막혔던 여름날.


후련해하면서,

대견해하면서,

노력했지만, 사소한 분노마저 걷어냈었더라면 좋았을걸 더 좋았을걸... 후회하면서,

아이들을 보낸다.


영문도 모른 채 마냥 설레하며, 엄마 없이 먼저 떠나 있을

너희들의 길다면 길, 여행을 응원해.


그리고 건강해진 모습으로, 엄마와 함께 만나자.


역시나,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시간들을 채워나갈 것을 다짐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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